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livescience.com)
누구나 자기 생의 가치와 의미가 궁금할 수 있다.
즉, 자기 생이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겠으며, 그 의미가 무엇일 것이고, 어떤 향방으로 흘러가야 할 것인지가 매우 궁금할 수 있다.
이를 제대로 한번 알아보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이를 우리 역사적 맥락에서 한번 이해해 볼 필요가 있겠다.
그런데, 우리가 역사적 사실 혹은 그 흐름과 향방을 보는 관점은 참으로 다양하기만 하다.
여러 세력 혹은 힘 간의 다툼으로 보는 관점, 인간 도전의 역사로 보는 관점, 우연 혹은 선택의 연속으로 보는 관점, 필연의 연속으로 보는 관점, 우연한 사실들 간의 상호작용으로 보는 관점, 진보적 변화로 보는 관점, 신의 역사로 보는 관점 등이 바로 그 대표적인 시각일 것이다.
사실, 역사라는 의미는 워낙 다면적인 속성이 강한지라, 이들 한두 개 정도의 관점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고, 여러 가지 관점들을 융복합적으로 묶어 해석을 내어 놓아야, 그나마 어느 정도 그 진실된 속성에 좀 접근해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우리 역사가 말해주는 분명하고도 불변하는 진리는 무엇일까?
아마 그 해답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아래의 명제일 것 같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과연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는 인류 역사의 존재 자체도, 이 지구의 존재 자체도 매우 유한할 것이니, 세상에 과연 그 무엇을 영원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도, 완전히 담보할 수 있는 것도, 변하지 않는 것조차도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렇게 그 무엇도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이 없는 마당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가장 가치 있고 보람되게 살 수 있는 것일까?
우리 존재의 참 가치와 의미를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영원한 것이 없다면, 그래도 그 영원성에 가장 가까운 속성을 지닌 것은 무엇일까?
그 해답으로서, 혹자는 정의와 선(혹은 봉사)을 말할 것이다.
다른 이들은 예술과 창의(창조)를 말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이들은 자신의 멋진 삶 자체 혹은 정신적 가치와 종교(신앙) 등을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럼 우선, 이런 관점들을 하나하나 간단히 살펴보자.
먼저 “정의와 선”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자.
이 개념을 좀 더 현실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뜻으로, 한 마디로 말한다면, ‘진정한 봉사’에 가장 가까울 것 같다.
자기 생을 통해 묵묵히 그런 고귀한 뜻을 잘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은 차라리 자기희생에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겠으니 말이다.
때로는, 많이 외로울 수도 있지만, 아주 높은 수준의 가치라고도 말할 수 있겠으니 말이다.
“예술”이라 함은 또 어떠한가?
이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 혹은 인간의 숙련된 기교를 표현하는 일체의 행위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는데, 이에 대해서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표현한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의견이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는 것 같다.
이 의견은 예술을 마치 죽음을 초월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가히 예술의 길이라는 것은 그 정도로 숭고하고 고결할 수도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창의(혹은 창조)”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는 마치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고유의 미션이자 영원한 사명과도 유사하다.
당신이 만약 신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된다면, 아무런 새로운 의미가 없는 구태의연한 생의 답습이라는 것은 전혀 가치가 없을 수밖에 없을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편안하게 자기 내면에 안주하기만 하려는 삶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발견해 낼 수 있을까?
아무런 보람이나 의미조차도 발견해 낼 수 없지 않겠는가?
또, “멋진 삶”에 대해서는, 이 개념이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당신이 이 세상에서 과연 멋지게 사는 것 이상으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생이 얼마나 있을까?
이는 우리가 흔히 혼동하기 쉬운 쾌락이나 만끽, 무절제, 보여주기식 혹은 과시적인 삶 등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아마 이것과 유사한 수준의 개념은 있을 수 있어도, 그 가치를 완전히 뛰어넘는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아주 멋지게 살아가는 생은, 그게 당신의 행복을 위해 대단한 역할을 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나름의 아주 큰 의미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자기 스스로가 아주 멋지다고 인정할 수 있는 생이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지극한 가치일 수밖에 없을 것이니 말이다.
