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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Jan 23. 2024

마당 넓은 집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관사 위원회 결정의 날. 마음이 떨어질 듯 조마조마했다. 결정에 따라야겠지만 아슬아슬한 심정은 누가 알까.


"뭐가 그렇게 걱정이 많아? 안되면 또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되지."

뭐가 그리 쉽고 태평할까? 이 남자. 걱정 많은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지만 내가 갖는 마음들을 공감해 주고 받아들이기 전에 '멈춤!'하고 단순하게 만들어버리는 사람.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하면서 먼저 전화해서 물어볼까? 결론이 났나? 어떻게 되었을까? 손으로 입술을 자꾸 만지작거리고, 입술을 깨물고, 의미 없이 서성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남편이 한 말이다.


"띠리링"

전화를 들고 있다가 깜짝 놀라, 한 번도 채 울리기 전에 전화를 받아 들었다.


"선생님, 관사 위원회 회의 결과 가족관사에서 가족분들이 사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 네.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회의가 길어진 이유는 바로 우리 가족 때문이었다고 들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관사에 살 수 있게 되었으니 한시름 놓은 셈이다. 이제 한 고개 넘었다. 꿀꺽.


방 두 개, 화장실 하나 거실 하나. 관사 건물 안에는 가족 관사가 있는데, 기존에 선생님 두 분이 살고 계신 곳이었다. 지난번 너덜너덜한 벽지에 좁은 집은 구 건물이고 이번에 내가 들어가게 된 곳은 다행히도 그보다 덜 오래된 신 건물이었다.


이 학교에 아이 둘을 데리고 어떤 교사가 온다고 하자, 관사에 살고 계시던 J선생님이 우리 가족을 위해서 2층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J선생님은 들어오시면서 벽지도 새로 하고 들어오셨는데 순전히 우리를 위해 방을 옮겨주신다고 하니 죄송할 따름이었다. 이렇게 받아도 되는 걸까? 옮기는 방에 도배를 해 드리기로 하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기존에 관사에 계신 선생님이 우선일 테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 덕분에 이런 배려를 받게 된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실 텐데, 출근하기도 전에 이사 오기도 전에 이토록 따뜻한 배려를 심하게 받게 되었다. 이사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같은 건물이라 해도 다른 층으로 옮기고 새로 정리하느라 고생하셨을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보낸다.



내가 들어가기로 한 집은 꽤나 안락했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니, 셋이서 지낼 만한 크기였다. 이사하기 전 아파트를 채우던 짐들은 다 들어올 수 없었지만 그래도 출발이 나쁘지 않았다. 창을 열면 산이 보였고, 나무가 보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뭇가지에 즐비하게 앉은 새들이 노래를 했다.


관사로 이사를 마치고 교장 선생님과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도 예전에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좁은 관사에 아이들과 살았어요. 그때는 힘들기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행복했던 시간이었어. 아이들이랑 여기 있는 동안 정말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네, 앞으로 관사에서 죄송할 일이 많을 거 같아요. 아이들이 시끄럽게 할 텐데 잘 부탁드립니다."

"아냐, 그런 생각으로 아이들을 미리 다그치지 말아요. 아이들 친구도 데리고 와서 놀게 하고, 그냥 내 집이다 생각하고 편안하게 지내요."

그 말이 왜 이렇게 따뜻하던지 눈물이 핑 돌았다. 맞다. 내게 마당 넓은 집이 생긴 것이다. 집은 좁고 불편할지 몰라도 아이들과 저 드넓은 운동장이 내 마당이다 생각하고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내리라. 

무엇보다 좋은 분들이 많은 학교에서 얼마나 좋은 일들이 생길지 기대하자. 먼저 마음을 내어 방을 내어준 따스한 마음을 가진 선생님과 심란한 내 마음을 이해하고 다독여주신 교장 선생님이 있는 학교 아닌가.


어딜 가나 사람이구나 싶다. 살면서 만나게 되는 귀한 인연들 덕분에 삶은 달라진다. 나 또한 다른 많은 이들에게 따스한 마음을 베풀며 살아가야겠다. 따스한 말 한마디가 나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그대들은 모르겠지만 잊지 않고 감사함을 다른 방향으로 전하며 살아가야지.


마당이 넓은 집이 생기니 마음마저 넓어졌다. 잔디밭에 누워서 하늘에서 쏟아질 별을 구경도 할 수 있겠다. 집 앞에서 고기를 구워 먹어야겠다.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매일 달리기 연습을 해야겠다. '어떻게 살지?' 하는 걱정은 이제 그만 넣어두고 앞으로 '무엇을 하며 보내지?', '내일은 어떤 재밌는 일이 생길까?' 하는 기대로 하루하루를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보았다.

소소한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행운의 시간을 늘려가는 것.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 해. 우리에게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 닥치고 말았다.



<3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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