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앞에는 '메리 호위트가 어린이 여러분에게 들려주는 충고의 시'라고 쓰여 있어요. 흑백의 표지가 아름다운 그림책들과는 다른 공포감이 거미줄에 매달려 있는 듯해요.
거미와 파리.
시작부터 정말이지 '안'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어쩌다 둘은 이렇게 그림책에 나란히 있게 되었을까요. 하지만 우리는 인생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누군가와 나란히 해야 하는 순간들이 꼭 있지요.
아름다운 그림책을 기대했다면 처음부터 그 마음을 내려놓고 보기로 해요. 아이들은 그동안 읽어줬던 그림책과 달라서 그런지 무시무시한 모습의 거미가 무서웠던 모양이에요.
이 책은 제가 아이들에게 읽어준 책은 아닙니다. 1학년 아이들에게 이제 글씨를 배웠으니, 선생님이 친구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처럼 좋아하는 책을 한 권 준비해서 '책 읽어주는 어린이'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이들은 일주일 동안 각자 좋아하는 책을 도서관에서 찾고 준비를 하여 친구들에게 읽어주는 활동을 했습니다.
예진이가 준비한 <거미와 개미>라는 그림책을 읽어주었는데, 무척이나 인상 깊었습니다. 새로운 형식의 그림책 이야기도 흥미로웠고요. 이번 주 저의 다꾸 책으로 당당히 뽑히게 되었어요!
거미가 부드럽고 친절한 목소리로 개미에게 칭찬을 하며 자신의 집으로 들어와 자기 집에 있는 거울에 비친 멋지고 고운 모습을 보라고 유인합니다. 처음에는 개미가 거미의 말에 거절하지만 지속적인 거미의 화려한 말솜씨와 거짓된 칭찬으로 개미는 그만 거미에게 깜빡 속고 맙니다.
"사랑스러운 아가씨! 슬기롭고 똑똑한 파리 아가씨 망사 같은 날개가 너무 멋져! 눈은 또 얼마나 찬란하게 빛나는지! 응접실에 가면 선반에 작은 거울이 하나 있는데 잠깐 들어오면 거울에 비친 고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야."
결국 개미는 거미의 거짓에 속아 무시무시한 거미줄에 그만. 교활한 거미에게 사납게 낚아 채인 개미는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었을 거예요. '그런 속임수에 걸려들지 말았어야 했는데, 처음에 거절했을 때 그냥 다른 곳으로 갔어야 했는데, 왜 거미의 이야기를 들었을까.' 그 순간을 후회하며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까요. 아무 소용이 없겠지만 그런 교활한 거미를 원망했다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자기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가끔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세상의 이야기만 들려주어야 하는 건지에 대한 고민이 들 때가 있어요. 아직은 좋은 이야기만 들려주고 싶은 마음도 가득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구석구석 아이들이 모르고 있다가 겪게 될 큰일 날 일들도 많잖아요. 요즘에는 아이들에게 사람들이 베푸는 친절에 대해 의심하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어른이 주면 받는 거야. 고맙습니다. 해야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세상이 달라지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내용도 달라지게 되네요. 아는 사람도 의심해야 하고, 낯선 사람에게는 곁을 주면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따라가서도 안되고 도움을 요청해도 어리니까 섣불리 다가가면 안 된다고 알려줘야 합니다. 밖에서 나눠주는 음식들도 절대로 받아서 먹으면 안 되는 일이에요.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정말 위험천만한 세상이지요. 슬프고 안타깝지만 현실입니다.
아이들에게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면,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를 자동으로 외치곤 합니다. 그런 반응에 웃음이 나기도 하고 많은 생각이 들어 슬프기도 합니다.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기에 그 수많은 일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는 것도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 속에서 상황으로 알려주기도 하지만 그 또한 한계가 있으니까요.
요즘엔 아이들이 온라인에서도 많은 일들을 겪습니다. 10대 아이들만 노리는 사이버 범죄도 많더라고요. 사이버상에서도 친절하게 다가가 친분을 쌓고 개인 정보를 수집하고, 그것을 통해 용돈을 벌 수 있다던지 다른 곳에 악용하는 사례도 수없이 접할 수 있습니다. 무서운 세상이지요. '그걸 왜 당할까?' 싶지만 친분을 쌓아 길들이기(그루밍) 수법을 쓰면 어린아이들은 쉽게 당하고 맙니다. 속이려는 사람을 어찌 피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모르고 있다가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기보다는 그래도 알고 있어야 여러 사례를 통해 더 어려운 상황을 피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가르칩니다. 교육 현장에서도 사이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어떤가요? 어쩌면 어른들의 세계에서 소위 '사기'라고 불리는 사건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저도 남을 잘 믿는 편이라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거절하지 못하고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중에 나쁜 사람을 만나 사기를 당하기도 합니다. 신규 시절 학교로 찾아와 자신의 어려운 처지 이야기를 하면서 물건을 하는데 필요하지 않은 비싼 물건을 산 적도 있습니다. 코로나 시기, 집 밖에도 나가지 못하던 일주일의 격리 기간에는 보이스 피싱을 당하기도 했어요.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데 나의 휴대폰 하나만 믿고 있었는데 일사철리로 저는 사기꾼의 거미줄에 그만 걸려들어서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다행히 금전적인 손실은 없었지만 정신적인 충격이 꽤나 있었어요.
그 상황을 멀리서 다시 생각해 보면서 '아, 그때 확인을 한번 더 했어야 했는데, 의심도 하지 못했어요. 경찰청, 금융감독원 등 진짜 존재하는 번호를 알려주고 전화를 연결했기에 의심을 하지 못했어요. 그런 나쁜 인간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과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당하다니, 분하고 분하여 잠 못 이루고 자다가 이불킥을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나의 신상을 알고 있는 그들의 세계가 무섭기도 하고 찜찜하여 오랫동안 써오던 휴대폰 전화번호를 변경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일을 당했다고 하면 같이 놀라기도 하고 위로의 말을 해주지만 '야, 그런 걸 속니?'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시 확인해 봤어야지! 그걸 못 알아챈 거야?' 하면서요. 저는 뭐 그러고 싶었겠습니까. 이 또한 귀한 경험으로 삼아서 앞으로 낯선 상황에 처했을 때 신중해져야 한다고 마음을 먹어봅니다. 늘 경계하고 살아갈 수는 없지만 조심해야 하는 것은 맞는 것 같아요.
그림책에서 '어린이 여러분에게 들려주는 충고의 시'는 어린이에게 들려주는 살아가는 삶에서 필요한 이야기지만 어른들에게도 언제나 필요한 충고가 될 수 있겠죠?
#다른 생각!
가끔은 낯선 거미줄에서 먹히지는 않지만 빠져나갈 수 없는 보금자리로 다가올 수도 있지요, 결혼처럼. 다정하게 은밀하게 다가오는 한 사람에게 걸려든 사랑의 거미줄! 어떤가요? 우리가 살고 있는 거미줄은 안전한가요? 당신의 거미는 당신에게 어떤 거미인가요? 너무 벗어난 이야기인가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이들에게 자신이 거미라면 무엇이 거미줄에 걸리면 좋을 것 같냐고 질문하며 활동을 했습니다. 다은이는 거미줄에 걸린 할머니를 그렸어요. 위험한 상황에 처한 할머니를 도와주고 싶어서 안전한 자신의 거미줄에 보호해 주려는 것이라고 설명을 해주는데 그때 저에게 떠오른 것이 '결혼'이라는 거미줄이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