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mobeforlife.com)
진정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아마 ‘근원적 사유’를 잘할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이러한 사유는 세상 모든 대상이나 문제의 근원에 잘 접근하여, 그 근본을 관통할 줄 아는 능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으니 말이다.
이를 제대로 갖춘 자는 아마, 무엇이든 껍데기를 보는 것보다는 그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려 하고, 무슨 글을 읽더라도 그냥 글 자체만을 읽지 않고 그 행간에 숨겨진 뜻을 잘 알아보려 할 것이며, 상대방 말소리의 떨림이나 음색에서도 그 감추어진 부분 혹은 화자의 속마음까지도 잘 헤아리려 할 것이다.
심지어는 상대방의 아주 작은 행동 하나에서마저도, 그렇게 행동을 하게 된 의도나 배경 같은 것을 잘 이해하려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라도 자기 깊은 속마음이나 의도를 자신의 표정이나 글, 말, 행동 등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노출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이를 잘 캐치해 내는 자가 항상 상대적 관계의 이니시어티브를 거머쥘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만약, 당신이 이러한 근원적 사유를 잘하는 인물이라면, 당신 앞에 놓인 어떠한 난제나 숙제도 대부분 잘 풀어낼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당신은, 당신 생에서 무슨 대단한 문제를 맞닥뜨리게 되더라도, 이미 그 문제를 넘어설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잘 갖추었을 것이 아니겠는가?
깊은 사유의 지혜가 이미 당신 내면에서 모든 겁이나 두려움, 공포마저도 완전히 몰아내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이러한 ‘근원적 사유’라는 것이 당신 생에서 얼마나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이자 지혜가 아닐 수 있겠는가?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예를 몇 개 들어 보자.
A라는 평범한 회사원이 있었다.
그런데, 그의 회사 내 한 동료가, 요즘 들어 왠지 자신을 아주 나쁘게 대하는 듯하였다.
어떤 때는, 뭔가 토라진 채로 말이 별로 없기도 하였고, 때로는 아주 달갑지 않은 눈치를 보여 주기도 하였다.
그 차가운 눈빛에, 아주 사늘한 얼굴 표정에, 그 행동 또한 그에게 아주 못마땅한 듯하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단순히 서로의 성격이 잘 안 맞는 부분이 많아서 그렇거나, 아니면, 그 사람의 성격이 원래 매우 모가 나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신의 그러한 생각은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다.
동료의 그러한 태도는 얼마 전에 있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한 큰 오해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좀 더 따져 들어가 보니, 당시에 자기가 충분히 오해를 받을 만한 행동을 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행동의 저변에는 자신의 평소 습관이 좋지 못하였음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던 자기 습관을 제대로 고지지 않는 한, 다음에 언제라도, 그런 유사한 상황이 또다시 발생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심지어는 다른 동료에게마저도 유사한 실수를 범할 수 있는 상태임을 충분히 인지하게 되었다.
A는 이렇게 근원적 사유를 잘해 내게 됨으로써, 남들에게 오해를 살 수 있는 자신의 잘못된 습관을 꼭 고쳐야 하겠다는 제대로 된 솔루션을 얻게 된 것이다.
이 얼마나, 참으로 다행하고, 지혜로운 사유가 아닐 수 있겠는가?
B는 어느 중소기업의 사장이다.
그런데, 최근 자기 회사가 아주 억울한 소송에 휘말렸다.
상대측 회사가 사업적으로 경쟁 관계에 있는 자기 회사를 해코지하기 위해, 그래서 아주 큰 이익을 챙기고 싶은 욕심에서, 그러한 소송을 제기했을 것이라고 단순히 생각했었다.
