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용기의 무게.
내가 처음 경험한 빼빼로데이는 고등학생 시절이다.
그날은 여느 와 다를 거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하굣길이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니 저 멀리서 누군가가 달려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반 친구라는 것을 알았고, 그제야 손을 흔들어 맞이하려 보니, 친구 손엔 빼빼로가 들려 있는 게 보였다. 그 빼빼로를 연신 앞뒤로 흔들면서 뛰어오더니 나에게 던지듯 빼빼로를 넘기며 오던 길을 다시 뛰어갔다. 대뜸 손에 올려진 빼빼로를 바라보며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지만, 일단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앞을 바라보니 친구는 이미 저만치 뛰어가고 점이 된 뒷모습만 있었다. 달리기 하나는 정말 빠르던 친구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손에 들린 빼빼로를 바라보며 한참을 생각했다.
‘이게 대체 뭐지?’
당시는 빼빼로데이가 지금처럼 하나의 이벤트 날로서 굳어진 때가 아니다 보니, 나로선 그 빼빼로가 가진 의미를 알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의문만 잔뜩 품은 채 집으로 돌아와 책상 위에 빼빼로를 올려놓고 옷을 갈아입고는 컴퓨터를 켰다. 게임을 하면서 친구에게 받은 빼빼로를 먹고 늦은 밤에 침대에 누워 잠에 들려하니, 그 빼빼로를 준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자?’
자정이 넘은 시간에 온 문자라 비몽사몽에 답변을 했다.
‘이제 자려고.’
한참이 답장이 없길래 눈꺼풀을 닫고 잠에 들려니 다시 문자가 온다.
‘오늘 받은 빼빼로 먹었어?’
‘그럼, 아까 먹었어.’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무슨 날인데?’
그렇게 또 한참 답장이 없었다.
이제 정말 대화가 끝났구나 싶은 찰나에 다시 문자가 왔다.
‘너 여자 친구 없지?’
‘없지, 갑자기 그건 왜?’
이번엔 제법 긴 시간 동안 답장이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왠지 모를 의미심장한 문자 내용에 잠결은 저 멀리 가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낮에 받은 빼빼로의 의미가 왠지 모르게 어렴풋, '어쩌면 그런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머릿속이 혼란해지기 시작했다. 심장이 요동치며,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면서 떨리는 손에 들린 핸드폰 액정에 두 눈 부릅뜨며, 온 신경이 곤두설 때 즘.
‘그럼, 나랑 사귈래?’
그 문자로 나는 환호와 함께 침대 위에서 펄쩍펄쩍 뛰다가 그만 침대 프레임에 발가락을 찧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발가락을 부여잡고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떨리는 손으로 문자를 보냈다.
‘좋아. 사귀자.’
문자를 보내고 또 미친 듯 날뛰다 이번엔 머리를 프레임에 찧고 발가락과 머리를 동시에 부여잡고 말았다. 그렇게 잠 못 이루는 새벽녘 날뛰는 심장을 달래야만 했었다.
그렇게 나의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이지 서로가 너무나 어색하고 풋풋하던 기억이다. 친구 역시 첫사랑이었기에, 평소에 친구였던 관계와 달리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늘 안절부절못하고 불안해했다. 그런 친구를 보며 나 역시 같은 고충에 겪고 있었기에 서로가 왠지 모를 피곤 아닌 피곤을 겪어야만 했다.
그렇게 이 월의 입춘의 절기와도 같이, 꽃봉오리진 따스한 봄날 직전 느낌의 첫사랑은, 그리 오래가지 못해 서로가 다시금 친구 사이로 돌아서게 되었다. 서로가 많은 것이 부족했고, 무엇보다 감정 표현에 서툴러 상대를 배려하지 못한 나의 무신경한 성격이 큰 원인이었다.
그래도 지금으로서 보면 참 그렇게도 여러 가지 감정들을 느끼던 때가 없었던 것 같다.
그날에 느꼈던 모든 감정들은 새로웠으며, 모든 느낌들은 찬란했다. 비록 ‘어린사랑’으로 끝난 첫사랑이지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어김없이 11월 11일이 다가오기 이전부터 특수를 노려 주변에 마트나 편의점은 빼빼로 팔아 치우기로, 온갖 판촉 행사들이 즐비한다. 그리고 그중 빼빼로를 하나의 큰 하트로 엮어서 파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당시 생각에 왠지 모를 아련한 웃음이 난다.
그날 받았던 빼빼로의 한 상자에 담긴 무게는 저 하트로 엮은 빼빼로 다발보다 더 무거웠던 것 같다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