“정신적 가치와 종교(신앙)”라는 개념도 한번 살펴보자.
이를 넓게 보면, 인간의 사상(노장자 철학, 공자 철학, 그리스철학 등)과 종교는 두말할 나위도 없고, 자기 믿음, 직업정신, 자기 인품, 스포츠맨십, 장인정신 등까지도 모두 아우를 수 있다.
이는 때로, 인간에게 무한한 위안이 되어주고, 때로는 큰 정신적 희열 내지는 내적 의지가 되어주기도 하며, 때로는 당신의 인생 전체를 몽땅 가져다 바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가치가 되어줄 수도 있다.
그러니, 이러한 개념이 당신 생의 가장 기초적 기반이 되어줄 수 있겠으며, 평생을 통해 당신 정신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을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언급한 이런 개념들 자체도 별로 영원하지는 못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류가 그 역사를 통해 경험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이러한 길은 그래도 세상 사람들로부터 가장 큰 감동과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또, 자신의 가장 나중에, 그래도 아주 흐뭇하게 웃을 수 있는 그러한 덕목에 가깝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만의 하나라도, 비록 이렇게 살지는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이러한 길을 추구한 마음 그 자체만은 가히 ‘영원한 마음’이라고 인정해 주고 싶다.
그럼, 위에 언급한 다섯 가지 주제에 대해 당신이 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
현실적 방법론 측면을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첫 번째, 귀한 흔적을 많이 남겨라.
이 땅에 당신의 귀한 흔적을 많이 많이 남겨 보아라.
당신의 정의와 선 혹은 당신 봉사의 흔적을 최대한 많이 남겨 보아라.
이른바, 당신의 아주 선한 카르마를 주변으로 최대한 많이 전파해 보아라.
그러기 위해서, 이 땅에 당신의 귀한 뜻이 가득 담긴 씨앗을 많이 많이 뿌려 보아라.
그 씨앗이 후세들로 하여금 새로운 생명력을 지속해 부여해 나갈 수 있도록 잘 배려하여라.
그래서, 당신의 진정한 뜻과 의도가 후세를 통해 지속적으로 이어지게 하여라.
이를 위해, 늘 세상과 인간을 위해 봉사하고, 이 땅의 모든 생명을 위해서도 기꺼이 봉사할 수 있어라.
특별히, 아주 낮은 세상을 향해서는 더욱더 그렇게 하여라.
물론 어쩔 수 없이 인간은 누구나 자기 몫을 먼저 챙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귀한 가치를 항상 당신 곁에 두고서, 늘 고민하고, 최대한 많이 많이 챙겨 나가라.
아무런 무리도 필요하지 않겠으나, 그 지속해 추구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세상에 당신의 행적을 평가할 만한 절대적인 기준은 그 어디에도 결코 없을 것이니, 마음을 아주 편안하게 가져라.
그리고, 조금씩 더 당신의 뜻을 확장하고, 잘 키워나가기만 하면 된다.
남에게 손해를 주게 되는 일이나 나쁘다고 생각되는 일은 최대한 줄여 나가고, 좋은 일이나 훌륭한 행적을 차츰 더 늘려나가기만 하면 된다.
틈이 나는 대로, 이 땅에 당신의 귀한 자취를 하나하나 더 추가해 나가기만 하면 된다.
결과적으로 당신은, 당신 몫을 챙기는 것 이상으로 타인의 것을 더 많이 챙겨주는 큰 그릇이 되어 있어라.
세상으로부터 당신이 받은 은혜보다는, 당신이 세상을 향해 아낌없이 내어 준 은혜가 더 크게 하여라.
당신이 받은 용서의 무게보다는, 당신이 아무런 조건도 없이 행해준 용서의 무게가 더 무겁게 하여라.
당신이 받은 축복보다는, 당신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전해 준 축복이 훨씬 더 많도록 하여라.
