고양이를 죽이는 41가지 방법 - 바다

by 전찬준

주인은 가끔 나를 바퀴달리고 시끄러운 쇳덩이에 싣고 어딘가로 간다. 심지어 악취까지 풍기기 때문에 나는 그 쇳덩이 타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쇳덩이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은 내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사라지고, 쇳덩이는 밖이 비치는 투명한 막으로 쌓여 있어서 나는 몇번이고 그 막에 막혀 탈출에 실패하곤 했다. 그러다, 뭐라고 중얼대며 둥그런 막대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 주인 머리에 올라가 발로 주인의 눈을 가렸다가 호되게 내쳐졌다. 저 주인놈은 대체 말이 안 통한다.


주인은 쇳덩이를 끌고 여러군데를 돌아다니지만, 가끔 큰 물에 생선을 잡으러 간다. 막대기 끝에 투명하고 질긴 줄을 묶고 그걸 바위 틈에 늘어뜨린다. 줄 끝에는 작은 새우가 달려 있다. 저걸로 대체 뭘하려나하고 가만히 지켜보니, 생선을 유인하는 것 같다. 물 속에 그 주변으로 물고기가 몰려드는 것이 보인다. 물고기도 우리처럼 물 속에서 냄새를 맡나보다. 주인이 물고기를 유인하는 동안 새우가 담긴 통에 머리를 밖고 새우의 맛을 보다가 뭔가 번쩍한다. 주인의 손이 내 엉덩짝에 새차게 날아온 것이다. 얼마지나지 않아 막대기 끝 새우가 달려 있던 곳에 못 생긴 물고기 한 마리가 달려 올라온다. 물고기의 입 주변에 툭 튀어나온 날까로운 쇳꼬챙이가 보인다. 물고기가 멍청한건지 인간이 영악한 건지.


인간은 자주 영악한 짓거리를 한다. 내가 집에서 곤히 잠들어 있을 때, 뭐가 부스럭거리면서, 내 코를 간지러 눈을 떠보면 새털이 눈 앞을 오가고 있다. 나는 그 새털을 낚아채려고 동물적으로 반응하고, 한참 새털을 잡기 위해 힘을 빼다가 지쳐 가만히 앉아 새털의 끝을 눈으로 따라가다보면, 어김없이 주인 혹은 인간들의 손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여러 번 속임을 당하고 나서, 나는 더이상 인간의 손에는 속지 않게 됐다. 주인은 이제 자신의 손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은 나를 보며 푹푹 한숨을 쉬는데, 그럼 또 나는 주인이 어딘가 안되보여 몇번 새털을 쫓는 시늉을 해주지만, 나도 연기를 오래해줄 만큼 체력이 좋지는 않다. 적당히 우리는 서로를 존중해주면서 사는 동지 사이다. 이쯤되면 나도 내 집에 대해 너무 주인 행세를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친구들 중 짖굿은 녀석들은 인간에게 자신의 집을 내주는게 문득문득 마음에 들지 않아 침대 위라든가 방석 위에 똥이나 오줌을 갈긴다고 하는데, 그런 성미는 나에겐 맞지 않다. 그랬다가는 파리채가 내 등짝으로 날아들지도 모르고. 주인은 파리채를 파리잡을 때나 쓰지만, 가끔 이 집에 오는 주인이 엄마라고 부르는 늙은 여자는 내가 사고라도 치기만 하면 파리채를 들고 나를 쫓아온다. 그 사고라는 것이, 집 안에 있는 나무 물건들에 내 발톱 손질을 한다거나, 부엌의 그릇들 밑에 숨어 있는 지네나 바퀴를 잡으려다가 그릇을 깨뜨리거나 하는 일들이다. 그것이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불구하고, 여자는 아무렇게나 파리채를 휘두른다. 가끔 그 파리채에 맞기라도 하면, 내 탄탄하고 촘촘한 털이 보호해줌에도 불구하고, 번쩍번쩍 불이 난다. 이래서 나는 그 늙은 여자가 집에 오면, 일찌감치 집을 나가 있는다.


처음 주인이 나를 거대한 물 앞에 데려갔을 때, 나는 바구니 바깥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었다. 사방에는 내가 숨을 곳이 하나도 없이 탁트여 있었고, 언제고 크고 푸른 물들이 나를 공격해 올 지 알 수 없었다. 주인은 바구니에 머리를 박고 가끔 밖을 빼꼼히 내미는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괜찮다고 말한다. 그러나 쇳덩이에 태우고, 나를 이 큰 물까지 데려온 주인의 말을 내가 믿을 만큼 바보는 아니다. 하늘을 보니, 크기가 적어도 나만큼은 되보이는 새가 하늘을 날고 있다. 끼룩기룩. 나도 끼끼끼기하고 입으로 내 귀에 들리는 소리를 흉내내 본다. 그 때 또 주인은 우락바락한 못생긴 물고기를 내 앞에 던져 놓는다. 나는 물고기만큼 멍청하진 않다. 거기에 유인될 내가 아니다. 하지만, 곧 물고기는 바닥에서 푸드덕 푸드덕 튀고, 그 힘찬 몸부림에 내 몸은 또 동물적으로 반응해, 물고기의 목을 내 날까롭고, 폭신한 발로 꾹 누른다. 순간 물고기의 눈이 슬퍼보여서 그러기를 그만두었다. 인간은 대체 왜 슬픔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가? 슬픔보다는 배고픔이 더 절실하겠지. 옆집 사는 땅콩이라 불리는 고양이는 물고기만한 별미는 없다고 떠벌린다. 매일 아침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주워오는 자신과 같이 살고 목소리에서 거친 바람 소리가 나는 늙은 여자가 최고라고 자랑처럼 이야기한다. 아마 녀석은 큰 물에서 건져진 직후, 물고기의 눈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큰 물의 색깔은, 인간들이 바다라고 부르는, 가만히 지켜보니 하늘의 색깔에 따라 변한다. 하늘에 구름이 적으면, 그 색깔이 좀 옅어져 속이 훤히 보이고,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있으면 그 빛도 어두워져 물 속이 깜깜해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때는 큰 물이 해를 삼킬 때다. 큰 물이 해를 삼킬 때의 풍경은 내 친구들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다. 우리도 어둠이 내리면, 우리의 눈을 어둠으로 채운다. 우리의 눈이 어둠으로 채워질 때, 인간들은 우리를 가장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비록 그때가 우리의 눈이 제일 어두울 때라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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