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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어때? 우리 집은 맘에 들어?"

by 김듀키 Mar 1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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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개사 말대로 그 집은 지하철 역에서 딱 5분 거리, 먹자골목이라 지저분하면서도 생활하기엔 편해 보였다. 게다가 상가주택이 밀집한 골목이라 오늘 둘러봤던 주택가보단 건물 간 거리가 가깝지 않아 숨이 트였다.


건물은 아주 오래 묵은 티가 났다. 외벽의 색상은 비율 맞추기에 실패한 밍밍한 자판기 커피 색상. 입구는 더 환장할 컬러였다. 너무 푹 끓여 탕과 혼연일체가 돼버린 우거지를 연상케 했다. 처음부터 이 색상은 아니었겠지. 먹자골목의 기름과 냄새, 그 오랜 세월 건물을 내리쬔 햇볕, 골목 사이사이를 누비는 오토바이 매연까지 이 모든 게 크리에이티브한 컬러를 창조해 낸 것 같았다.


게다가 상가 주택인 게 무색할 정도로 1층은 창고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상가 건물이란 장점이 전혀 없잖아, 싶으면서도 주거하기엔 오히려 조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예요. 2층 201호고 평수도 9평이나 나와요. 괜찮죠?”


중개사가 한껏 영혼이 실린 목소리로 집을 소개했다. 나는 예의상 집으로 들어가 구석구석 구경하는 척을 했다.


창문이 어찌나 낡았는지, 방음이나 방풍 능력은 조금도 없어 보였지만 크기가 큰 건 마음에 들었다.


“집이 환해 보이죠? 여기가 사실 북향이에요. 근데 앞 건물이 가깝지가 않으니까 낮에 이렇게 밝아 보여요.”


어쩐지… 밖이 환한 건 보이는데 빛이 집 안에 스며드는 느낌은 없는 이유가 있었다. 뭐가 됐든 이 북향집도 월세 5만 원 아끼자고 계약 못 하는 것이 지금 내 처지다. 공허한 마음에 천장으로 눈을 돌렸다. 그런데 웬 커피색의 물자국이 천장 벽지를 두어 방울쯤 물들인 흔적이 보였다.


“저건 누수 자국인가요?”


“어디요? 어머! 그런가? 아닐 텐데… 여기가 오래됐어도 누수는 없을 걸요?”


중개사가 급히 수첩을 넘겨보는데 웬 할아버지 한 분이 문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집 보러 왔어?”


“아, 어르신~ 이거 천장에 누수 자국이에요?”


“응 아니야~”


저 말을 믿어도 되는 걸까? 이런 집도 월세가 45만 원이라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어쨌든 누수는 아니라는 거죠?”


“응~ 누수였으면 계속 진행이 됐겠지.”


그런가? 그래 알게 뭔가. 어차피 내가 살 집도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집을 둘러보는데, 할아버지가 가까이 다가와 날 유심히 살핀다.


“어째 청년은 낯이 익다? 인상이 좋아 그런가?”


“예? 하하… 전 처음 뵙는 것 같은데…”


“어디서 봤을까? 인상이 낯이 익는데… 이름이 어떻게 돼?”


“아, 저는 명진명입니다.”


“명진명?”


순간 할아버지의 동공이 커진 듯했다.


“명 씨? 진짜 이름이 명진명이야?”


“네… 저를 아세요?”


“아니? 몰라! 근데 너무 반갑다!! 명군! 어때? 우리 집은 맘에 들어?”


명 씨라는 특이한 성 때문일까? 할아버지는 신이 난 듯 내 팔을 쓰다듬고 반가워 어쩔 줄 모르셨다. 중개사도 처음엔 당황한 듯 할아버지를 보다 승부수를 띄우려는 지 월세 얘기를 꺼냈다.


“어르신~ 이 청년이 월세 40만 원 이상은 낼 형편이 안 된대요. 나중에 청년이 많이 벌거든 더 올려 받으시고 지금은 3만 원이라도 깎아 주는 게 어떠세요? 아주 마음에 쏙 드신 것 같은데?”


아니, 나 42만 원도 힘들다니까 그러네?


“아 명군이 사정이 어려워? 그래 젊을 땐 다 어렵지. 어떻게, 할아버지가 월세 3만 원만 깎아주면 계약할 거야?”


예? 왜 갑자기? 월세를 깎아준 역사가 없다는 분이… 왜? 아까 누수자국인 것 같다고 했던 게 마음에 걸려서? 정말 누수라서 집을 싸게 해치우려는 걸까?


“와… 어르신이랑 내가 부동산 거래만 20년을 했는데 월세 깎아주는 건 처음 본다!”


이거 중개사랑 할아버지가 짜고 치는 판에 걸려든 거 아닌가? 의심이 고개를 들자 나는 이 판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방어막을 쳤다.


“저, 죄송해요. 제가 사정이 있어… 월세 40만 원 아니면 못할 것 같아요.”


한 달에 5만 원?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에서 절대 깎으래야 깎을 수 없는 것이 월세 몇 만 원이다. 1~2만 원은 가능해도 5만 원은 안된다. 적어도 보증금을 100~200만 원은 올려야 깎을 수 있는 것이라고. 이로써 나는 이 누수판에서 빠져나온다!


“그래 까짓것 5만 원 깎자. 명군! 월세 40만 원 해줄게. 계약서 쓰러 가자!”


“진짜예요, 어르신?”


야 이건 미친 올가미다. 원래 월세 한 30만 원 하는 집 아니야? 연기인지 진심인지 중개사도 심각한 얼굴로 할아버지한테 월세를 5만 원이나 깎아주는 게 맞냐고 되묻는다. 나는 위협을 느끼고 뒷걸음질 치듯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내 월세 조건에는 관리비가 포함되어 있으니까.


“여기 관리비는 얼마예요?”


할아버지가 해맑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린다. 관리비가 2만 원인가 보다. 구옥은 관리비 없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기본 5만 원은 받는다. 그러니 2만 원이면 엄청 싸다고 생각하실 거다. 하지만 난 오직 40만 원만 말할 수 있는 앵무새처럼 40만 원만 반복하기로 했다.  


“아… 아쉽네요. 제가 관리비까지 포함해서 40만 원 이하를 찾는데…”


“그래? 그럼 명군은 관리비 공짜!”


“아니… 어르신 무슨 일 있으세요? 어째 이러시지?”


“청소, 관리, 어차피 할아버지가 다 하는데 명군은 공짜로 해줄 수 있지~ 옥상에 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헬스장도 있걸랑? 명군은 맘껏 써라~ 할아버지가 허락!”


갑자기 닥쳐온 행운 아님 완벽한 불운의 상황에 어안이 벙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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