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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찬 날갯짓

(그림;davidjeremiah.blog)

by 신정수



자기 생을 대하는 태도는 모두들 천차만별이고 백인백색일 것이다.

그런데, 이 태도는 자기 내면의 상태를 그대로 드러나 보이게 하는 창과도 같은 존재일 것이며, 스스로 자기 생을 대하는 큰 관점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자신의 태도에는 그 내면이 그대로 드러나, 훤히 비칠 것이니 말이다.

그 태도에는 스스로가 보고 있는 자기 생의 색채나 빛깔마저도 그대로 담길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행하는 태도를 가만히 들여다보게 되면, 그 사람의 깊은 내면도, 자기 생의 전반적인 모습들도 어느 정도 가늠해 낼 수 있겠다.

그 모습들은, 때로는 매우 비좁고 답답하기만 할 것이고, 때로는 아주 널찍하기도 할 것이며, 때로는 아주 아름답고 수준 높은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한편, 이렇게 스스로가 만들어낸 태도는, 역으로 다시 자기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만약 자기 태도가 매우 반듯하고 멋지다면, 매사에 거침이 별로 없어지게 될 것이므로, 자기 내면을 더욱더 돈독케 할 수 있고, 자신의 생 또한 비교적 풍부하고, 탄탄대로로 만들어 나갈 수 있겠다.

자기 생에서 비교적 큰 보람을 느끼며, 스스로가 원하는 가치 또한 잘 추구하며 살아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자기 태도가 개념이 매우 부족하거나, 마구 구겨져 있는 상태라면, 자기 내면이 점차 일그러져 갈 수 있고, 자신의 생 또한 이래저래 꼬여가기만 할 수 있겠다.

자기 생에 아무런 보람이나 의미를 찾을 수 없고, 결국은 이유 모를 허무나 회의에 휩싸일 수도 있겠다.


그러니, 자기 태도에 따라서, 얼마든지 스스로 만족해하고 행복해할 수도 있겠으며 혹은 그와는 정반대로 매일매일 불만족과 불행을 맛보며 살아야 할 수도 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자기 태도를 아주 반듯하고 멋지게 가질 수 있겠으며, 그럼으로써 자기 생에 희망의 최면을 걸 수 있을까?

과연 어떻게 처신해야, 자기 생에 ‘벅찬 날갯짓’을 힘차게 한번 해볼 수 있을까?


첫째. 상대를 존중하는 기초


대화 예절을 잘 지켜라.

요즘은 모바일 문화의 발달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의가 산만해지기 쉽고, 기초적인 예의마저도 잊어버리기가 쉽다.

그 예로, 타인과 대화를 하거나 혹은 어떤 형태의 소통, 교류를 하고 있을 때, 어디에서 폰이 걸려오면 온통 거기에 빠져들기 쉽다.

대화를 나누던 상대에 대해 미안해하는 내색조차 별로 없이, 엉뚱하게도 그 전화 속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듯하다.

심지어는 매우 정중해야 할 자리에서마저도 이렇게 일그러진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꽤 많다.

이른바, 최소한의 예의도 없고, 부끄러움이나 미안함조차도 거의 잘 모르는 상황이다.

역지사지로 잘 한번 생각해 보게 되면, 그 상대방은 얼마나 황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분마저도 매우 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상대와의 그 어떤 대화나 토론 등에서도, 가급적 당신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아주 짧게 끝내어라.

또, 가능한 한 산만하지 말고, 한눈을 팔지도 말고서, 그 주제에 최대한 집중해 주어라.

가급적 자주 눈을 마주쳐 줄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상호 간에 잠깐잠깐 마음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면, 더욱 금상첨화가 되겠다.

이러한 모습은 상대를 존중하는 아주 기초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태도-1.jpg 전화 예절 (그림;.insperity.com/blog)



타인의 말을 자꾸 끊으려 하지 말아라.

만약 대화 도중에, 상대의 말을 자주 끊어, 당신 말을 자꾸 끼워 넣으려 한다면, 이는 당신의 심각한 자기 집착 내지는, 아주 편협된 자기 고집일 수 있다.

상대를 무시하는 태도로 비칠 수도 있다.

상대의 기분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수도 있겠다.

