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깃털처럼 솜털처럼

(그림; stockcake.com)

by 신정수



매사에 은근히 까다로운 사람이 있다.

지나치게 소심한 사람도 있다.

유난히 자기 고집이 센 사람도 있다.

매우 인색하고 이기적인 사람도 있다.

늘 주변에 손해를 입히는 사람도 있다.

늘 불만으로 가득한 사람도 있다.


반면에,

매사에 너그러움과 여유로움으로 가득한 사람이 있다.

늘 대범하고 담대하기만 한 사람도 있다.

자기 고집보다는 합리와 조정의 인간미가 넘쳐나는 사람도 있다.

늘 배려하고 양보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늘 주변에 도움이 되는 사람도 있다.

늘 감사해하는 사람도 있다.


당신은 과연, 전자의 부류에 속하는가?, 후자의 부류에 속하는가?


아마, 실제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후자일 것이라고 주장할 공산이 매우 크다.

그러나, 당신의 주변 사람들이 볼 때는, 당신과는 정반대로 말할 수도 있겠다.

자기 성격에 관한 평가에 대해서도, 역시 ‘아전인수’의 마음이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당신은 스스로의 생에 대해, 좀 더 보수적으로 가다듬을 필요가 있겠다.

‘춘풍추상’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스스로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만은 좀 더 까다로울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객관적인 균형을 어느 정도 잡아나갈 수 있다.

그래야만, 비로소 남들이 조금씩 더 당신을 제대로 인정해 주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서, 당신 생은 참으로 아름답게 완성되어 갈 것이 아니겠는가?


여기서, 전자의 사람들(까다롭고, 소심하고, 고집이 센 등으로 반응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들이 매우 ‘불편한 사람(상대의 마음속에 매우 불편한 감정이 일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왠지 불편하고, 왠지 마음에 안 들고, 왠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그러한 느낌이 마구 드는 부류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매우 무겁고 칙칙한 마음의 소유자라고도 말할 수 있다.

자기 마음이 현실에 너무 팍팍하게 구속되어 있고, 이래저래 자기 삶에 매우 찌들어 있기도 할 것이며, 특히 자기 욕심이나 집착스런 마음에 너무나 눈이 멀어져 있는 그러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후자의 공통점은 바로 그들이 비교적 ‘편안한 사람(상대의 마음속에 아주 편한 감정이 싹트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을 만나게 되면, 왠지 모르게 편안해지고, 같이 오래 머물고 싶어지고, 앞으로도 자주 만나고 싶은 그러한 느낌이 발동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편안한 사람이란 바로 매우 가볍고 푸근한 마음의 소유자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즉, 자기 마음이 그 어디에도 구속되어 있지 않아, 마치 깃털처럼 가볍고 솜털처럼 푸근한 그러한 사람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전자의 사람들은 왜 그렇게 불편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 근본적인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먼저, 자기 지식이나 함양이 많이 부족해서 그러할 수 있다.

남들보다 가진 지식이나 함양, 내공 등이 많이 부족하게 되면, 어느 정도 열등감이 작용할 수 있고, 이러한 열등감은 자격지심 내지는 자기 방어 기제를 불러오게 될 것이므로, 유난히 까다롭게 반응할 가능성이 상당히 커질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 혹은 아주 작은 일에 대해서 조차도, 과도하게 반응하거나, 매우 민감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또, 막연히 고집이 매우 세어서 그러할 수도 있다.

이런 부류들 가운데는 금수저이거나, 유난히 운이 좋은 경우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애초부터 금수저의 신분으로 태어났다면, 안하무인 측면의 성격이 강해지고 성장하면서부터 점차 쇠고집으로 되어갈 가능성도 그만큼 커질 수 있으니 말이다.

뜻밖으로 아주 큰 행운을 잡아, 자기 생이 매우 탄탄대로가 되어, 그 콧대가 하늘을 찌를 듯하고, 개구리 올챙이 적 기억을 못 하는 격이 되어버리고 마는 경우도 이와 유사할 수 있다.


깃털처럼 솜털처럼-1.jpg “결코 까다롭지 않아 편한 마음!”(그림;.betterup.com/blog)



또, 개인의 특수한 경험이나 환경, 트라무마 등으로 인해, 사회성이 매우 떨어져서 그러할 수도 있다.

