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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경상도 가수가, 전라도 사투리를, 완벽하게 마스터해 왔다는 거예요?”
“네, 그것도 한 달 만에요.”
“와…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제 가이드를 계속 반복해서 듣고, 전라도 배경 영화만 한 달 내내 반복해서 봤대요. 대단하죠?”
어느 우주의 개그맨 지망생인 나를 만나고, 그 덕분에 첫 곡을 완성하고, 김용명이라는 가수를 만나 녹음까지 마친 어느 날, 나는 또 한 번 다른 우주의 나를 만나게 되었다. 지난번 만남 이후로 무려 한 달 만의 일이었다.
“그럼 그쪽은 이번 주만 벌써 5일째 시스템 오류를 겪고 있는 거예요?”
“네. 한 3일 차 되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오늘도 남의 집으로 들어오니까 이렇게 치킨도 얻어먹고 좋죠! 우리도 이러다 주인 할아버지처럼 외향인 되는 게, 신의 의도 아니에요?”
저녁 시간대에 내 집으로 잘못 들어온 그는, 치킨이나 먹고 가라는 내 제안을 한사코 거절했다. 하지만 나도 한사코 권유할 수밖에 없었다. 저 세계에서 아이스크림을 얻어먹었을 때 다짐하지 않았는가. 내 세계에 오는 사람에게 무언가 사주리라고. 도움이 돼 주리라고.
“제가 그쪽에 뭐 도움이 될 일은 없을까요? 혹…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무슨 일… 하세요?”
“저요? 저 애들 그림책 만들 때 그… 뭐라 그래야 하지? 이야기 만드는 거 도와주는 그런… 학원에 다니고 있어요.”
“오, 선생님이시구나. 너무 좋은 일 하시는데요? 원래 선생님이 꿈이었어요?”
“선생님이라고 말하기엔 좀 부끄럽고요. 그냥 이야기 만드는 거 도와주는 사람이죠. 하하… 뭐, 시간제로 수당 받는 일이라, 벌이도 안정적이지 않고요… 참 별 얘기 다 하게 되네요.”
“저도 뭐, 별 얘기 오늘 다 한 걸요? 우리끼리 있을 때나 이런 얘기 속 시원하게 하는 거죠.”
“우리끼리요? 그럼, 저도 루모스+에 들어갈 수 있는 건가요? 하하.”
“어? 원하세요? 얼마든지 가능하죠!”
“그럼, 다음 곡 쓰는데 제가 뭐 도와드릴 게 있을까요? 저 동화 작가 지망생이거든요. 뭐라도 제가 쓸모가 있으면…”
“아…! 그래서 그림책 선생님 일도 하는군요!”
“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전공을 글 쪽으로 했으니, 뭐라도 입에 풀칠하려 들면 그런 쪽으로 풀리긴 하더라고요.”
“그러면요… 뭔가 아이디어가 필요하긴 한데… 들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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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명과 첫 곡 녹음을 성공적으로 마친 날, 금자매는 내게 유금미가 부를 곡을 하나 써올 수 있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이 곡처럼 너무 타깃이 좁은 곡이면 안 돼. 유금미라는 가수에게 딱 맞는 곡이어야 돼.”
“원… 원하시는 곡 느낌이 있으세요?”
“음… 그러니까, 뭐랄까… 만선의 기쁨을 만끽하는 곡?”
“그렇지! 나는 이제 경력으로나, 나이로나, 뭔가 수확해야 하는 시기니까. 아, 진짜 우리 금향이는, 사랑이다! 기쁨이고, 만선이야! 만세!”
유금미의 간지러운 감탄에도 김금향은 익숙한 듯, ‘만선’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를 마인드맵 하느라 바빴다.
“누나들, 기대는 마세요. 쟤 접고, 펴고, 접고, 펴고, 접고, 펴고가 병인 애야. 게다가 누나들이 메시지까지 지금 정해서 던져준 거잖아. 쟨 지가 생각하는 메시지 아니면 곡을 아예 쓰질 못해.”
동훈 형의 욕지거리는 이제 완전히 앞담화로 전향된 듯했다. 그런데 나도 참 변태 같은 게, 동훈 형의 그 저주와 디스가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 언제부턴가 약처럼 꿀떡 삼키게 되더란 것이다. 몸에 좋은 약이 쓰지, 하며.
“접고, 펴고, 접고, 펴고, 접고, 펴고라… 한 여섯 번 되는구먼.”
유금미가 손가락으로 접고, 펴고를 세었다. 딱 동훈 형이 말한 횟수만큼.
“누나, 내가 입이 아파서 여섯 번으로 축소한 거예요. 실제론 열다섯 번도 넘어. 아니 열다섯 번이 뭐야, 한 스무 번은 넘지 않을까? 명명, 네가 입증해 봐.”
“예? 아… 네… 하하… 기억은 안 나지만, 많… 많이! 접고 그랬었습니다. 네…”
“접었던 이유가 뭐야? 네가 만든 곡에 실망해서?”
“예… 그렇죠. 하하…”
“넌 너한테 그렇게 실망하고도 또 하고 싶어?”
“쟤, 변태예요.”
“접고, 펴고, 접고, 펴고, 접고, 펴고! 나도 한 여섯 번 말하니까 더 말하기가 싫어진다. 질려, 완전 물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