그러니, 상대의 무슨 말에도, 가급적 끝까지 들어주는 매너를 기꺼이 보여주어라.

상대의 말이 매우 진지한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게 하여라.

언제나, 당신 의견을 잘 자제해 내고서, 먼저 상대의 의견부터 충분히 들어주어라.

당신의 입이 못내 간질간질하더라도, 끝까지 잘 인내해 내어라.

언제나 여유가 있고, 자신감이 넘쳐나는 당신이라면 꼭 그렇게 할 수 있어라.

이는 상대 존중의 기본일 것이니 말이다.


타인을 간섭하려 들지 말아라.

만약 당신이 사사건건 상대의 일에 간섭하려 든다면, 이는 도를 넘는 오지랖일 수 있다.

이러한 지나침은 상대에 대한 아주 오만방자한 태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게 더욱 심해진다면, 상대에게는 마치 ‘가스라이팅’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니, 아무리 당신의 오감이 마구 간질간질하더라도, 이것저것 마구 궁금해하지 말아라.

아무리 당신 눈이 휘둥그레지는 한이 있더라도, 너무 지나친 끼어들기는 하지 말아라.

더군다나, 상대의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일 혹은 상대가 그 공개를 결코 원치 않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최대한 잘 자제해 내고서, 먼저 상대의 얼굴빛부터 잘 살펴라.

그 사람의 마음빛도 잘 살펴 주어라.

그게 가장 우선일 것이니 말이다.

이러한 태도는 예의의 기초일 것이니 말이다.


인상을 쓰지 말아라.

상대를 진정 존중한다면, 무엇이든 편하게 대해주고, 무엇에도 화내지 말 것이며, 특히 인상을 마구 찌푸리지 말아라.

만약, 당신이 그 사람을 볼 때마다 자주 인상을 쓰고 있다면, 상대는 당신을 대할 때마다 짜증이 몰려올 것이며, 더 이상은 보기가 싫은 심정일 것이다.

마치 길을 지나다가 이상한 물체라도 밟은 기분일 것이다.

세상만사가, 적어도 심리 측면에서 볼 때는, 당신이 사는 세상이 가장 고되고 힘들 것이며,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가장 어렵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무슨 이익이 눈앞에 있더라도, 당신 몫의 밥그릇이 제일 작아 보일 것이며,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제일 짧아 보이기만 할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당신이 손해를 좀 보는 듯이 살아라.

타인들은 그러한 당신을 두고, 매우 형평성이 있고 공정한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또한, 세상 돌아가는 형세가 당신 마음에 전혀 들지 않더라도, 너무 슬퍼하거나, 우울해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정말 미워하는 사람이 잘 나가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더라도, 당신이 결코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승승장구를 하고 있더라도, 그냥 내버려 두어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서, 당신은 그저 당신 일에 더 집중하면 된다.

그런 것에 무엇하러 당신의 소중한 감정을 소모하려 하는가?

과연 무엇하러 당신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애를 끓이려 하는가?

세상 돌아가는 형세는, 그게 무엇이든 간에, 엎치락뒤치락할 것이니, 당신이 줄곧 잊어버리고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또 당신 마음에 속 드는 세상이 와 있을 수도 있다.

세상 일이라는 것이 모두 덜컹덜컹 거리며, 울퉁불퉁하게 굽이쳐 흘러가고 있을 것이므로, 전혀 종잡을 수 없는 ‘새옹지마’와도 유사할 것이니 말이다.


둘째, 상대를 존경하고 배려하는 기초


자신에게 좋은 것과 상대에게 좋은 것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가령, 자기 물건을 구입할 때는 비교적 저렴하고 가성비가 높은 것 위주로 선택하는 것이 매우 훌륭할 수 있겠지만, 지인이나 친구에게 줄 것에 대해서는, 될 수 있는 한, 좋은 것 혹은 귀한 것 위주로 고르는 게 좋다.

이는 상대 존경의 기초일 것이니 말이다.

그들을 높여주고, 인정해 주는 척도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또, 그 무엇에 있어서도, 자기 몫에 대해서는 평균 이하로 받게 되더라도 묵과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상대방의 몫에 대해서는 누가 보더다도 평균 이상이 되도록 잘 챙겨 주어야 하겠다.

그래서, 당신 처신에 아무런 오해가 없도록 하여라.