어떤 이유로든, 사회성이 크게 떨어진 경우라면, 성격적으로 매우 엉뚱한 구석이 많아지게 되고, 대인관계에서도 점차 개념이 별로 없어지고, 소외감이 지나치게 커지는 등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사회성을 회복하려면, 좀 더 많은 소통과 교류를 잘 이어나가야 할 것이겠지만, 이런 부족한 사회성이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되고, 결국은 더욱 음침하고 외로운 곳에 자신을 틀어 박히게 하기가 일쑤일 것이니, 그 사태는 더욱 악화되어가기만 할 수도 있다.


또한, 유전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인간도 동물적 혹은 원초적 특성을 꽤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경우는 처음의 시작부터 다소 불리하게 출발한 격에 해당한다.

그러니, 우리 사회 시스템이 이들에게 도움을 좀 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그래서, 이들의 개선 의지를 돕고, 사회 전체를 좀 더 갈등이 적은 사회, 비소모적인 사회, 초선진국형 사회로 만들어 나갈 수 있었으면, 참 좋겠으니 말이다.


그럼 여기서, 이렇게 매우 불편한 부류(전자의 부류)의 사람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그 개인적 문제점 혹은 사회적 영향은 무엇일까?


먼저,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역할에 있어, 여러 측면에서 한계를 보일 수 있다.

물론, 일정 수준 이상은 자기 성장과 성취가 가능하겠지만, 그 이상은 좀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혹은 큰 고비가 올 때마다, 이런 문제적 성격이 자기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충분히 그 기회를 잡거나, 고비를 넘길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조금씩 조금씩 모자랄 수 있는 것이다.

아주 작은 몇 퍼센트가 부족하여, 결과적으로는 자기 한계에 부닥치고 마는 경우이겠다.


또, 이런 문제점은 알게 모르게 주변에 피해를 많이 주게 된다.

그 까다로움으로, 그 알량한 자기 고집으로,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 등으로 인하여 주변을 매우 힘들게 할 수도 있는 문제이니 말이다.

특히, 이런 성향의 사람들이 조직의 장을 맡고 있다면, 그 하부 조직에는 심리적 부하가 아주 많이 걸릴 수 있다.

상사의 그러한 까다로움과 고집 등으로 인해, 조직 내부에는 심리적 갈등이나 여러 부담이 엄청나게 가중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또한, 이런 사람들은 친구나 지인을 오래 사귀기도 힘들 것이다.

처음에는 그 관계가 비교적 순조로울 수 있어도, 얼마 가지 않아 그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니 말이다.

즉, 이러한 그의 성격적 문제점이 자기 친구나 지인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면, 모두들 경계심이 점차 증가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는 손사래를 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치 “디테일에 악마가 있다.”라는 말처럼, 서로 친밀해져 가면서, 서로에 대해 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그럴수록 더욱 그의 성격적 모순이 도드라져 보일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매우 까다롭고, 소심하고, 고집이 센 등의 사람들에게는 그 개선의 여지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일까?

물론,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사람의 성격은 절대 안 바뀐다.”라는 말이 마치 속담이나 격언처럼 우리 주변에 많이 돌아다니겠는가?

달리 특별한 비법은 없겠으나, 그 참조할만한 팁들 위주로 좀 살펴보기로 하자.

또한,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니, 비교적 후자의 경우(비교적 편안한 사람)라고 하더라도, 이런 팁들을 잘 한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겠다.


깃털처럼 솜털처럼-2.jpg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아라!”(그림;.betterup.com/blog)



첫째,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아라.


우리는 사실 쓸데없는 걱정을 너무 많이 한다.

대부분은 전혀 안 해도 될 걱정들을 말이다.


자식 걱정을 왜 하는가?

다 알아서들 잘할 터인데 말이다.

당신은 과연 ‘청출어람’을 모르는가?

혹여, 걱정이 심해지거나, 간섭 아닌 간섭이 늘어나게 되면, 더 역효과가 많아질 텐데 말이다.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그냥 옆에서 무덤덤하게 지켜보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만약, 꼭 지적해야 할 부분이나, 강조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저 말없이 솔선수범으로 전해 주어도 된다.

다소 무게가 있는 내용이라면, 격식을 잘 갖추어, 가족회의 같은 자리에서 정식으로 전해주어도 될 일이다.