이런 경우에 보통, B는 보복심리가 발동하여, ‘맞고소’를 심각하게 고려해 볼 수 있었을 터인데, 일단은 사유의 지혜를 잘 발휘하여 그 사태의 전반을 제대로 한번 정리해 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그 근원적 원인을 먼저 잘 살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별다른 원인 자체가 전혀 없는 것 같아서, 이 경우는 그냥 운이 좀 나쁜 경우로서, 이른바 길을 지나가다가 날아온 돌을 맞은 격이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좀 더 옛 기억을 잘 되살려 보니, 과거 여러 수주 경쟁에서 자잘한 마찰이 좀 있었고, 그 불편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방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업 관계하는 것이 사실, 어제의 적군에 대해서도, 때가 되면 오늘의 우군으로 잘 돌려놓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상호 긴밀히 움직여 나가야 하는 동종 업계에서, ‘동업자 정신’은커녕, 교류 자체가 완전히 끊겨 있었다.
이른바, 회사 차원에서의 주변 인적 관리 혹은 SCM(공급 네트웍 관리), 판로 관리 등에 문제가 좀 많았던 것이다.
이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처음에 단순히 생각했던 것처럼 상대의 공격을 그냥 미워하는 것도 답이 아닐 것이며, 여러 수주 경쟁에서 발생하였던 자잘한 마찰들이 쌓여 일시적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보는 것도 정답이 아닐 것이다.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그동안 회사 차원에서의 여러 인적 관리, SCM 및 판로 관리 등에 전반적으로 매우 허술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생각에 이르렀다.
“과연 이번 기회에,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야만, 나중에 웬만해서는 다른 소송을 당하거나, 그 유사한 피해(내부 고발, 외부인 고발, 고객 클레임 등)를 최대한 면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야, 그야말로 회사를 ‘만사불여튼튼’으로 잘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C는 평번한 한 시민이다.
그런데, 그의 옆집 사람이 요즘 들어, 통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는 자주 보이던 인물이 요즘은 도무지 볼 수가 없으니, 다소 의아하였던 것이다.
그냥 몸이 좀 불편해서 그런지, 해외여행이라도 간 것인지, 가정사에 무슨 문제가 발행한 것인지 등,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니, 일전에 자신과 뭔가 문제가 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작년에 지방에서 이사를 온 터라 아직 수도권 지역의 정서에 익숙하지 않았는데, 향토적 이웃 관계에 익숙했고, 그런 관계를 당연히 원했었는데, C가 너무 무심했던 것이다.
물론 C의 입장에서 보면, 늘 다른 이웃에게 하던 대로 그대로 대한 것인데, 그 옆집 사람의 눈에는 그러한 C의 태도가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인 듯, 심지어는 이기적으로 보였을 수도 있었겠다.
적어도 그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을 수 있다.
그래서 다소 삐지게 되었고, C를 가능하면 피하려 했던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이 문제는, 옆집 사람이 갑자기 잘 보이지 않게 된 것을, 단순히 그의 개인사 혹은 가정사 등으로 인한 것일 것이라고 오판해서는 절대 풀 수 없는 문제였다.
또, 서로 간의 단순한 오해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간단히 생각해서는 더욱 곤란할 수 있는 문제였다.
오직, 그 근본 원인이 자기 오랜 출신지에 따른 관습과 생활 문화의 차이였음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어야 풀 수 있는 문제였다.
그래서 천천히 잘 기다려 주기로 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도 있듯이, 수도권의 문화와 관습에 익숙해질 때까지 늘 응원도 해주기로 하였다.
그래서, 진정한 이웃을, 아주 오래가는 친구를 얻을 수 있는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위의 몇 가지 사례에서 보면, 우리 옛말에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가 없다!”라고 하듯이, 모든 문제에는 그 원인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 발견된 원인보다 훨씬 더 근원적인 원인이 또 있을 수 있으니, 당신은 언제나 여기에 잘 주목하고, 또 이를 잘 찾아내려 해 보는 것이 여로모로 유리하다.