어차피 당신이 이 세상에 와서,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것은 그 어디에도 없을 진대,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것 또한 당연히 그 어디에도 없을 진대, 이렇게 당신의 귀한 흔적을 많이 남겨놓는다면, 세상에 이보다 더 값진 재산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이보다 더한 가치가 그 어디에 또 있을 수 있겠는가?
특히, 세상 음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당신의 손길로 말미암아 매우 기뻐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값진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후세들이 대대로 당신의 흔적을 기쁘게 기리고, 또 누릴 수만 있다면, 과연 이보다 더 가치로운 일이 이디에 또 있을 수 있을까?
그러니, 당신은 아무런 욕심도 없이, 아무런 미련도 없이 그러한 방향을 지속해 견지하여라.
아무런 소유나 허세에도 결코 집착하지 말고서, 오직 의미 있는 당신의 자취를 이 땅에 조금이라도 더 많이 남기는 방향으로 말이다.
그러한 당신의 뜻을 주변에 잘 전파하는 일에 정말 진심이어 보아라.
당신의 고운 향기가 세상에 가득 묻어나게 하는 일에 참으로 진심이어 보아라.
간혹은, 당신이 손해를 좀 본다고 하더라도, 매우 어려운 점이 많다고 하더라도, 가급적 이런 가치로운 선택을 하는 일에 주저하지 말아라.
그 길은 바로 당신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생일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당신이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일 수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두 번째, 일상 그 자체가 늘 예술적이어라.
당신의 일상에 예술적 요소를 보다 많이 가미해 보아라.
말 한마디 할 때도, 글 한 줄을 쓸 때도, 행동 한 가지를 할 때도, 당신의 모든 움직임을 그저 아무런 생각도 없는 듯이 하지 말고, 그저 아주 밋밋하게 하지도 말고서, 아름다운 생각을 좀 더 많이 가미하여 보아라.
당신의 모든 몸짓도 보다 예술적으로 한번 표현하여 보아라.
당신이 미술, 음악, 공연, 문학 등의 예술 분야에 직접적으로 종사하지 않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만약, 음식이나 요리와 관련된 일에 종사한다면, 단순히 돈벌이를 넘어서서, 요리 자체에 당신의 예술적 혼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유사 요소들을 보다 더 가미해 보아라.
그리고, 그런 요소들을 차츰 더 생장시켜 나가 보아라.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고, 향도 좋고, 감동도 선사할 수 있는 그러한 방향으로 말이다.
이렇게 되면, 당신의 손님들은, 당신을 매우 호평할 것이고, 당신을 흔한 장사꾼으로는 전혀 보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요리 전문가, 전정한 세프, 참다운 직업인 등으로 여길 것이 아니겠는가?
당신 생에서, 이런 게 바로 가치이고 보람이 아니라면, 그 무엇이 가치요, 보람일 수 있겠는가?
당신이 만약, 건설 분야에 종사한다면, 건물도 교량도 모두 모두 예술적으로 건설하고, 도로나 도시 전체 또한 아주 예술적으로 꾸며 보아라.
심지어는 작은 실개천이나, 조그만 공간에 마저도 예술성을 보다 더 많이 가미해 보아라.
그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더 만족해하고, 얼마나 더 행복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런 예술성을 너무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겠다.
좀 더 디자인에 신경 쓰고, 좀 더 멋진 방향으로 시공하고, 좀 더 주거 여건이 안락하고 편안하도록 여러모로 잘 고려해 나가면 될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당신이 산업 분야에 종사한다면, 당신이 설계하고, 제조하고, 서비스하는 제품에 대해서, 보다 더 예술적인 요소를 많이 부여해 보아라.
소비자가 당신이 만들어 낸 그 제품을 만나서, 너무나 기뻐할 수 있다면, 아주 안전하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만 있다면,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당신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인가?
