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리스본
담배가 는다. 커피도 는다. 온도와 습도가 그것들의 맛을 부추긴다. 대신 손목 발목이 좀 저리다.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다. 막다른 길이거나 길 없음 표지판들을 마주할 때가 많다. 그래도 계속 걷는다. 끊임없이 바뀌는 풍경이 활력이 된다.
포르투갈의 차이나타운쯤 될까(?)싶은 길로 들어섰다. 중국인들은 대단하다. 어느 국가에서나 그들만의 타운을 이루고 있으니...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느 국가에서나 약간의 적대감을 품게 만드는 능력도 가지고 있는 듯. 그래도 편견과 선입관 없이 그들을 보면, 역시 대단한 민족이다.
무지를 발견했다. 혹시나 해서 들어가 봤지만, 역시나 여기서도 비싸다. 일본인들은 중국인들과 대조적으로 대단하다. 세계 어디에서건 비싼 입지를 선점한다. 한국인들은 뭔지 모르게 서로가 불편하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기고 들어가면, 바로 무장 해제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다.
그 나라의 언어를 조금이라도 아는 것은 그만큼의 호의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웅, 드와이스(하나, 둘), 오브리가두(고맙습니다), 올라, 차우(안녕). 정도가 내가 구사할 수 있는 포르투갈어다. 어느 가게를 가든지 내가 저 정도의 말을 하면 사람들의 표정이 약간 부드러워진다. 나는 여행을 가기 전 필수품으로 꼭 간단 회화책을 산다. 하지만, 이번엔 사지 못했다. 여간 안타까운 게 아니다. 조금만 알아도, 훨씬 더 많이 느끼고 볼 수 있는데...
현지 마트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뭘 먹고살까 하는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결된다. 과일을 보고, 유제품을 보고, 과자도 보고, 커피도 본다. 어쨌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와인과 빵이다. 매우 저렴하고 종류도 많다. 현지에 사는 분의 조언을 얻어, 마트 한쪽에서 팔고 있는 포르투갈식 훈제 닭을 샀다. 4유로. 그리고 3유로로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와인도 샀다. 맛을 모르니 디자인만이 선택 기준이 될 수밖에. 호텔 스카이라운지는 아니지만, 공동주택의 5층 방에서 4유로짜리 닭과 3유로짜리 와인으로 느끼는 이를테면, 싸지만 값진 경험.
이미지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그렇게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로 되는 경우가 훨씬 쉽다. 이미지의 노예. 우리는 어쩌면 평생을 이미지의 노예로 살지도 모른다. 그렇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나도 내가 만들어 놓은 혹은, 내가 구현하고 싶은 이미지를 찾으며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지를 통해 순간순간 기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삶은 그보다는 좀 더 오래 지속되는 것이고, 이미지는 때로는 아주 쉽게 변한다.
내가 포르투갈 여행 중에 가장 좋아하는 행위를 꼽자면, 아침에 숙소에서 나가 동네 빵집에서 빵을 사서(정말 싸고 맛있다...) 거리를 걸으며 빵을 뜯어먹는 것과, 걷다가 지치면 아무 노천카페의 테이블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담배를 무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굳이 비싼 비행기표를 끊어서 포르투갈까지 와서 할 필요가 있냐, 그런 것들은 그냥 집 앞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냐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그런 것들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타국의 공기 같은 것 말이다.
많은 나라를 가보진 못했지만, 어떤 나라건 갈 때마다 악기상에는 반드시 들른다. 안타깝게도(?) 내 관심은 주로 기타에만 국한된다. 어디건 기타를 손에 쥐면 나는 익숙해지고 편안해진다. 그 소리들은 같지만, 또 모두 다르다. 스페인은 어떨지 아직 모르겠지만, 현대 기타(?)는 연주건 악기 종류건 자본주의의 발전과 그 흐름을 같이 했다. 미국의 기타 샵이 가장 흥미롭고, 그다음이 일본, 그다음은 낙원상가. 그렇지만, 아무리 싼 기타도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게 기타라는 악기의 매력일 것이다.
외국 혹은 타국에 오게 되면 우리는 좀 더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게 내부건 외부건. 그래서 뭔가 평소에는 안 하던 것이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포르투갈에서 나에게 그것은 선글라스로 왔다. 하지만, 나는 나를 잘 알고 있고, 몇 번 쓰고 다시는 쓰지 않을 선글라스에 돈을 투자할 만큼 바보는 아니다.
나는 안경, 모자 등 내 얼굴 위에 얹히는 모든 것을 싫어한다. 그런 것들을 머리에 쓰거나 코 위에 올리는 순간, 굉장한 답답함과 어지럼증을 느낀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선글라스에 눈이 간다. 5유로를 주고 노점에서 선글라스 하나를 샀는데, 골목 하나를 돌자 4유로에 똑같은 물건을 판다. 이런 일은 이제 나한테는 거의 필연이다. 아쉽지만, 되돌릴 수는 없다.
어쨌든, 선글라스를 끼고 평소보다 짙어진 포르투갈의 거리를 걷는다. 이런 건 참 즐겁다.
H는 현재 내 삶의 가장 가까운 기록자다. 그에게 무한한 사랑과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