돈이나 자리 걱정을 왜 하는가?

돈이나 높은 자리라는 것이, 더욱더 얻고 싶고, 오르고 싶은 마음이 인지상정이겠지만, 걱정을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니다.

또, 아무를 많이 벌었더라도, 아주 높은 자리까지 올랐더라도, 더 많이 얻고 싶어지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어 하는 끊임없는 욕심이 보통 사람의 심리일 것이다.

과연 그러한 욕심스런 마음에는 만족 혹은 한계라는 것이 아예 없다.


그러니, 차라리 현재 상태를 충분히 즐기고 누리려 해 보아라.

작은 돈도 쪼개어 잘 쓰고, 필요하면 좀 더 벌면 될 것이고, 그렇게 살다 보면, 스스로 잘 적응이 되어갈 것이기에, 별 불변함을 못 느끼게 된다.

인간은 대부분의 상황에 금방 안착하는 동물이니 말이다.

또, 높은 자리는 아니어도, 자신의 전문성을 잘 인정받으며, 재미있고 보람 있게 일하면 그만이다.

자기 자리를 가히 ‘대체 불가’의 자리로 만들어 나가면 될 것이다.

그러니, 돈이 그리 많지 않아도, 그렇게 높은 자리는 아니어도, 조금만 더 생각을 바꾸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한 요물스러운 것에 스스로 눈이 멀지만 않았다면, 현재에 충분히 만족해할 수도, 행복해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건강에 대해 왜 걱정을 하는가?

걱정을 하지 말고, 자기 건강 계획을 세워, 잘 실천해 나가는 것으로 족하여라.

즉, 오늘도 묵묵히, 내일도 지속해, 내가 견지해야 할 건강 수칙을 잘 실천해 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실천을 하였는 데도 불구하고, 나중에 예상치 못한 병마가 닥친다면, 그것이야 말로,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서야 어찌할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또 다른 대책을 잘 세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여라.

또, 우리 생명이 유한하듯이, 건강 또한 유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오히려 편할 것이다.


당신의 미래를 왜 걱정하는가?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을, 미리 당겨서 하게 되는 우를 범하지 말아라.

현재를 당신 계획대로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살다가, 혹시라도 나중에 미처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하기라도 한다면, 그때 가서 추가적으로 대책을 세우면 그만이다.

사전에 미리 걱정을 해서 될 문제가 절대 아니다.

모든 게 걱정보다는 묵묵한 계획과 실천이 중요할 것이니 말이다.

즉, 모든 것에 막연한 걱정은 금물이며, 이성적 판단과 논리적 계획 및 실천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그냥 현재를, 아무런 걱정 없이, 최대한 편하게 살아라.

누리며, 즐기며, 당신만의 뜻을 진정으로 추구하며, 그렇게 살아가라.

절대 소심해지거나, 마구 까다로워지거나,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아라.

그러한 소모적 마음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겠으니 말이다.


깃털처럼 솜털처럼-0'.jpg "깃털처럼 솜털처럼!"(그림; stockcake.com)



둘째, 까다로움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점차 까다로워져 가기가 매우 쉽다.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처음에는 별로 그렇지 않았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엄청 까다로워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이 겪게 되는 대부분의 일에 있어서, 자기 개인의 이익이나 입장, 처지 등이 크게 걸려 있기가 일쑤일 것이니 말이다.

즉, 여러 대인관계에 있어서, 처음에는 절대 그렇지 않았는데, 점차 자기 이익이나 입장, 처지 등이 눈앞에 아른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점차 까다로움의 굴레 속으로 스스로 빠져들기 쉽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까다로움은 자기 생각이나 느낌을 최대한 관철해 내기 위한 나름의 수단이기는 하겠지만, 사실상 그 효과가, 자기 생각보다는, 훨씬 더 작을 수밖에 없다.

이는 아마, 당신의 까다로움에 대해 상대의 반감이나 불편함 등이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당신에 대한 신뢰를 거둬들이고, 경계심을 크게 높이는 등으로 그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게 된다.

점차 설상가상으로 사태가 더욱 악화되어 갈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까다로움은 당신 생을 이래저래, 매우 황폐화시키기가 매우 쉬울 것이다.

당신과 불편한 관계 혹은 맞수, 적수들을 많이 만들 수가 있어서,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 내기에 많은 지장을 줄 수 있다.

