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리스본
요리를 한다. 이 공동주택의 공동주방에는 가스오븐이 주인공이다. 밸브를 열고,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버터를 팬에 두르고, 토마토를 그 위에 올린다. 삶은 파스타면과 면수 조금을 팬에 붓고, 1분 정도 더 볶은 뒤, 계란과 치즈로 마무리한다. 반찬은 없다. 마치 사회주의국가의 저녁 식사(한 번도 먹어본 적 없지만) 같은 느낌이 든다. 면을 입으로 넣으면서 보는 창 밖의 야경이 근사하다.
잠을 설쳤다. 영화에서나 보던 도르래 엘리베이터가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소리가 주기적으로 밤의 정적을 깨고, 나를 깨웠다. 이 숙소는 5층이고, 매번 엘리베이터를 타는 재미가 있다. 쇠창살 두 개를 열고, 다시 닫아야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 아날로그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수고롭다.
세번째로 도둑시장(내가 매번 가던 시장의 이름)에 갔다. 초록의 문들을 지나고, 포르투갈은 초록색이 어울리는 나라가 맞았다, 양지바른 곳에 놓인 의자를 지나고, 담배의 무덤을 지나고 골목을 몇 개 더 지나니 시장이 나온다. 골목과 언덕들에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나의 리스본 여행을 두 글자로 요약하면, '골목'이 되지 않을까.
골목은 대로보다 매력적이다. 사람이 적고, 길이 좁고, 으슥하고, 두렵고, 무섭지만, 희망이 있다. 언제나 골목은 나를 잡아 끈다. 저 골목을 돌면 무엇이 나올까. 대로가 나올지도 모르고, 또 다른 골목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오늘은 시장에 물건을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최고조였다. 이제는 상인 중에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생겼다. 반갑게 눈인사를 나눈다. 하지만, 너무 많은 물건들과 사람들 속에서는 평소보다 쉽게 지칠 수밖에 없다. 벗어나고 싶어 진다.
27살과 37살의, 여행의 방식이나 중점은 많이 다를 것이다. 이제 나는 조금 안정적이고 독립적인 것이 좋다. 생활과 여행의 차이가 좁아진 것이다. 하루 종일 걸었다면(이 방식은 여전하다), 숙소에서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편하게 쉬고 싶다. 이번 여행은 첫 숙소 말고는 모두 그것이 잘 되지 않고 있다.
나는 많이 먹지는 않지만, 요리를 하는 것도 먹는 것도 좋아한다. 식문화에 관심이 많고, 여행을 통해 느끼고자 하는 새로움의 영역에 음식은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나는 포르투갈 요리의 매력을 잘 모르겠다. 꼭 비싼 레스토랑에 가야 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닐 텐데... 어쨌든 지금까지 먹은 요리들은 대부분 너무 직관적이었다. 애피타이저와 메인, 디저트의 구색이 갖추어져 있었지만, 하나하나의 질과 다양성은 다소 부족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나는 리스본의 매력을, 나를 자극해 줄(어떤 식으로든), 찾기 위해 조금 애쓰는 중이다.
이제 리스본은 열흘째고, 여행 일정은 열흘 정도 더 남았다. 이상하게 열흘동안 한 번도 저녁에 외식을 한 적이 없었다. 사실 이상하다기보다는 경제적 여행을 위한 방편이었지만. 어쨌든, 오늘은 저녁을 밖에서 먹어 보기로 했다.
트램이 지나다니는 번화가 쪽 식당들을 기웃거린다. 점심 때는 붐비던 식당에 사람들이 거의 없다. 선술집이나 정육점, 파스테리아, 카페테리아 같은 것에 오히려 사람들이 많다. 각종 빵들이 진열되어 있는 파스테리아에 들어가서 주변을 살핀다. 대부분의 시람들이 빵 한 조각에 비카(에스프레소) 한 잔을 시켜 놓고, 서거나 혹은 앉아서 먹고 있다. 저것이 저녁 식사일까? 나는 비파나(빵에 돼지고기 같은 것을 끼운 포르투갈식 햄버거)와 콜라 한 잔을 시킨다. 신난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매우 좋아한다. 여행자가 아니라, 현지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 속에 녹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 이상하게도 이것이 내가 여행을 통해 가장 느끼고 싶어 하는 무언가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보통 아침은 빵 한 조각 커피 한 잔, 점심은 생선이나 고기로 약간 거하게, 저녁은 다시 빵 한 조각에 커피 한 잔으로 해결하는 게 아닐까?라고 상상해 본다. 포르투갈 현지 친구가 없으니 확인할 수 없지만, 물론, 단 며칠간의 여행을 통해 유추해 낸 것이 사실일 확률은 적다. 아마, 아닐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이제 포르투갈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포르투갈 안으로 조금씩 융해되어 가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마, 이제부터일 것이다. 나의 여행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