이 얼마나 가치롭고 보람된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당신이 아주 흔한 일반 사무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기능적으로나, 미관상으로나, 느낌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훌륭하게 만들어 내어 보아라.
그렇다고 하여, 당신의 예술적 감성을 위해, 자꾸 무엇을 꾸미려 하거나, 덧붙이는 일에 치중할 필요는 전혀 없다.
잘 생각해 보면, 아주 단순하면서도, 과학적이면서도, 예술적일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많이 열려 있을 것이다.
가령, 당신이 맡고 있는 업무를 너무나 말끔히 잘 정리해 내고, 유용한 첨단 기술을 잘 접목하여, 아주 편리하게 관리가 가능하고, 경제적으로도 효과가 있는 방법을 고안해 낸다면, 이 또한 예술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누군가가 당신이 서비스하고 있는 일을 대할 때면, 어김없이 마음이 편해지고, 크고 작은 감동을 받을 수만 있다면, 이 또한 당연히 예술성의 범주에 넣을 수 있겠으니 말이다.
그러니 혹여라도 오해를 하여, 당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예술성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이 세상 어떤 일도, 어디에 존재하는 그 무엇도, 예술성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
당신이 조금만 더 신경을 써서, 잘 살펴보게 되면, 당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분명히 예술적 요소를 여러 모로 많이 가미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많이 열려있을 것이다.
이를 잘 발견해 낼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이 최대로 많이 시도해 보고, 이런저런 내공도 많이 쌓아본다면, 분명히 많이 좋아지는 것만은 확실하지 않겠는가?
어디에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니, 아무런 염려도 필요 없고, 그냥 시간적으로나, 상대적으로나 보다 더 개선하기만 하면 될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아주 많은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일상에서 예술이라는 개념을 절대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고, 아주 다양한 분야에 걸쳐, 그 적용의 작은 씨앗을 잘 뿌리고, 점차 조금씩이라도 더 키워나가면 된다.
그래서, 당신 깊은 곳에 이미 내재된 그런 능력을 잘 불러내면 된다.
그런 당신의 예술성을 당신 일상에 점차 녹여나가기만 하면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처음에서는 다소 어설퍼 보일지는 몰라도, 나중에는 그 가치가 아주 무한정하게 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니, 절대 성급히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다.
당신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한번 추구해 보아라.
그래서, 당신 일상에 예술의 뿌리를 제대로 한번 내려 보아라.
당신 삶 속에 당신만의 색감을 잘 한번 풀어내고, 찬찬히 녹여 나가 보아라.
당신의 생이 점차, 너무나도 아름다워지고, 가치로워질 수 있도록 말이다.
처음에는 그 의미가 매우 적어도 좋다. 단지 언젠가는 그 의미가 눈덩이처럼 커져 나갈 수 있도록 그 씨앗을 부지런히 뿌려 두어라.
세 번째, 늘 창의가 깨어 있어라.
옛말에 ‘온고지신’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러한 온고지신도 ‘일일신우일신’의 뒷받침이 없이는 결코 그 가치를 제대로 이어가기가 어려울 수 있다.
아무리 옛 것이 중요하고 고귀하더라도, 그냥 거기에 옛 것으로 머물러 있게 되면, 결국 잊히거나 퇴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니, 늘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거나 추가해 주어야 한다.
즉, 그 옛 것이 계속 살아 숨쉬기 위해서는 과거의 시점에 그냥 머물러 있어서는 절대 안 되며, 지속해 ‘일일신우일신’의 마음으로 그 의미를 새롭게 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옛 것의 의미를 잘 되살리거나 떠받쳐 주어야만, 오늘에 그 의미가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특히, 그러한 과정에서 창의(혹은 창조)라는 개념은 너무나 중요하다.
이러한 창의의 개념은 기존 가치의 틀과 범위를 넘어, 아주 새로운 가치를 더 추가하고, 기존의 의미를 현재 시점의 개념으로 다시 재해석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 개념은 기존에 미발굴된 가치를 새로이 발굴해 내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에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을 드디어 깨닫게 하거나, 현 세상의 다른 가치와 접목하거나 융합적 방법을 통하여 전혀 새로운 가치를 추가로 만들어내는 행위 등이 모두 포함되는 개념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또, 옛 것과 현재의 것이 상호 가역적이라는 관점도 매우 중요하다.
