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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월세는 40만 원까지만"

by 김듀키 Mar 1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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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0에 37만 원이요.”


 중개사가 알루미늄 철문을 열자마자 불부터 켠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7만 원짜리 집이 한눈에 담긴다.


바깥은 8월, 오후 2시의 뙤약볕은 눈을 뜨기도 힘든데, 서울 구도심 주택들은 어찌나 다닥다닥 붙어 있는지, 2층인데도 채광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확인차 불을 끄고 둘러보자 중개사가 금세 불을 켠다.


“여긴 관리비 따로 안 받아요. 주인집이 3층에 사시니까 직접 관리하세요.”


한여름에 돈도 안 되는 원룸을, 그것도 다섯 집이나 돈 것이 힘들었는지, 중개사는 이젠 신발조차 벗지 않고 문에 기대서서 결정을 독촉하고 있었다.


“반지하도 요즘은 40만 원이 기본이에요. 이런 집은 고민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계약하세요.”


“아 정말요? 그래도 제가 조금만 더…둘… 둘러… 봐도 될까요? 하하…”


월 40만 원 이상인 집은 볼 엄두조차 내기 싫다. 그렇게 주눅이 든 마음은 어느새 중개사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사각지대도 없을 만큼 좁은 방에서 내가 찾는 것은 사실 냄새다. 문을 열자마자 풍기는 이 은은한 곰팡이 냄새… 내지는 하수구 냄새. 이 냄새가 과연 극복 가능한 과제인가, 참고 살 수 있는 향기인가 생각해 보는 일.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40만 원 이하는 이제 더… 없는… 거죠?”


작곡가 한번 돼보겠다고 단기 알바로 겨우 생명 연장 중인 인생. 줄일 수 있는 건 최대한 줄여야 한다. 쩐이 부족하니 용기가 절로 쥐어짜진다. 500에 40만 원짜리 집은 이게 마지막인 걸 뻔히 알면서, 나답지 않게 재차 물어볼 용기가 난다. 하지만 중개사는 어디서 영혼이 호로록 빨린 듯한 얼굴로 고개만 끄덕인다. 그러다 갑자기 혼이 돌아온 듯한 얼굴로 묻는다.


“보증금 천만 원으로 올리긴 힘드세요? 아니면 월세 5만 원만 올려도 좋은 집 소개해 드릴 수 있는데.”


“저도 그럴 수 있으면 좋은데…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지만 힘들 것 같아요. 하하…”


다시 혼이 로그아웃된 듯한 중개사는 쿠션어 가득한 내 말에도 별 대꾸 없이 계단을 내려간다.



부동산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우리는 각자 땀만 훔쳤다. 그런데 앞서 걷던 중개사가 별안간 고개를 휙 돌려 묻는다.


“이 동네 집값은 알아보고 오신 거예요?”


“네, 대강…”


순 개뻥. 이 방, 저 방 어플이란 어플은 다 뒤지고 뒤져서 그나마 구옥이 있는 동네를 콕 집어 온 거다. 깔끔한 원룸 건물들만 있는 동네는 기본이 월 45만 원 이상이다. 이 동네를 찾아온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고르고 골라 온 내 경제 능력의 마지노선이다.  


“여기가 동네가 깔끔하진 않아도 역세권에 환승 없이 서울 중심가로 통하니까, 집값이 비싸요. 꼭 이 동네로 오셔야 하는 거 아니면 좀 더 외곽을 알아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 회사랑 가까이 얻으려고 하다 보니…”


또 뻥. 회사는 아니고 동훈이 형 작업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동훈이 형이 프로듀서로 일을 하게 됐다는 신생 기획사에 환승 없이 지하철로 1시간 안에 갈 수 있는 집을 원했다. 그래야 녹음도 하기 쉬울 테고. 10년째 실패 중인 작곡가 데뷔도 해낼 수 있겠지… 해낼 수 있겠니? 이제 그만 해내야지 않겠니?  


자신을 향한 다짐과 의심, 환멸의 감정을 오가는 사이, 갑자기 멈춰 선 중개사는 수첩을 살펴보다가 고민하는 듯한 얼굴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예, 어르신~ 우주 부동산이에요. 그 어르신네 201호 있잖아요. 아직 안 나갔죠? 혹시 월세를… 3만 원만 깎아서 42만 원에 내놓을 생각 없으세요?”


월세 42만 원까지는 괜찮다 말한 적 없는데? 눈을 똥그랗게 뜨고 쳐다보니 중개사는 잠자코 있으라는 듯 손짓을 한다.


“아니 어르신도 공실 있으면 손해니까… 예, 예, 그래요. 네, 들어가세요.”


밑도 끝도 없이 시작된 월세 3만 원 DC 딜은 수확이 없는 듯했다.


“저… 중개사님. 월세 40만 원까지만 생각하고 와서 더 늘리긴 힘들 것 같아요.”


“아니 8월엔 집도 안 나가니까. 공실로 오래 나와 있는 집들은 찔러보면 깎아 주기도 해요. 여기 주인 할아버지가 월세를 깎아준 역사가 없어서 그렇지. 이 집이 역까지 딱 도보 5분 거린데. 먹자골목 안에 있어 가지고 시끄럽긴 해도 젊은 사람들 살기엔 편한데…”


아니, 월세 42만 원을 원한 적이 없다니까 그러네? 그러나 중개사는 이런 내 의견은 안중에도 없는 듯 시선은 오직 수첩에만 고정돼 있었다.


“저기, 계약을 안 해도 되니까 방금 전화했던 곳, 거기가 원래 보증금 500에 45만 원이거든요? 한번 가서 보기만 하시게요.”


이사 비수기에 어떻게든 복비를 벌겠다는 집념 때문인지, 중개사는 월세 45만 원짜리 집을 한 번만 보고 가라고 보챘다. 그 무렵엔 나도 지칠 대로 지쳐, 중개사의 청대로 45만 원짜리 집을 구경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나는 5만 원을 더 쓸 생각이 없으니까. 그래, 오히려 잘 됐어. 구경하고 깔끔하게 헤어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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