또한, 매사에 당신은 아주 공정하고, 합리적인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라.

언제나, 공평무사하고, 사리 분별을 아주 잘한다는 평가도 들을 수 있어라.

마치, 제갈량이 눈물을 머금으며 읍참마속(군대 내의 공정하고 공평한 군율을 지키기 위해, 자기가 매우 아끼는 마속이라는 장군의 목을 베었다는 일화)을 기어이 해 내었듯이 말이다.

마치, 초한쟁패기에 진평이 진평분육(제사를 지낸 후, 마을 사람들에게 제사 고기를 아주 공평하게 잘 나누어 주어서, 칭송이 자자했었다는 일화)을 아주 잘해 내었고, 결국은 명재상에까지 오를 수 있었듯이 말이다.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지 말아라.

가능한 한, 그런 말을 최소로 줄이기라도 하여라.

당신이 “바쁘다!”라고 자꾸 말하는 것은, 자칫 상대를 업신여기거나 낮잡아 보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때로는 당신을 매우 이기적으로 보이게 하거나, 오만한 자로 비치게 할 수도 있다.

때로는 완전히 이것저것 상황 판단이 제대로 안 되는 개념 없는 인간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다.

상대는 당연히, 당신보다 더 바쁘고, 더 존귀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당신의 시간 이상으로 상대의 시간이 매우 소중하고, 더 가치가 클 수도 있겠으니 말이다.


태도-2.jpg 세상의 다채로움 (그림;.insperity.com/blog)



사람을 너무 구별하려 들지 말아라.

이 세상은 원래, 잘난 자와 못난 자가, 풍족한 자와 부족한 자가 섞여, 다채롭게 살아가는 곳이니, 너무 구별하려 들지 말아라.

마구 차별하지는 더더욱 말아라.

더군다나, 자기와 일하는 성향이나 성격 유형(MBTI)이 잘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배타적으로 대하지 말아라.

상대방이 아무리 당신 마음에 안 들어도, 당신 보다 상급자라면, 거기에 걸맞은 충분한 예의를 표해 주어라.

또, 당신보다 하급자라고 하더라도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들의 자기 결정권, 인격적 권리나 자격 등에 대해서만은 충분히 인정해 주어라.

그 어떠한 경우라도, 공적으로 존경해 줄 대상은 충분히 존경해 주어야 하고, 인정해 줄 대상 또한 기꺼이 인정해 주어라.


또한, 아무리 당신 마음에 들지 않은 상황이어도, 절대 갈라 치기를 하려 들지 말아라.

당신의 정당한 주장이나 요구는 얼마든지 피력할 수 있겠지만, 불필요한 갈라 치기는 전혀 없게 하여라.

이를 위해서는, 자기 개인적인 감정이나 이해관계와 사회적 기본 도리를 철저히 분간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자기감정이 별로 좋지 못하더라도, 자기 이익을 위한 술수가 눈앞에서 어른거려도, 이런 것들이 결코 당신의 상황 판단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여라.

당신의 발걸음에, 앞날의 행동거지에 절대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여라.

즉, 자신의 안 좋은 감정이나 이해관계를, 개인적 사심으로 인해, 엉뚱한 곳에 대입하려 들지는 절대 말아야 하겠다.

그래서, 그 어떠한 경우에도, 당신 마음대로 상황을 난도질하여서는 아주 곤란하겠다.

이는 상대를 존경하고 배려하는 기초일 것이니 말이다.


선을 넘지 말아라.

어떤 경우라도, 마땅히 지켜주어야 하는 선이라는 것이 있다.

상대가 설정해 놓은 마음의 문에 해당하는 선도 있다.

그 선을 넘게 되면, 누군가 폭발하고 마는 선도, 큰 사고가 날 수 있는 그런 다소 무서운 선도 있을 것이다.

이 모두모두가 결코 넘어서지 말아야 할 선이다.

당신은 매사에 이러한 선을 잘 알아볼 줄 알아야 한다.

당신이 그동안 쌓아온 지혜의 촉각으로 말이다.

이러한 지혜를, 당신 생을 통하여, 지속해 잘 업그레이드하여 나가 보아라.

그렇게 하여, 당신 삶의 방식이 언제나 순조롭도록 하여라.