결국, 당신이 원하는 생을 제대로 일구어 나가기에 적잖은 장애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겠다.


보통의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점차 그 거리를 멀어지게 하여, 결국 소원한 관계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다.

즉, 그러한 까다로움이, 인적 긴밀한 관계에 있어서, 크고 작은 상처와 생채기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있기에, 여러 형태의 인적 단절을 많이 불러올 수 있다.

그러니, 까다로움이라는 것은 당신에게,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이며, 오히려 당신 생에 큰 장애물 내지는 골칫덩어리가 되기 일쑤이다.

그러니, 조금의 까다로움도 모두모두 잘 버리고서, 쉽게 쉽게 살아 보도록 하여라.

아주 여유롭고 느긋하게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바로, 합리와 공정으로 관철된 까다로움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일종의 ‘은근한 까다로움’으로서, 당신 극복 대상의 일 순위가 되어야 한다.

즉, 스스로의 마음속에서는, 합리성 혹은 공정성을 추구하고 싶어서 혹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공정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나름 논리적이고 길게 하려는 경우이다.

말이 길면 길어질수록, 단서나 조건이 많이 붙기에, 점차 까다로워져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른바, “사설이 길다!”라고들 많이 표현하는 부분이다.


또 이런 경우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기보다는, 남의 눈치를 많이 보기에, 마치 습관화가 된 듯, 자기 언행이 상대에게 비추어지는 모습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는 진정성 혹은 순수성이 많이 떨어질 것이기에, 자칫 변명이나 가식이 되어버리기 일쑤이다.

즉, 말이라는 것이 원래, 자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솔직 담백한 형태가 가장 설득력이 있을 터인데, 이렇게 무엇인가 의도하는 바가 있는 듯한, 약간의 억지가 섞인 듯한 태도로는 결코 상대를 설득해 나갈 수 없다.

전혀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 당신은 합리를 가장한 합리성, 공정을 가장한 공정성을 절대 경계하여라.

모든 가식적인 행위, 심지어는 나름의 의도된 행위마저도 모두모두 잘 삼가고, 오직 그 진정성과 순수성으로 승부를 걸어라.

그래서, 서로 마음과 마음으로 소통하도록 하여라.

그런데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이게 생각만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직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가능할 수 있다.

상대의 진지한 말에 가끔씩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만으로도, 아주 큰 공감을 전달할 수 있다.

특히, 절대 까탈스럽지 않게,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는 것만으로도, 지극한 마음을 잘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상대방 또한 지극히 친근하고 밝은 표정으로, 당신에게로 자기 마음을 전해올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깃털처럼 솜털처럼-3.jpg “어차피 생은 백구과극이다!”(그림;.betterup.com/blog)



셋, 어차피 생은 촌각이다.


어차피 당신의 생은 매우 촌각, 이른바 ‘백구과극’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몇 년을 더 살아도, 몇 년을 덜 살아도, 별 차이가 없다.

조금 더 얻어도, 조금 덜 얻어도 별반 차이가 없다.

즉, 우리는 모두 아주 촌각의 생을 사는 것이니, 조금 더 이루어도, 조금 덜 이루어도, 모두 “소백보 소오백보”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촌각의 길이나 성취가 아니고, 그 촌각에 내재된 당신의 의미일 것이다.

그러니, 당신 생의 의미에 제대로 집중해 보아라.

당신 생에 깊이 새겨 넣고자 하는 당신 스스로의 의미 말이다.

그 의미를 제대로 빛나게 하기 위해, 그 촌각마저도 쪼개어 사용하여라.

이 의미는 결국 당신 생의 진정한 가치요, 깊은 향취가 될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당신 생에 얼나마 더 정성을 다하고, 또 다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혹여, 배고픈 하이에나처럼 이리저리 기웃거리거나, 한눈을 팔지 말아라.

그 촌각에, 남을 비방하거나 욕할 이유도, 짜증을 낼 이유도, 그럴 만한 시간조차도 전혀 없다.

어쩌다 위기를 맞게 되더라도, 낙담을 하거나, 우울해할 이유도, 시간도 없다.

늘 좋은 말만 입에 담고, 희망만을 노래해도, 그래도 턱없이 부족한 게 당신의 남은 시간이다.

항상 주변에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보내어도 부족한 게 당신의 남은 시간일 것이다.