이렇게, 무슨 문제이든 절대 당황하지 말고, 절대 오판을 하지도 말고서, 한 가지 원인의 줄기를 역으로 타고 올라가, 마침내 근원적 원인(가장 근본이 되는 원인 혹은 최초의 원인)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거센 파도를 보기 전에, 그 파도를 일게 만든 주된 원인으로 바람의 존재를 볼 수 있어야 하고, 그 바람을 보기 이전에 바람을 만들어 내는 기압차의 존재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또 그 기압차를 생각하기 이전에, 그 기압차를 만들어내는 태양빛으로 인한 온도 편차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이러한 온도의 편차는 인위적 지구의 온난화에 따라 더욱더 심화될 수 있음을 추론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역으로 한번 생각해 보면, 우리 인간이 지금도 가중시키고 있는 지구의 온난화는 결국 아주 거센 파도, 때로는 무서운 해일 및 기후의 급변 등을 심각하게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우리 주변의 무엇에 대해서든, 근원적 사유에 보다 더 접근할 수 있어야만, 모든 문제의 민낯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사유의 방식이 바로 ‘근원적 사유’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이러한 근원적 사유를 잘할 수 있어야만, 자기 생의 모든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미래의 불행한 사태마저도 잘 봉쇄해 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러한 ‘근원적 사유’를 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
그 대체적인 팁을 몇 가지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첫째, 문제의 동인을 잘 살펴라.
근원적 사유는 바로, 모든 문제나 대상의 동인을 잘 살피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세상 모든 문제에는, 당신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수는 있으나, 그 속에 엄연히 존재하는 동인이 있을 것이며, 때로는 1차 동인, 2차 동인 등의 형태로 꼬리에 꼬리를 물 듯이 얽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언젠가는 이러한 동인의 꼬리들이 점차 외부로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잘 캐치할 수 있어야 하겠다.
모든 대상이나 사람에 있어서도, 당신이 잘만 살펴보게 되면, 분명히 오늘날 그러한 모습을 하고 있는 이유나 근본적 배경이 있을 것이니, 이를 잘 캐치할 수 있어야만, 제대로 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지속적인 상호 교류 혹은 깊은 소통이 가능해질 수 있다.
그래야 과연, 무슨 문제에 있어서도 그 주도권을 잃지 않고, 그 누구의 꾐이나 감언이설, 호언 등에도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
무슨 심각한 사태를 직면하여서도, 아무런 흔들림도 없이, 그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아주 쉬이 해결해 나갈 수 있다.
결국, 당신 그토록 원하는 바, 근본적인 해결책을 얻어 낼 수도 있고, 당신 생을 아주 완성도가 높게 일구어 나갈 수도 있겠다.
어떤 일이나 사건의 흐름에 있어서도, 그 동인이 분명히 존재할 터이니, 이를 먼저 잘 살펴라.
돌연, 어떤 난제를 만나게 되더라도, 먼저 그 상황이 흘러가는 모양새부터 잘 살펴라.
그 속에는 분명히 근원적 동인이 같이 묻혀 흘러가고 있을 것이니, 이를 제대로 캐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 무엇이라도 제대로 판단하고, 근본적으로 해결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언제나 이러한 사실에 주목하고, 잘 헤아릴 수 있어야 하겠다.
이러한 동인은 모든 문제나 대상의 시작이요 끝일 것이며, 그 속에는 당신이 그토록 고민하는 바, 문제를 일시에 치유해 낼 수 있는 묘약이 분명히 숨어있을 수 있다.
가만히 동심으로 돌아가,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듯이 이를 잘 찾아내어 보아라.
마치, 강의 발원지를 찾아보려는 마음, 세상의 본질을 찾아보려는 순수한 마음으로 귀 기울여 보아라.
자칫 이를 간과하고, 껍데기에만 치중하려다가는, 그 제대로 된 해결책은 아주 요원해질 수도 있다.
당신의 해결 능력은 조만간 그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심지어는 당신 생이 온통 혼란, 실망, 개념 없음에 지나지 않게 될 수도 있겠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나라이든, 그들의 모든 히스토리 속에도, 그 보이지 않는 근원적 힘이 존재할 것이니, 늘 이를 우선적으로 잘 알아보려 하여라.
힘은 곧 기세요, 모든 히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일 것이니, 언제나 그 존재를 잘 주지하고, 그 향방에 주목하여라.