세상 아무 곳에서도, 그 누구에게도, 두루 잘 통할 수 있게 하여라.

이러한 삶의 방식은 상대를 배려하는 아주 기초이지 않겠는가?


태도-3.jpg "언제나 선을 넘지 말아라!”(그림;.insperity.com/blog)



셋째. 말버릇 챙기기


변명하지 말아라.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도, 변명하려 들지 말고, 차라리 차분히 설명을 하여라.

그 누구라도, 당신의 말이 과연 변명인지, 아니면 설명인지를 충분히 구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의 구차한 말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당신은 오히려, 당신 범죄의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일 수 있으며, 상대의 인상을 심하게 찌푸리게 할 수도 있다.

상대의 깊은 속마음까지 닫게 만들 수도 있다.

자기 스스로가 매우 떳떳하고 당당하다면, 그렇게 구차한 말들이 무애 그리 필요하겠는가?

언제 어디서나, 아주 간결하고 차분한 설명으로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아라.


나이를 별로 이야기하지 말아라.

“저 사람은 늙었으니 ~ ~ 할 것이다!”

“저 사람은 나이가 너무 어려서 ~ ~ 하다!”

이런 말들은 모두가 상대를 인격적으로 보지 않고, 단순한 편견에 의한 자기 생각들을 늘어놓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렇게 나이를 가지고서, 이러쿵저러쿵 너무 쉽게 운운하는 것은 절대 정당하지도, 온당하지도 않다.

차라리, 스스로에 대한 모순에 더 가까울 것이다.

자신도 언젠가는 늙을 것이니 말이다.

자기 나이가 어렸던 시절에 대한 스스로의 모독일 수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말꼬리 물지 말아라.

사사건건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 있다.

생각만 해도 마구 짜증이 몰려온다.

아무리 요령 있게, 아무도 당해내지 못할 정도의 말 실력으로 꼬리를 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불쾌 그 자체이다.

아무런 가치도 없이, 서로 간의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만 초래할 뿐이다.

서로 감정만 상하고서, 허망하게 돌어서야 할 상황을 만들 뿐이다.


또, 미운 말을 삼가라.

제발 말을 좀 예쁘게 해 버릇하여라.

같은 말을 해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말이 있듯이, 아주 밉거나 질리게 하는 사람이 있고, 매우 정겹고 예쁘게 하는 사람이 있다.

가령, 상대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서,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자기 입장을 무조건 이해해 달라는 사람이 있다.

얼마나 밉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상대방은 자기 보다 더 절실하고 분명한 입장이 있을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자기 입장만을 집요하게 고집하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공수표를 마구 날리는 사람도 있다.

이런 부류는 마치 “양치기 소년”의 경우와 비슷하다.

자신이 불리할 때마다 마구 날린 공수표가 이미 산더머처럼 쌓였는 데도 불구하고, 계속 지켜지지 못할 공수표를 허공으로 날려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그 행실이 참으로 딱하고 한심할 노릇이다.

자고로 말버릇이 좋다는 것은, 같은 말이라도 아주 정직하고 예쁘게 표현하는 것이다.

자기 심정보다는 상대의 심정을 먼저 살피고 헤아리려는 배려이기도 하거니와, 자기 마음과 정서를 아주 예쁘게 가다듬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다.


넷째, 행동버릇 챙기기


전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지행 불합일’로 인하여 아는 것은 엄청나게 많아도, 그 행동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야말로, 자기 머리에 든 것과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이 아주 반대인 경우이다.

‘언행 불일치’로 인하여, 말은 청산유수처럼 화려하여도, 행동이 전혀 따라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야말로, 말로는 온갖 사탕발림으로, 화려한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현혹시킬 수 있어도, 그 행동은 아주 딴판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갈지자 행보’로 마구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른바, 줏대가 없거나, 매우 우유부단한 사람으로서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그 행동을 전혀 예측할 수 없게 하거나, 매우 종잡을 수 없게 만드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태도-4.jpg “스스로의 말버릇과 행동버릇을 잘 살펴라!” (그림;.insperity.com/blog)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들이 있다.