가령, 한 나라의 문화유산은 그 나라의 힘이 부강해야 그 가치가 더욱 빛날 수 있다.
즉, 첨단 산업기술, 우주 산업, 군사력, 경제력 등, 현재의 힘이 막강한 나라만이 자기 문화유산, 역사 등을 제대로 지켜내고 발전시켜 낼 수 있다.
그렇지 못하다면, 주변 강대국에 의해 약탈의 대상이 되거나, 철저히 무시되거나, 때로는 역사 날조의 대상국이 되어버릴 수 있음을 우리의 긴 역사가 분명히 증명해주고 있다.
이렇게, 그 나라 전체의 새로운 경제, 정치나 첨단 산업 분야 등이 융성하여야 옛 문화유산을 당겨 올려, 더 발전시켜 나갈 수 있겠으며, 그야말로 아주 빛나게 해 줄 수도 있다.
거꾸로, 이렇게 당겨 올려진 문화유산은 그 나라의 현 국력을 더욱더 크게 키워주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해줄 수 있지 않겠는가?
현재 우리 주변의 여러 강대국들이 이런 사실을 너무나도 잘 증명해주고 있다.
이러한 논리를 우리의 일상에 한번 대입해 보아도, 상황은 매우 유사하다.
우리가 과거 혹은 현재에 머물러 있는 사람에게서 과연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
한 곳에 혹은 한 가지 생각에 매여있는 사람에게서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가치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마당에, 누군가가 하나의 기존 가치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에게서 무슨 의미를 더 발견해 낼 수 있을까?
또, 자신만의 생각이 전혀 없이, 그저 남의 뒷 꽁무니나 쫓아다니는 사람, 그저 남의 눈치 보기에 바쁜 사람에게서, 우리는 무슨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까?
어쩌면 창의라는 것은 마치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고유의 미션과도 유사하다.
만약 신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창의적이지 않고, 아무런 새로움도 없는 아주 구태의연한 인간으로부터 무슨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까?
과연 무슨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며, 무슨 의도나 의미 또한 발견해 낼 수 있을까?
모든 게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아마, 자기 생이 보다 더 가치로이, 그 의미가 제대로 살아 있으려면, 그 무엇보다 창의로워야 한다는 전제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아마, 창의로움은 신이 우리에게 선물해 준 가장 기초적이고도 아주 중요한 삶의 무기일 것임이 분명하다.
네 번째, 어느 순간에도 아주 멋져라.
멋진 삶에 대한 정의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 중요 의미를 대체적으로 보아서는, 별로 구차하지 않고 선이 분명한 삶, 자기 소신이 뚜렷한 삶, 진실되고 거침이 없는 삶, 대의를 따르는 큰 삶 등을 들 수 있겠다.
과연, 이러한 삶을 그 누가 마다할 수 있겠는가?
단지, 자신이 처한 현실이 그리 녹록지 않아, 감히 추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사람이 많을 뿐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자신감을 크게 한번 가져볼 필요가 있다.
이 역시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모든 일을 너무 자잘하게 보지 않고, 구차하지는 더더욱 말고서, 늘 대의적 명분과 자기 양심에 따라 나아가면 되는 것이겠다.
그래서 누가 뭐래도, 자기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기 삶이 아주 멋지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된다.
즉, 스스로의 생이 정말 멋지다고 인정하여, 자신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수 있으면 될 것이다.
단, 멋진 삶에는 ‘춘풍추상’이 중요함을 잘 인지하여야 한다.