이렇게, 당신의 유의미한 시간은 매우 촌각에 지나지 않으니, 항상 잘게 쪼개어 사용하고, 의미가 큰 곳에만 주로 집중하여라.

절대 한눈을 팔지 말고, 곧바로 직진하여라.

즉, 당신이 정말 꽂히는 일, 아주 의미가 크다고 생각하는 일 혹은 정말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여 보아라.

그러다 보니 어느덧,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마지막 순간에 와 있어라.

그러나, 결코 아무런 아쉬움도 없을 것이다.

당신은 주어진 촌각에 나름의 최선의 다했으니 말이다.

아주 즐거운 구경과 의미 있는 경험도 많이 해 보았으니 말이다.

과연 이렇게, 스스로에게 격려와 칭찬을 두둑이 한번 보내 보아라.


“그동안 때로 즐거운 생을, 때로 고된 생을 나름 열심히 살아왔으니, 수고가 무척 많았다.

이제 좀 편히 쉬어도 된다.

그럴만한 자격이 충분히 된다!”


생은 이렇게 촌각이니, 무애 까다로움이 필요하겠는가?

과연, 무슨 소심함이, 고집이, 이기심이 필요하겠는가?

이러한 부질없는 개념에서 바로 벗어나, 부디 아주 편안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

최대한 느긋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이런 생각이 아주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현실의 굴레 속에서 지금이라도 바로 빠져나와, 참다운 자유를 느낄 수 있어라.

다만, 당신의 의미에, 당신의 가치에 보다 충실하여, 이 땅에 좋은 카르마를 많이 남기고 떠나라.

훨훨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어라.

또, 당신의 고귀한 뜻이 후세들을 통해, 끊임없이 이어지게 하여라.

그동안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많은 것에 도전한 당신에게, 최선을 다한 당신에게, 기꺼이 박수를 보내 주어라.


깃털처럼 솜털처럼-4.jpg “욕심 내지 말고, 그냥 추구하여라!”(그림;.betterup.com/blog)



넷, 욕심 내지 말고, 그냥 추구하여라.


그 어떤 무리도, 욕심도 필요 없다.

세상 일에 뭣하러 무리를 하려 하는가?

굳이 뭣하러 욕심을 내려하는가?

당신이 돈을 아주 많이 벌어, 과연 어디에 그 많은 돈을 쓰려하는가?

그 많은 재산을 지켜내기 위해, 걱정만을 더욱 키울 수 있고, 온갖 구설수에만 휘말리기도 쉬울 것이며, 자식들 유산 상속 분쟁만 더욱 키우게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돈을 무시하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열심히 벌어, 그 한도 안에서, 좋은 곳에, 당신이 진정 원하는 바에 가치로이 쓰면 된다.

더 정확하게는, 기꺼이 그렇게 추구하려는 마음 자체가 매우 중요할 것이다.

그렇게 추구하는 과정과 지극한 마음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그 물질적인 부분이나 액수 같은 것이 중요하지는 않다고 보아햐 한다.


또, 별생각 없이, 아주 높은 자리에 오르면 또 무엇하는가?

그만큼 책임만 더 커지고, 당신 머리를 더욱 쥐어짜야 할 것이니 말이다.

특히, 능력은 전혀 안 되면서도, 그렇게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더욱더 큰 어려움에 시달릴 수 있다.

혹여 당신이 처신을 잘못하게 되면, 심한 꼰대의 모습을 하고 있거나, 조직의 암덩어리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릴 수도 있는 문제이다.

물론, 높은 자리를 멀리할 필요는 없겠으나, 거기에 오르려는 당신의 목적과 내용이 중요할 것이다.

당신이 그 자리에서 행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봉사는 더욱 중요할 것이다.


결국, 재력도, 자리도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실질적 내용이 참으로 중요하다.

더 구체적으로는, 그 내용을 추구하는 마음이 아주 중요하다.

또한, 당신이 진정 원하는 바에 대해 열심히 추구하다 보면, 때로는 일이 잘 안 풀릴 수도 있다.

여러 어려움에 봉착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너무 움츠려 들 필요가 전혀 없다.

인간의 추구 그 자체는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니, 차라리 아무런 거침도 없이, 아주 기세 좋게 나아가라.