또한, 그러한 히스토리 자체에 너무 주목하기 이전에 그 히스토리의 높낮이를 먼저 잘 살필 수 있어라.
과연,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것인지?
그 운명의 이치를 잘 이해할 수 있어라.
마치, 강물 자체에 너무 주목하는 것보다는, 지형의 고저차나 입체적 모양새를 잘 살펴야, 그 물이 흘러가는 방향이나 세기를 잘 짐작할 수 있듯이 말이다.
이와 같은 원리로, 인간의 역사 그 자체에 너무 주목하기 이전에, 그것을 만들고 이끌어가는 힘의 주체와 기세를 먼저 잘 살펴보아라.
항상, 그 힘의 주체는 당대의 현실이며, 기세는 미래일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인간사의 모든 실체적 현상이나 결과, 미래를 잘 규명하고, 또 예견해 내려면, 일단 그 해당하는 관점에 대한 ‘근원적 사유’에 제대로 다가설 수 있어야 하겠다.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모습에 결코 현혹되지 말고서, 그 진실에 더 접근할 수 있어라.
그 유수 같은 말이나 행동에 너무 주눅 들지 말고서, 언제나 당신 마음의 중심을 잘 잡아라.
그 대단한 겉모습에 질려버리지 말고, 언제나 제정신을 잘 차리고서, 그 깊은 곳에 숨기고 있는 것마저도 모두 모두 잘 찾아낼 수 있어라.
그 모든 것의 실체가 제대로 드러날 수 있게 하여라.
언제나 당신만의 중심을 잘 잡고서, 흔들리지 않는 냉철함으로 지혜로운 사유를 해 나가라.
당장 귀찮다고 생각하여, 당장이 급하다고 생각하여, 이러한 사유를 결코 게을리하지 말아라.
모든 문제의 요체는 바로 거기에 숨어있을 것이니 말이다.
또한, 근원적 사유의 힘으로, 모든 문제를 잘 드러나게 한 뒤, 제대로 보듬어 주기도 하여라.
이 세상 모든 것에는 그 내부를 잘 들여다보게 되면 이런저런 상처나 생채기가 없는 것이 없을 것이니, 이것들을 잘 품을 수 있어라.
가히, 당신의 큰 가슴으로, 따뜻한 입김으로 잘 품어 보듬어 줄 수 있어라.
공연히, 상대를 책잡으려고 근원적 사유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말이다.
그저, 상대를 괴롭히려고 그렇게 열심히 근원적 사유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말이다.
근원적 사유를 상대를 향한 공격의 수단으로 생각하지는 더더욱 않았지 않겠는가?
둘째, 무엇이든 맞닥뜨려 돌파하여라.
아무것에 대해서도 회피하려 들지 말고, 어디로 숨어들지 말고, 귀찮다며 피상적으로 겉돌지도 말아라.
모든 것을 오직 맞닥뜨려 돌파할 수 있어라.
적어도, 그러한 용기를 가득 지닐 수 있어라.
그래서, 언제 무슨 문제를 만나더라도, 아무런 머뭇거림도 없이, 오직 당신만의 엄청난 용기 하나로써 잘 돌파해 나가라.
혹여 아주 거친 가시밭길을 만나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큰 용기를 지닌 당신이라면, 충분히 맞닥뜨려 돌파하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니, 무엇이든 정면으로 부딪히고, 돌파하여 나가라.
과연 이렇게 해야, 그 근원적 해결책과 조우할 수 있겠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렇게 모든 문제를 기꺼이 맞닥뜨려 돌파하려는 강한 용기를 가질 수 있다면, 그 진정한 해결책을 반드시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모든 것을 근원적으로 해결해 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만약, 당신이 아주 나약한 마음으로, 마구 머뭇거리고 있거나, 마냥 뒷걸음질만 치고 있다면, 과연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낼 수가 있겠는가?
차라리, 제대로 된 해결책은 모두 모두 꼭꼭 숨어버릴 수 있다.