즉, 남의 잘못이나 단점에 대해서는 봄바람처럼 따스하고 너그럽게 대해 주고, 자기 자신의 실수나 평가에 대해서는 가을날 서릿발처럼 아주 냉철하게 대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자기 일상에서나 사회적으로나, 큰 마찰과 사고성 이벤트를 최대한 줄일 수 있을 것이니, 자기 생에서 여러 곡절이나 굴곡이 적어지게 되어, 자기 생을 비교적 순탄하고, 지속적으로 멋지게 잘 가꾸어나갈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하여, 자기 생이 항상 탄탄대로이거나, 꼭 대단할 필요까지는 없다.
매사 자잘한 것들에 대해서는 자기 책장 넘기듯 쉽게 쉽게 넘기고, 자신의 순간적 이익이나 욕심에 너무 연연하지도 말고서, 비교적 자기 생을 초지일관으로 잘 꿰뚫어 나갈 수 있으면 된다.
또, 늘 자기 삶의 진실성과 대의 그리고 스스로의 양심에 아주 솔직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멋진 삶이란 과연 이러한 것이니, 누구나 한번 시도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삶은, 자기 생에서 이미 많은 것을 이루어 내었든, 결코 그렇지 못하였든 간에, 누구나 한번 자신감을 가지고서 도전해 볼 수 있는 길이다
이러한 생을 추구하여, 나중에 아무런 후회를 할 일도 없을 것이며, 차라리 아주 잘한 일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늘 자기 스스로가 매우 초지일관하여, 나름의 ‘삶의 선’이 분명하였고, 자기 소신 또한 매우 뚜렷하였다면, 그래서 아주 멋진 삶을 살아낼 수 있었다면, 흔히들 말하는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과연 무슨 미련이 더 있을 수 있겠는가?
차라리, 모든 면에서 매우 만족스럽고, 행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 아니겠는가?
다섯 번째, 당신 스스로의 믿음에 늘 진심이어라.
세상을 향한 당신만의 믿음에 항상 진심이어라.
당신의 정신적 가치(자기 믿음, 당신만의 직업정신, 진실된 인품 등),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훌륭한 사상이나 철학, 종교적 믿음이나 신앙 등, 당신이 진정으로 믿는 바, 그러한 가치에 충실하여라.
그 구체적인 믿음의 내용은 무엇이라도 좋으나, 항상 스스로 진실되고, 진심이기만 하면 될 것이다.
이러한 믿음이 당신의 큰 소신과 삶의 철학을 이루는 토대가 될 수 있게 하여라.
때로 당신에게 무한한 위안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며, 때로는 무한한 정신적 희열 내지는 내적 의지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당신이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 바, 그 이상으로 가치 있는 것이 과연 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한 당신만의 믿음에 언제나 진심이어라.
그런데, 사람이 살아가며, 그때그때 이익을 쫓기는 쉬워도, 이것저것에 허세를 부리기는 더욱 쉬워도, 이러한 믿음을 충실히 지켜내기란 그리 만만치가 않을 것이다.
물론 일시적으로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평생을 통해 지속해 그렇게 진심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자기 스스로를 배반하여, 자기 믿음과 정반대로 행동하기도 하고, 아주 작은 이익을 두고도 세상 사람들과 진흙탕 싸움을 하려 하거나, 아무것도 아닌 일로 타인에게 큰 상처를 주게 되거나, 심한 갑질이나 먹튀를 자행하고서도, 철면피처럼 '나 몰라라' 하는 일이 다반사인 모습 또한 우리 인간의 아주 흔한 모습일 것이니 말이다.
당신은 언제나 바로 눈앞의 이익이나 허세, 과시 등을 과감히 던져 버리고서, 보다 가치롭고 수준 높은 생을 살아낼 수 있어라.
늘 당신 본연의 자세와 믿음에 충실하여라.
당신이 진정으로 믿는 바는 물론이고, 스스로의 도전적 정신 가치 혹은 생의 철학적 관점 등에 보다 더 집중해 보라는 것이다.