어쩌다 실수가 있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모든 것을 아주 쿨하게 인정하고, 바로바로 털어버리면 된다.

다시 용기를 내기만 하면 된다.

다만, 아무런 무리나 욕심도 없이, 당신만의 뜻을 가득 담아,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당신 원하는 바를 지속해 추구하여라.

포기치만 않으면, 이루어내든, 못 이루어내든, 당신은 결국 승자이다.

패자라는 결론은 그 어디에도 있을 수 없을 것이기에 말이다.


다섯, 언제나 민감과 거리가 멀어져야 한다.


인간은 살다 보면, 거의 본능에 가깝게, 점점 민감해지기 쉽다.

한 가지 일에 빠져들기 쉽고, 그곳에서 여러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될 것이며, 그러한 선택이 자신의 여러 계산과 이익에 이래저래 연결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렇게 민감함에 자주 노출되게 되면, 누구라도 쉬이 신경질적으로 변하기 쉽고, 매우 소모적 마음을 가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며, 결국은 자신의 생 자체가 매우 피폐해지고,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아주 결정적인 순간에 민감해지는 것은 자칫 그 당해 상황을 파국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가령, 동료나 상사와의 마찰로 인하여 회사를 조기에 퇴사해야 한다든지, 무슨 일이나 계약의 끄트머리에서 자꾸만 파투가 난다든지, 사회적으로 그 인적 네트웍을 오래 간직하지 못하고서 자꾸만 단절을 빚는다든지 하는 일들이 모두가 결정적인 한순간의 민감함을 극복해 내지 못하여서 그렇게 되는 경우이겠다.

그러니, 자꾸 민감해지려는 자기 마음을 언제나 잘 추스르고서, 마음의 평정을 결코 잃지 말아라.


또, 무엇이든 결정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신중히 잘 생각한 후에 결정해야 하며, 한번 결정을 하였다면, 이리저리 헛갈려해 하지 말고,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 좋다.

그래야 자기 스스로의 마음에 자기 신뢰를 잘 부여할 수 있고, 상대편이 느끼는 감정에도 그대로 텔레파시처럼 전달할 수 있다.

그러니 무엇에든, 그 결정이 이루어진 후에는 자꾸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고, 더 이상 과거를 떠올릴 필요도 전혀 없다.

어차피 세상만사가 모두 ‘새옹지마’ 일 것인데, 과연 이렇게 해야, 자꾸 쓸데없는 미련을 가지게 되거나, 그로 인해 자기 민감성을 자극하게 되지도 않을 수 있다.

부질없는 자기 심리적 갈등으로 인해, 자기 감정과 마음을 소모하는 일도 없을 수 있다.

대신, 항상 당신 생에서, 도돌이 표를 최소화하고, 생의 탁 트인 대로를 큰 보폭으로 잘 걸어가게 할 수 있다.

자기 생에 높은 수준의 정체성이 잘 유지되고, 그 어떤 난국에도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다.


또한, 민감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남을 쉽게 의심하는 경우도 많다.

자기 보호 본능이 너무 강해, 상대의 사소한 언행에도 필요 이상으로 과민하게 반응하기 쉽다.

그래서 간혹, 확실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상대를 마구 의심하여, 결국 말다툼이나 파국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면, 자신이 틀린 경우도 꽤 많을 것이다.

모두가 불필요한 오해 혹은 말도 안 되는 오판이었던 것이다.

이른바, 괜한 의심으로, 생사람을 잡은 격이 되고 만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역시, 그 얄궂은 의심으로 인해, 상대에게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게 상대에게는 씻을 수 없는 아픔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매사에 좀 조심할 필요가 있다.

성격면으로 본다면, 다소 뒤끝이 없고 털털한 것이 좋다.

그냥 웬만해서는, 상대의 마음과 기분을 좀 맞추어 주려 하는 편이 좋다.

그래야 그러한 민감함을 잘 벗어나, 언제나 편안한 마음을 제대로 누릴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깃털처럼 솜털처럼-5.jpg 기꺼이 먼저 양보하려 하여라.!”(그림;.betterup.com/blog)


여섯, 가급적 당신이 먼저 양보하여라.


이는, 이른바 장기적인 관점에서의‘윈-윈 전략’이다.

세상 일이라는 것이, 이익과 손해가, 마치 수레바퀴의 위아래처럼, 번갈아 가며 발생하기 쉽다.