당신의 근원적 사유는 더욱더 요원해질 수 있다.
세상 그 무엇에 대해서도,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오직 당신만의 의지 하나로써 돌파할 수 있어라.
반드시 해결해 내겠다는 굳은 의지 말이다.
모든 문제를, 아주 정상적인 방법으로, 그 어떤 반칙이나 편법도 전혀 없이, 오직 맞짱을 떠서 해결해 낼 수 있다는 강한 의지 말이다.
많이 번거롭기는 하지만, 좀 힘이 들기는 하지만, 반드시 근원적으로 해결해 내겠다는 힘찬 의지 말이다.
이러한 당신의 굳건한 의지라면, 어쩌다 만약, 암울한 계절을 맞닥뜨리게 되더라도, 아무 일 없을 것이 아니겠는가?
당신 생에 그 무엇을 만나게 되더라도, 과연 맞닥뜨려 돌파하지 못할 것이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 아니겠는가?
정말이지, 이렇게 당신이 뜻하는 바, 그 의지대로 끝까지 밀고 나가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니, 모든 문제가 결국은 잘 풀릴 것이니, 전혀 주저할 필요가 없다.
때로는 당신만의 엄청난 믿음 하나로써 돌파하여 나가라.
스스로에 대한 정당성과 당신 미래의 필연에 대한 당신만의 믿음 말이다.
선택받은 당신은 무슨 문제이든 근본적으로 해결해 내어야 하고, 이는 신의 뜻일 것임에 대한 강한 믿음 말이다.
이렇게 당신 스스로에 대한 큰 믿음을 지녔다면, 어쩌다 만약, 심한 굴곡의 골짜기를 걸어가게 되었더라도, 정말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언제나 맞닥뜨려 돌파하지 못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니, 그 무엇을 대적하더라도, 아주 과감히 돌파하여 나가라.
과연 그렇게 하면, 모든 일이 더욱더 잘 풀려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니, 아무런 망설임 없이, 반드시 그렇게 해 보아라.
오직 당신의 근원적 사유의 힘으로, 지혜로운 사유의 힘으로, 모든 문제를 결국은 잘 해결해 내어라.
당신 앞에 놓인 모든 문제를 아주 근원적으로 한번 털어내어 보아라.
셋째, 모든 두려움을 지우고, 온전히 자유로워라.
우리가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대개 무엇인가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 건강에 대한 염려, 경쟁심리에 의한 걱정,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의 다양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한시도 편한 날이 없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는 자기 욕심을 최대한 덜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그러한 욕심을 대신하여 자존감과 자신감을 꽉꽉 채워 넣어야 한다.
이러한 스스로의 자존감과 자기 생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자기 속에 내재된 일체의 두려움과 걱정을 최대한 몰아낼 수 있어야 하겠다.
이렇게 하여, 매우 자유로운 상태가 될 수 있어야만, 근원적 사유에 제대로 다가설 수 있다.
그러니, 당신 마음속에서 조금의 두려움도 모두 잘 지워 내어 보아라.
세상에 칠흑 같은 어둠이 몰려와도, 온통 희뿌연 안개로 가득한 듯하여도, 아무런 두려움이 없어라.
거센 파도나 풍랑, 폭풍우를 만나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서, 기꺼이 정면으로 맞서 보아라.
차라리, 그 모든 두려움 위에 올라타서 호령하여 보아라.
모든 문제를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잘 호령하여, 끝내 이루어 내고야 말아라.
세상을 향한 당신의 굳은 의지로써, 모든 문제를 잘 잠재우고, 깨끗이 정리해 내어라.
도저히 알지 못할 미지의 수풀 속에서도, 전혀 가늠하지 못할 방황 속에서도, 결코 두려워하지 말아라.
결국, 스스로의 마음을 온전히 비워 내고서, 이런저런 혼란도 잘 잠재우고서, 아주 고요한 상태에서 모든 두려움을 깨끗이 일소하여라.
