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리스본
여기는 어딘가? 여행이든 일상이든 나는 나의 현재 위치를 확인하기를 좋아한다. rua leite de vasconcelos 65a(아마 길과 아파트 이름?) 근처의 tofa cafes. 기온은 14도. 해가 매우 잘 드는, 야외 테라스. 에스프레소 한 잔, 담배 한 까지, 빵 한 조각.
지난밤 지냈던 숙소를 나왔다. 6일간 예약을 했는데, H도 나도 목과 머리와 눈이 아파서 더 지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래된 건물이었는데, 내부 페인트를 칠한 지 얼마 되지 않았나 보다. 침대의 매트리스는 중앙이 꺼져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삐그덕거렸고, 교차로를 바로 앞에 두고 있는 현관은 작은 바람에도 덜컹거렸다. 금전적 손해를 감수해야 했지만, 나머지 여행을 망칠 수는 없었다.
어젯밤 서둘러 알아본 숙소는 알파마를 조금 벗어난 곳이다. 12시는 되어야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해서, 숙소 앞 카페에 앉아 있다. 카페란 무엇일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 사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여긴 집 앞 편의점 같은 곳이다. 동네 아저씨, 아줌마, 할아버지, 청년들 할 것 없이 와서 커피를 마시고, 빵을 먹고, 햇볕을 쬐고, 담배를 피우고, 이야기를 나눈다. 내부에는 빵, 음료 진열대와 테이블 몇 개, 그리고 야외에도 테이블 몇 개가 있다.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버릇없는 아르바이트생(우리 집 앞 편의점 알바생, 미안) 대신, 인상 좋은 할아버지가 에스프레소 잔을 야외 테이블로 가져다주고, 큰 손으로 테이블 위의 빵 부스러기를 스윽 쓸어낸다. 옆 테이블에서는 젊은이들이 제법 큰 목소리로 무언가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그냥 조용히 앉아 있다. 존버거의 '본다는 것의 의미'를 펼쳐 들고서. 내 앞 인도에서는 한창 물청소 중이다. 수많은 담배꽁초와 낙엽들이 모두 물에 쓸려 언덕 아래로 내려간다.
카페란 무엇인가. 더 좁게는 한국에서 받아들인 카페란 무엇인가. 나는 종종 한국의 여러 카페들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일본의 카페들도 마찬가지. 지나치게 이미지화되고, 특화된 카페는 스스로 자연스러움을 버렸다. 커피는 가장 일상적일 때 가장 특별한 것이 되는 것이 아닌가.
멋진 노인들이 많다. 나는 현대 유럽의 멋진 노인들의 생성 요인을 과감히 커피와 담배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자판기 커피와 편의점 플라스틱 커피를 우리는 우아하게 마실 수가 없다. 우아함은 귀족들만의 것이 아니다. 자연스러움을 바탕으로 한 우아함은 어떤 행위를 충분히 오래 했을 때 생겨나는 것이다. 그것은 정신적인 것에서부터 물질적인 것까지 모두 포함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험을 가장 좌지우지하는 척도는 돈이다. 부정하고 싶지만, 절대적이다. 하지만, 나 같은 인간에게도 도서관이라는 존재가 있고, 그 안에는 수많은 경험의 총체들이 녹아 있다. 나는 그 안에서 되바라질 수도 있고, 우아해질 수도, 천박해질 수도, 현명해질 수도 있다. 온전히 상상과 사색이라는 도구에 의해서.
커피와 담배는 곧잘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사색을 유도하고, 일상에 약간 다른 호흡의 시간을 선사한다. 유럽의 이미지들을 벗어던지더라도, 무언가를 천천히 마시고, 천천히 호흡하고, 읽는 행위 자체를 할 수 있는 매개와 공간이면 된다.
나는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좋아한다. 기원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너무 무수히 많은 것들의 연관에 의해서 생겨 난 것이기 때문에 상상 속에서도 언제나 한계에 부딪힌다.
커피가 아프리카에서 유럽의 식민지 국가들로 넘어간다. 아마 차보다는 나중이었을 것이다. 계급과 계층의 상위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향유되다가 갖가지 혁명들에 의해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음료가 되었다. 자본이 개입한다. 각종 도구들과 감각과 맛을 추구하는 방법들이 개발되기 시작한다. 장인이라는 말이 이 분야에서 또한 생겨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 어디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대한제국 고종이 커피를 마시는 사진을 본 기억이 있다. 식민지를 겪고 일본에 의해 여러 가지 서양 문물들이 유입된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서양 문물에 맛을 들이기 시작한다.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농민들은 농사짓고, 생계를 꾸려나가기에 바쁘다. 독립이 되고, 한국 전쟁이 일어난다. 여전히 커피는 일상적인 것이 아니다.
아마, 한국 커피의 기원은 다방으로 가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그 다방의 주 고객들은 누구였을까. 그 시대의 특정한 힘을 가진 자들이었을 것이다. 혹은 시간적 여유를 가진 자들. 지역 유지, 지식인 혹은 예술가, 그리고 깡패. 궁금한 것은 그때 다방에서는 원두커피를 팔았을까. 추출 방식은? 동서 식품에서 믹스 커피를 개발하고부터 가정 일반에 커피가 보급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게 테라로사를 비롯한 드립커피 세대들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경양식집들, 대학시절 커피빈과 스타벅스의 유입. 그리고 지금의 세련된 커피들. 그리고 지금 내가 여기서 마시고 있는 0.7유로짜리 에스프레소. 로스팅이라든가 블렌딩 같은 것은 파는 사람이나 마시는 사람이나 딱히 중요하게 생각할 것 같지 않은...
1억을 호가하는 로스터기와 수천 만원이 넘는 에스프레소머신을 개인의 가게에 두고(리스라고 하더라도) 700원에 커피를 팔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내가 보통 제주에서 마시는 커피의 평균 가격은 4,500원 정도. 하루에 서로 다른 카페에서 두 잔을 마신다면 주머니가 조금 부담스러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 가격에 대한 이해를 우리 부모 세대에게 바라는 것은 무리다. 보통의 경우(?), 카페 문화는 우리 부모 세대에게는 낯선 문화이다. 비단, 이런 현상들(세대 간의 단절)은 커피 문화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글을 쓰다 보니, 마무리할 수 없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분야를 건들고 말았다. 결국, 카페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