세상 평편이라는 것도,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계속 요동치며 뒤집힌다.

즉, 지금 한 번이 쉬우면, 다음 한 번은 어려워지기 쉽다.

이번에 양보하면 다음번에는 상대의 양보를 이끌어 내기가 매우 쉬워진다.

설령 상대의 양보를 못 받아낸다고 하더라도, 별 상관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적어도, 상대 마음의 빗장을 많이 풀어 젖힐 수 있을 것이니, 다음번 상황을 당신에게 훨씬 유리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겠으니 말이다.

장기적인 통계 관점에서는, 이러한 이익과 손해가, 양보와 혜택이 별반 큰 차이가 없을 수 있다.


그러니, 무슨 이익이나 잇권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더라도, 너무 대립하려 들지 말아라.

최대한 합리적이고 열린 대화를 이어가고, 당신이 양보할 수 있는 지점이 조금이라도 있거들랑, 얼른 먼저 양보해 주어라.

당신은 언제나 까다롭지 않아서, 상대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어라.

언제나 푸근하게 온 세상을 품을 수 있어라.

당신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그윽한 여유로움으로 언제나 양보를 잘하여라.

특히, 상대의 눈빛이 유난히 이글거릴 때는 꼭 양보를 잘해 줄 수 있도록 해 보아라.


그렇다고 하여, 당신이 아예 스스로의 이익을 포기하란 것은 절대 아니다.

매사, 서로의 이익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 좋으며, 그 이익을 몽땅 독차지하려는 욕심을 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차라리, 가급적 먼저 내어주고, 늦게 받으려는 것이 가장 상책이라고 보아야 한다.

훨씬 더 큰 것을 덤으로 얻을 수 있을 테니, 과연 가장 고수의 방법일 것이다.

당신이 늦게 받을수록, 상대의 마음까지 꽉꽉 눌러 받을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결국 사람을, 진정한 친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항상 편안한 생을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일곱, 어차피 생 자체가 덤이요 축복이다.


당신이 여기에 안 왔었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으니, 당신의 생은 그냥 덤인 것이다.

여기 당신의 몸짓이 없어도, 하나도 잘못된 것이 없을 테니, 당신 생은 참으로 덤인 셈이다.

신이 당신을 여기에 보내지 않았어도, 아무런 항변을 하지 못할 것이니, 당신 생은 정말로 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당신은 지금 덤으로 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니, 신의 선물이자 축복으로 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니, 그냥 아무런 부담도 없이 살아가라.

언제나 매우 홀가분해하고, 늘 감사하여라.

또, 어차피 당신의 생 또한 ‘공수래공수거’ 일 것이니, 그냥 아무런 욕심 없이 살다가, 빈손으로 떠나면 되는 것이겠다.

그래도, 더 이상 잃을 것이 무엇이겠는가?

아주 홀가분한 마음으로, 당신 생을 아주 편하게 살아 내어라.


늘 세상을 즐기면서, 매일매일을 기쁘게 살아라.

언제나, 세상의 신비로움을, 그 오묘한 섭리를 감탄해 마지못하여라.

세상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입을 다물지 못하여라.

세상 만물의 놀라운 자태와 생명력에 경탄을 금치 못하여라.

항상 여유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사랑하고 감사하며, 만면에 미소를 잃지 못하여라.

당신 주변의 그 누구에게든, 많은 응원을 보내 주고, 꿋꿋한 지지도 듬뿍 보내 주어라.

또, 이 땅의 모든 생명을 도우고 보살펴라.

그런 일들을 당연한 도리요 보람으로만 생각하고, 결코 아무런 표시나 내색마저도 하지 말아라.

그냥 그 상태로, 아무런 미련도, 아무런 여한도 없어라.

그냥 그렇게 스스로의 드러내지 않은 행적에 만족하며 살아라.

당신만의 유일무이하고 진정한 선을 결국 이루어 내어라.


신의 품으로 조금 일찍 돌아가면, 일찍 쉴 수 있어 좋을 것이다.

조금 늦게 돌아가더라도, 이웃과 후세들에게 조금 더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좋을 것이다.

그러니, 아무런 미련도, 서운함도 없어라.

억울함이나 이유 모를 불안감은 더더욱 없어라.

당신의 생은, 오직 편안함과 느긋함으로 가득하여라.