이제 당신 속에는 오로지 스스로에 대한 큰 자존감과 왠지 모를 기운찬 자신감만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온통 상승의 기운만으로 가득할 것이다.
또한, 그 무엇의 노예도 결코 되지 말아라.
일의 노예가 되지 말고, 돈의 노예도 되지 말아라.
당신 욕망의 노예는 더더욱 되지 말아라.
아무런 얽매임도 없이, 그 무엇의 노예도 결코 되지 말아라.
그 무엇에도 미혹되지 말고서, 아무런 흔들림도 없이, 당신의 자유로운 상태를 끝까지 잘 견지할 수 있어라.
그 무엇에도 아랑곳하지 않고서, 그 모든 속박으로부터도 매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하여라.
당신은 이 땅에, 아주 지극한 ‘자유 영혼’으로 태어났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한 자유로운 영혼의 자격이 아주 충분할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움을 바탕으로, 늘 근원적 사유를 잘할 수 있어라.
이러한 상태라면, 아무런 얽매임도 없을 것이니, 아무런 걱정도 없을 것이니, 진정 근원적 사유에 잘 집중할 수 있지 않겠는가?
넷째, 진실을 잘 가려내어라.
현실적으로, 근원적 사유를 잘해 내려면, 언제나 한쪽으로 치우치려는 자기 마음을 잘 회복하여야 한다.
인간은 가만히 있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한쪽으로 기울어져 가기만 하기가 십상이니, 이를 잘 바로잡아 나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야, 이런저런 편견 없이, 아무런 지나침도 없이, 진실을 제대로 가려낼 수 있다.
마치 생선 속에 숨겨진 가시를 발라내듯, 그 속에서 먹기에 좋은 살점만 잘 발라내듯, 오직 진실만을 잘 발라내어라.
당신의 치우치지 않은 균형감으로, 변함없는 중심으로,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말고서, 진실에 잘 접근하여 보아라.
‘근원적 사유’에 보다 더 잘 집중해 보아라.
자기 편만을 천사화하지 말아라.
상대편을 악마화 하지는 더더욱 말아라.
그 어떠한 진영 논리도 잘 극복하고서, 그 어떠한 양 극단의 논리도 아주 멀리 하여라.
언제나 당신 마음속에서 암암리에 자라날 수 있는 그러한 진영과 극단의 모습들을 두루 두로 잘 치유할 수 있어라.
오직 세상에 두려운 것인 진실일 것이니, 그 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 말아라.
때로, 당신 내면의 메타인지(스스로를 잘 바로잡는 인지 능력)를 잘 키워내어, 때로 강한 의지력을 잘 발휘하여 언제나 사유의 균형을, 양심의 균형을 잘 잡아 나가라.
혹여 있을 수 있는 당신의 아둔한 ‘아전인수’를 잘 극복하고서, 어느 때라도 절대 형평성을 잃지 말아라.
언제나 당신만의 욕심과 이기를 잘 극복하고서,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어루만져 주어라.
늘 경박함, 경솔함과 성급함을 잘 참아내고서, 당신 생을 좀 더 길게 길게 보아주어라.
나중에 보면, 혹여 당신이 많이 부족했을 수도 있겠으니 말이다.
무슨 일에 있어서도, 당신이 틀렸을 경우의 수도, 결코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니 말이다.
또, 온갖 성향의 SNS나 유튜브 채널, 기타 여러 매체들을 잘 소화할 수 있어라.
자기에게 진짜 살이 되는 것만 속속 잘 빼먹을 수 있어라.
마치 감자탕이나 뼈해장국에 담긴 뼈속의 살점을 속속 잘 발라 먹듯이 말이다.
그 누구에 의한 휘둘림도 잘 극복하고서, 스스로의 이니시어티브를 절대 놓치지 말고서, 제대로 취사선택을 할 수 있어라.
온갖 가짜뉴스나 사기성 혹은 반사기성 행각에도 적절히 잘 대처할 수 있어라.
무시할 것은 무시하고, 상황 관리를 해야 할 것은 관리를 잘해 내고, 꼭 응징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적절한 대응 방법도 잘 찾아보아라.
