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지안 Apr 23. 2024

돌봄 중독, 당신은 지나치게 애쓰고 있다.



최근 시청하기 시작한 새로고침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혼위기 처한 부부들이 프로그램에서 마련한 숙려캠프에 참여하면서 

갈등의 원인과 문제에 대해 상담을 받고 이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그중 한 알코올중독 남편을 둔 아내가 있다. 

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집에서 술만 마시고 일도 안 하는 남편의 뒤치다꺼리를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보살이고 참 착한 여자다.

하지만 상담을 통해 밝혀지게 된 사실이 있었다. 그 여자는 사실 돌봄 중독이었다. 

식스센스급 반전처럼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나도 놀랐다. 


누가 봐도 남편의 잘못이고 그 여자의 잘못은 하나도 없는 줄 알았는데 

상담사는 그 여자의 상태도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어떤 남자를 만나도 저 상태의 남자가 다시 오거나

저런 상태로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평생 돌보는 삶을 살았기에 이제는 누군가를 돌보지 않으면 불안한 상태.

입원 수준의 돌봄 중독. 나는 하나도 없는 타인만이 존재하는 세상에 사는 사람.


지나치게 애쓰며 스스로를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삶.


비단 이 여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을 돌보는 돌봄 중독이 아니라도

나 자신의 병든 상태를 돌보느라 돌봄 중독에 걸리는 사람들도 있다. 


병든 나를 돌보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상태. 그래서 언제나 병들어 있어야 하는 상태 

자기 연민에 빠져서 우울함에 빠져서,

혹은 나를 돌본다는 이유로 지하 깊은 곳에 자리를 마련하고 

틀어박혀 있는 모습이다.


” 나는 너무 불쌍한 사람이야. 나는 아픈 상태야. 그래서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버릴 거야. “ 

내가 딱 그 상태였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도 휴식이 필요한 것도 맞지만 어느 순간 그 선을 넘어 버린 것이다. 

“ 병든 나를 간병하느라 너무 지쳐있었구나.”라는 깨달음이 오는 순간 

지금의 나와 병든 내가 구분되는 것 같았다. 

마치 내 안에 있는 병든 마음들이 나의 발목을 잡고 지옥으로 끌어내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비단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깨달은 것은 아니다. 

상태가 좋아지면서 병든 모습들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도 있다. 

이유 없이 무기력하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갑자기 모든 게 싫어지고 다 포기하고 싶어지는 

이상한 기분을 느낄 때마다 그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나오지를 못했던 것은 

어쩌면 자기 연민에 취해 스스로를 향한 돌봄 중독이었을지 모른다. 


정신의학적 측면에서 그리고 심리상담 측면에서는 

스스로를 알아주고 감정을 직면하라고 한다. 

나의 감정을 마주해야 하는 건 맞다. 

그렇지만 거기 빠져들어서 휘말리면 안 된다. 

그 감정을 돌봄 하느라 만년 감정돌봄만 해서는 안된다.





특히나 안 좋을 상태에서 감정 돌봄이 들어가면 우울한 마음속에서 자꾸 땅굴을 파게 된다. 

“ 내가 지금 우울하구나. 많이 힘들구나”를 자각하고 무엇 때문일까를 생각하는 것은 좋지만 

“ 우울하네.. 왜 자꾸 이런 생각이 들까.. 자꾸 죽는 걸 생각해서 그런가 

어차피 인생이 시한부라서? “라고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답이 없는 질문에 대답하려고 하는 것은 

결국 더 깊은 감정 돌봄에 굴레를 만든다. 


마치 우물물을 들여다보다가 빠져 죽는 것처럼 말이다. 

우물을 들여다보는 이유는 그 물에 비친 내 모습을 깨닫기 위함이지 

빠져 죽는게 목적이 아니다.


누군가를 돌보는 것도 내가 나를 돌보는 것도 중독이 되어서는 안 된다.

타인이 한없이 불쌍해서 연민을 가지는 것도 

내가 너무 불쌍해서 나에게 연민을 가지는 것도 그 끝은 결국 파국이다.


측은지심이란 소금 같아서 마음이 어우러져 맛을 내는 만큼 필요하다. 

음식에서 소금이 주인일 수 없다. 소금은 맛만 내면 된다. 

나를 사랑한다는 핑계로 내 마음만 붙들고 늘어진다거나 

타인을 사랑하다는 핑계로 한 없이 인내해 준다는 것은 다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조화롭고 다 같이 어울리는 모습으로 더 잘 살기 위해서는

각자의 마음에서 조금씩 진심을 나누어 서로에게 소금이 되게 하면 된다. 


상황에 감정에 매몰되어 지나치게 애쓰다 보면 삶의 다른 영역이 점점 구멍이 나게 된다. 

“ 우울증 환자는 돈이 없어요. “ 최근 한 강의에서 우연히 이 말을 들은 이후로 

얼굴이 화끈거리고 속이 뜨끔해서 혼났다. 


오랫동안 우울증 환자였던 나로서는 정곡을 찌르는 노골적인 말에 놀랐던 것이다. 

맞는 말이다. 우울증 환자는 대부분 돈이 없을 수밖에 없다. 

일단 무기력하고 에너지가 없으며 많이 지쳐있다. 

그래서 일에 몰두하더라도 금방 지치기 때문에 지속하기가 어렵다. 

결론적으로는 돈을 많이 못 번다. 

우울이라는 감정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몸속에 환자 하나를 데리고 사는 그런 그림이다.

몸속에 아픈 환자가 살고 있는 느낌. 매일 돌보고 신경 써 줘도 나아지지 않는 절망감 

그 속에서 계속되는 우울한 감정과의 싸움. 그 우울함에 익숙해지면 돌봄 중독 처럼 된다.

우울하지 않으면 또 우울해질 까봐 불안해지고 

“ 또 우울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낀다. 

에너지가 채워지면 언제 방전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행복한 감정을 느껴도 어색하고 

이게 얼마나 갈까.라는 불안감. 

그 감정을 돌보느라 삶은 여기저기 구멍이 나있다. 


내 감정에도 타인에게도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 

나는 병든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병든 나를 벗어버리고 건강한 나를 돌봐야 한다. 

내가 정말 돌봐야 할 사람이 있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어디까지 인지를 알고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병들어 있는 타인을 돌보다가 내가 병들기 때문이다.

건강한 상태일 때 건강한 나를 돌봐야 한다. 


돌봄은 중독이다. 그 끝은 파국이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것도 

나는 불쌍한 사람이니까 라는 생각으로 내 마음만 돌보는것도 

더욱 좁은 마음의 공간

그리고 삶의 공간에 갇히게 만든다. 


돌봄중독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 불행이 아니었을까. 



이전 08화 돈 되는 고민 vs 돈 안 되는 고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