당신이 일찍 돌아가게 되었어도, 좀 늦게 돌아가게 되었어도 모두모두 좋은 일인 것이다.

이 모두가 당신을 이곳에 보내준, 그래서 세상을 온몸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 준 당신의 신 덕분이니, 진심으로 그분께 감사를 전하여라.



깃털처럼 솜털처럼-6.jpg “한없이 가볍고 푸근한 마음을 지녀라!”(그림;.betterup.com/blog)


여덟, 한없이 가볍고 푸근한 마음을 지녀라.


우리의 생은 참으로 덤일 것이니,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도 된다.

이러한 가벼운 마음은 또한 한없이 편안한 마음일 것이다.

편안한 마음은 다시 매우 푸근한 마음과도 상통한다.

그만큼, 자기 마음이 매사에 온전히 자유롭고, 그 무엇으로부터도 완전히 해방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하늘에 구름 흘러가듯, 아무런 무리도 없이, 아무런 부대낌도 없이, 그냥 그렇게 살아라.

탁 트인 광대한 대지에 물 흘러가듯, 그렇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살아라.

끝없는 공중에 뭇 바람 불어가듯 그렇게 아주 초연하기만 하여라.

복잡한 세상사에 이리저리 휘둘리지 말고, 이곳저곳 기웃거리지도 말고서, 그냥 당신 의지대로 나아가라.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아무런 거리낌이나 거침도 없이, 그냥 그렇게 홀연히 살아 내어라.


당신의 생은 참으로 여유롭기만 하여라.

참으로 느긋하기만 하여라.

그래서, 언제나 자신감이 흘러넘치고, 편온하기만하여라.

마음이 여유롭고 느긋한 자는, 언제나 무리가 없고, 매사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기에, 자기 가치에 용기로서 도전해 나갈 수 있다.

그 무엇에도 아무런 집착이나 미련이 없는 편이라, 언제나 평온한 마음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

어떠한 어려움에도 차분하게 대처하기에, 조바심이나 서두름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고, 대체로 편안함을 오래도록 지닐 수 있다.

언제나 만족해하며, 자기 생을 참으로 즐길 줄도 안다.

온 세상이 마치 자기 개인 것이나 된 양으로 말이다.


세상에 복잡한 것은 모두 모두 잘 정리해 내어라.

풀어야 할 문제는 바로바로 잘 풀고, 가지런히 바로잡아야 할 것 또한 잘 정리해 내어라.

어디에 차곡차곡 쟁여놓은 물건이 있거들랑, 이것마저도 모두모두 풀어놓아라.

모든 것을 과감히 처분하고, 이웃에 양보할 것은 서슴없이 양보도 잘하여라.

사실, 당신에게 꼭 필요한 물건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니, 당신 주변을 아주 아주 단출한 상태로 만들어 내어라.


사리사욕도, 욕심도 모두모두 집어던지고, 당신을 대표할 만한 가치만을 남겨라.

쓸모없는 미련도, 집착도 모두모두 처분하고서, 당신을 상징하는 마음만을 남겨라.

어디에 내어놓아도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는 당신의 소중한 생각만을 남겨라.

잡다하거나 복잡한 지식, 화려한 학식을 자랑 말고, 당신의 고갱이만을 남겨라.

과연 당신만의, 모든 면에서의 알맹이만을 남겨라.


만약 그러지 못하고서, 아무런 생각 없이 살다 보면, 온갖 잡스러운 것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당신을 마구 괴롭힐 것이다.

정말 가치로운 것은 얻지 못하고, 온갖 의미 없는 것들만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실속은 별로 없고, 당신 마음속에 온갖 잡동사니나 방치품으로만 가득할 수 있다.

당신 마음속에 혼란과 심란만을 가중시키는 꼴이 되어버릴 수 있다.


그러니 당신 주변을, 당신 생각을, 모두 모두 잘 정리해 내고서, 스스로를 한없이 홀가분하고 가볍게 만들어라.

그래서, 당신 스스로를 깃털처럼 가볍게 하여라.

당신 마음을 잘 어루만지고 가다듬어, 스스로를 한없이 고요하고 푸근하게 만들어라.

그래서, 당신 스스로를 솜털처럼 푸근하게 하여라!


"끝"

keyword
이전 06화네 에피타프에 승부를 걸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