이른바, ‘혹세무민(세상을 미혹하고 백성을 속임)’ 혹은 ‘곡학아세(학문적 신념을 굽혀가며 세상에 아첨함)’ 하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은 가히 인간관계에서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온 세상 사람들을 자신의 화려한 혀로써 휘감아 돌리고, 세상인심을 쥐락펴락하는 부류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없는 것도 만들어 주고, 있는 것도 없애고, 그야말로, 선량한 자들의 마음을 마구 들었다 놓아다 하는, ‘심리의 마술사’라고도 할 수 있겠다.

세상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로 인하여, 매우 혼미해지고, 온통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러니, 그 누구라도 절대 이들을 극히 조심해야 하겠다.

험난한 세상에서 스스로를 잘 지켜낼 수 있도록, 끝까지 별 탈없이 잘 살아낼 수 있도록 말이다.


결국, 스스로를 잘 가다듬어라.

당신의 행동버릇을 아주 반듯하게 가다듬어라.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마치 빛이 나도록 말이다.

당신 몸짓에서 미치 후광이라도 환하게 비쳐 나오도록 말이다.

그러려면, 이른바 ‘지행합일’로, ‘언행일치’로, ‘군자대로’로, ‘견리사의(이익 앞에서도 오히려 인간의 도리를 먼저 생각함)’로 걸어가라.

설령, 가다가 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런 고집은 절대 꺾지 말아라.

오로지, 당신의 온당한 양심대로, 아주 올곧은 의지대로 세상을 살 수 있어라.

이렇게 올곧게 살아야, 당신이 그토록 원했을 매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생을 잘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래야 나중에, 당신 생에 보람을 가득 느낄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다섯째,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


피해의식을 지워라.

스스로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거나 혹은 자기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에 빠져드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아주 민감한 편이고, 늘 부정적이기 쉽다.

이런저런 불만으로 가득하며, 매사에 별로 만족해하는 경우가 드물다.

때로, 자기 속마음을 끝내 감추기 위해 극단의 완벽주의를 지향할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특히 위험한 부분은, 상대에 대해 무턱대고 오해를 잘하며, 자주 공격적인 성향으로 돌변하여 매우 광폭해지기 쉽다는 점일 것이다.

마치, 영조 임금이 자신의 뿌리 깊은 열등감과 완벽주의적 성향으로 인하여 아들마저도 죽였듯이 말이다.

그것도, 아주 유례가 없을 정도로, 참혹한 방법으로 말이다.


자존심을 다스려라.

자존심 혹은 자기 보호 본능이 지나치게 강하여, 매우 고집스러워지거나, 매사에 쉽게 까칠해지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주 다혈질적으로 변하거나, 자신을 허세나 허영심으로 화려하게 포장하려 들기도 한다.

특히 자신 보다 처지가 약한 사람을 대할 때 혹은 이익이 많이 걸려있는 경우에는, 아주 오만해지거나, 스스로 자만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자기 고집과 허세, 오만 등으로 인해 스스로 무너지기 쉽다.

이런 감정에 빠져들어, 주변과 어우러지지 못하고, 결국은 시름시름 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니 말이다.

자기 기분과 감정의 기복이 너무 심하여,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어내기도 매우 어려워진다.

지속해 추구할 수 있는 그 기세가 매우 부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니 말이다.

부디, 당신의 호연지기는 언제나 기연파경(약한 자를 괴롭히고 강한 자에 굴복한다)이라는 단순한 감정을 잘 극복해 내고, 시대의 정의를 잘 지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신감과 자존감으로 가득한 사람도 있다.

자기 내면이 자신감 혹은 자존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은 자신과 상대방을 모두 존중할 수 있기에, 매우 원만하면서도 합리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성향을 제대로 갖춘 자라면, 매사에 늘 겸손하기만 할 것이다.

만약, 자신감이 매우 결여된 사람이라면, 가히 겸손하고자 하는 용기조차도 내기도 힘들 것이다.

손해를 봐야 할 걱정을 떨칠 수가 없을 것이니 말이다.

자존감이 매우 부족한 사람이라면, 겸손이라는 개념의 의미조차 헤아리기 힘들 것이다.

자기 고집의 콧대가 너무 높을 것이기에 말이다.