어느 날 큰 이익이 당장에 당신 눈앞에서 어른거리더라도, 대단한 감언이설이 당신 뇌리를 어지럽히더라도, 심지어는 엄청난 유혹 행각이 당신의 심장을 마구 두들기라도, 결코 그런 것에 굴복해서는 곤란하겠다.
이런 것에 당신 마음이 굴복하거나, 당신 심장이 마구 두근거리거나, 당신 뇌리가 아주 솔깃해지다가는, 나중에 아주 후회막심할 것이니 말이다.
나중에는 그러한 사태를 도저히 주워 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완벽할 수가 없을 것이기에, 세상을 살아가며, 작은 이익이나 여러 유혹 앞에서 많은 방황을 하게 되겠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로 제자리로 돌아오는 자가 가장 현명할 것이다.
자기 본연의 믿음으로, 자기 원초적인 종교로 말이다.
자기 한없는 가치로 말이다.
여섯 번째, 주변을 기웃거리지 말아라.
잘 알려진 바와 같이, FOBO는 ‘결정 장애’에 해당한다.
자기 일에 대해, 무엇 하나 제대로 결정하지 못하고서, 자꾸 남의 눈치를 보아 가며, 주변을 심각하게 기웃거리고, 자기 결정은 항상 나중으로 미루게 된다.
이런 사람은 자기 시간 낭비가 대단히 심하고, 한곳에 집중하기를 제대로 못하여, 자기 생을 자기 뜻대로, 제대로 가꾸어 나가기가 매우 어렵다.
또한, FOMO는 심각한 오지랖에 해당할 수 있다.
이것저것, 만사에 간섭하기를 좋아하며, 여기저기를 마구 기웃거리기에, 자기 주도적 삶을 절대 살아갈 수가 없고, 무엇보다 실속이 전혀 없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시기나 질투 또한 매우 커서, 자기 정신적 소모와 삶의 스트레스가 대단히 심한 편이다.
기회주의자 혹은 한탕주의자는 또 어떠한가?
가령, 정치판에 기웃거리다가 자기 생을 몽땅 날려 버리는 사람도 대단히 많다.
이런 사람은, 진영 논리에 심각하게 물들어, 여기저기에 줄 대기를 매우 좋아하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탕을 노리려 한다.
도박판 혹은 사기성 게임판은 또 어떠한가?
이런 것에, 자기도 모르게 심각히 빠져들어, 극심한 중독 현상을 겪게 되고, 결국 자기 생을 몽땅 날려버리는 이들도 많다.
주변을 마구 기웃거리며, 아무리 기회를 엿보고 또 엿보아도, 결과적으로는 제로베이스로 다시 떨어지거나, 참혹한 나락의 맛을 보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이렇게 심각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자기 일상의 여러 중독현상(기호성 식품 중독, 특정 약물에 대한 중독, 특정 일이나 스포츠에 대한 중독 등)으로 인해, 여기저기를 마구 기웃거리다가, 허송세월만 보내게 되고, 자기 생을 몽땅 망쳐버리게 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삶 이후에는, 결국 눈물로써 아무리 후회를 해 보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는 것이겠다.
그러니, 당신은 절대, 당신 주변을 이리저리 기웃거리지 말아라.
이것저것에 마구, 개념 없이 손대지도 말아라.
모든 것을 항상 신중히 생각하여, 계획적이고 전략적으로 접근하여라.
그래서, 현재 당신이 도모하고 있는 일에, 언제나 집중을 잘하고, 늘 진심이어라.
당신의 굳은 의지나 믿음, 세상을 향한 당신만의 진실된 봉사에는 더욱더 진심이어 보아라.
매사를 이렇게 하여야, 당신 생에서 여러모로 느끼는 점도 많게 되고, 깨닫게 되는 점도 많게 되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아주 발전적인 생을 이루어낼 수가 있겠다.
당신이 진심으로 뜻하는 바를, 보다 용이하게 이루어 낼 수도 있겠다.
누구나 자기 생에 대한 만족의 기준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이런 게 바로 가치로운 생이 아니라면, 무엇이 과연 가치로운 생일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