그런데, 절대 세상 탓은 하지 말아라.
사람 탓도, 미디어 탓도, 자기 신세 탓도, 정치인 탓도, 그 어떠한 탓도 결코 하지 말아라.
모든 뉴스는 당신이 소화하기 나름일 것이니 말이다.
모든 일그러진 행태 또한 당신이 잘 다스려 나가기 나름일 것이니 말이다.
적어도 당신 스스로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는 말이다.
다섯째, 결국 당신은 더욱 낮아져야만 한다.
당신이 무엇을 대하든, 무슨 일은 하든, 가장 낮아질 수 있어야만, 비로소 그 뿌리가 제대로 보이고, 근원적 해결책도 보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아주 낮은 위치에서만이, 근원적 사유가 비로소 가능할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당신 마음속이 욕망, 이기, 야욕 등으로 가득하다면, 그러한 객관적이고 지혜로운 사유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만약, 그러한 것들이 당신 눈앞을 가려, 매우 혼탁한 마음이라면, 그런 근원적 사유가 절대로 불가능할 것이다.
만약, 당신 마음속이 허영이나 착각, 오만 등으로 인하여,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하다면, 이러한 경우 또한, 무슨 근원적 사유가 가능이라도 하겠는가?
그러니, 당신은 늘, 최대한 낮아져야 한다.
가장 겸손하고, 가장 고집이 없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뿌리가 보이고, 근원이 보이고, 멋진 해결책도 보이기 시작할 테니 말이다.
당신 마음은 세상의 가장 낮은 곳을 향하고, 당신의 심장 또한 그쪽을 향하여 스스로 박동칠 수 있어라.
모든 욕망과 이기를 넘어, 당신은 더욱 낮은 곳으로 향할 수 있어라.
그래서, 모든 문제의 본질을 가감 없이 대면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근원적 해결책도 제대로 거머쥘 수 있어야 하겠다.
그런데, 매우 역설적이게도, 가장 낮은 길이 곧 당신을 가장 높여주는 길이 될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그 길만이, 아주 거침도 없이, 당신의 사명을 잘 완수해 줄 수 있는 지름길일 것이니 말이다.
당신 생을, 세상 그 누구에게도 존경받을 수 있게 해 주어, 가장 빛나게 할 길일 것이니 말이다.
그 길은 당신의 생을, 아무런 흐트러짐도 없이, 지극히 온전한 생으로 끝까지 잘 이끌어 줄 것이니 말이다.
우리가 만약,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욕심을 부리려다, 이리저리 많이 꼬여버리게 되어, 도저히 풀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이 때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방법을 택할 것이다.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노력을 뒤로하고, 아깝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면, 너무나 억울하기도 하고, 얼마나 짜증이 나기도 하겠지만, 다른 뾰족한 방법이 있기라도 하겠는가?
이처럼, 무엇인가 욕심을 부리려다, 다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와야 하는 수모를 당하지 말고서, 아예 처음부터 가장 낮은 곳을 선택하여라.
쓸데없이, 매우 위태롭고 높은 곳으로 제일 먼저 올라가려는 헛된 욕심을 내지 말고서, 스스로 아주 낮고 겸손한 곳을 택하여라.
만약 당신이, 어쩌다 보니, 매우 위태로운 곳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면, 얼른 내려오는 것이 좋겠다.
남들에 의해 억지로 끌어 내려지는 수모를 당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세상을 엉터리로 살다가, 자기 허영으로 살다가, 나중에 당신의 모든 것이 도로아미타불로 되어버리지 않으려면 말이다.
당신은, 항상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머물고자 하여라.
이렇게 당신 마음이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머물 수 있어야, 진정한 사유가 가능해지지 않겠는가?
진정, 근원적 사유가 가능해질 수 있지 않겠는가?
당신 마음이 모든 것의 가장 바탕에, 가히 전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그러한 위치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세상 그 무엇도 잘 품어낼 수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