그러니 이제, 스스로의 부질없는 걱정이나 콧대를 잘 다스려, 자신감과 자존감을 당신 품 안에 제대로 한번 안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치, 명문가 출신으로서 콧대가 엄청 높았던 추사 김정희가 오랜 유배의 역경 끝에 비로소 겸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이광사가 쓴 대흥사 대웅보전의 현판을 무리하게 내리게 하고 자신이 직접 쓴 현판으로 바꾸어 걸게 했던 일에 대해 사과하고 다시 원복 시킨 일, 이삼만의 글씨를 매우 깔보았던 일에 대해 사과하러 전주에 방문한 일 등) 했듯이 말이다.


태도-5.jpg 태도 (그림;.insperity.com/blog)



여섯째, 자기 생을 대하는 태도


자기 생을 바라보는 태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낙관주의와 염세주의일 것이다.

낙관주의는 긍정주의에 가까울 것이며, 세상 돌아가는 것을 매우 희망적이고, 좋게 좋게 보려는 방식이다.

이른바 세상 모든 것을 장밋빛으로 보는 관념이다.

그런데 아마, 많은 독자님들이 경험하였겠지만, 우리네 세상은 자기 생각하는 대로, 자기 말하는 대로 되기가 매우 쉽다.

그 생각이나 말이 매우 온당하거나 지극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또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마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과 유사한 효과가 나겠으니 말이다.


반면에, 염세주의(혹은 비관주의)는 부정주의에 매우 가까울 것이며, 세상 돌아가는 것을 매우 나쁘고 암울하게 보는 방식이다.

세상에는 병폐가 매우 많고, 도무지 고쳐지지 않을 것 같고, 그 미래 또한 전혀 발전적 혹은 진보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이른바 세상을 온통 잿빛으로 보는 관념이다.

이게 심해지면, 어차피 우리 모두가 죽어야 하고, 별다른 가치가 전혀 없으며, 죽기 전까지 별 의미 없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고 보기도 한다.

마치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말이다.

이러한 태도 역시 낙관주의의 경우와 동일한 이유로, 자기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되어가기가 매우 쉬울 것이다.

그러니, 마치 자기 생이 나쁜 쪽으로 최면을 걸리듯이, 점점 암울해져 가기만 할 것이다.


낙관주의에도 주의할 점이 있다.

위에서 보았듯이, 역시 염세주의보다는 낙관주의가 훨씬 더 유리하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낙관주의에도 분명히 주의해야 할 점이 제법 있다.

이른바 막연한 낙관주의이다.

아주 허무맹랑하고, 논리나 근거도 거의 희박하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마저도 아주 결여된 그러한 상태인 것이다.

매우 개념이 없고, 무턱대고 주장하여 외치기만 하는, 그게 전부인 그러한 상태인 것이다.

이는 마치, ‘과도한 낙관주의’ 혹은 ‘돈키호테식 낙관주의’라고 부를 수 있겠다.


자기 스스로도, 진심으로 생각해 볼 때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그러한 허무맹랑한 낙관주의는 절대 삼가라.

이러한 상태로는, 아무리 낙관적인 생각이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해 외쳐 보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고, 나중에 매우 허무한 감정만을 남길 수 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결코 온당하거나 지극할 수가 없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한 사상누각 같은 생각에 전혀 더 이상의 용기를 낼 수도, 기세를 이어갈 수도 어려울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는 제대로 된 낙관주의가 절대 못 되고, 헛된 망상 혹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말 수 있다.

결국, 스스로 무너져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하고 있는 모든 일에는 항상 합리적인 낙관주의 혹은 강인한 믿음의 낙관주의가 필요할 것이다.

절대 과도하지 않고 욕심도 내지 않아, 미래에 닥쳐올 수 있는 위기나 불행의 징조를 결코 간과하지 않는 그러한 다소 ‘보수적 낙관주의’ 혹은 ‘겸손한 낙관주의’도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언제나 너무 서두르지 않아, 매사에 차분하기만 한 그러한 ‘침착한 낙관주의’ 혹은 ‘절제된 낙관주의’도 꼭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 부디,

당신의 낙관주의에는 언제나, 그래야만 하는 논리나 근거가 잘 뒷받침될 수 있기를, 지극한 용기와 자기 믿음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면, 세상 모든 일이, 과연 당신이 믿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니 말이다!

이제, 스스로에게 강한 희망의 최면을 한번 걸어보아라.

벅찬 날갯짓을 힘차게 한번 해 보아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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