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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Jan 18. 2024

(프롤로그) 꼬불꼬불 인생길

사는 게 다 그런가요?

돌아돌아 온 산길이다. 몸이 휘청거린다. 길 따라 몸을 맡기니 울렁울렁 속이 거꾸로 뒤집히는 기분이다. 뒷 자석에 아이들은 '우웩 우웩' 넘어올 것 같다는 시늉을 한다. 하긴 내가 운전을 하면서도 멀미가 났다. 처음 가본 길이었다. 내비게이션에도 길은 펼칠 수 없을 정도로 꼬불꼬불한 길이었다. 낯설다. 낯선 것은 설렘보다 멀미처럼 두려운 마음이 일렁거리며 목까지 넘어왔다. 긴장이 되어서 깊은 숨을 내뱉기도 한다. 이런 길도 있구나. 운전하면서 이런 길은 처음이다. 웬일인지 내게 운전을 맡긴 남편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발령이 나고 가족들과 나는 심란한 상태에 놓였다. 집에서 넘나들 수 없는 거리라 우리가 살 곳을 정해야 하는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한다. 집에서 출퇴근하자니 너무 위험한 길이고 학교 근처로 이사를 하려니 아이들과 살만한 집도 많지 않았다. 만약에 시내에 집을 얻으면 아이들을 데리고 출퇴근하는 것도 만만치 않는 실정이었다. 지난 이야기이기에 이렇게 한 줄로 표현이 가능하건만. 그 당시에는 어떻게 결정할지 고민으로 잠 못 이루는 날도 많았고 머릿속은 미로처럼 복잡한 길 찾기의 연속이었다. 고민고민하는 피곤한 나날이 지속되자 입술도 다 부루트고 눈엔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오랜 세월 주말 부부로 삶이 안정되어 있지 않더랬다. 육아 휴직할 때 다 같이 살려고 집을 얻었다가 다시 복귀하면서 남편만 시부모님 집에 얹혀살기도 하고 이사를 수도 없이 했다. 사실 매주가 이사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니 주말 동안 지내려면 짐이 얼마나 많은지. 주말부부로 살면서 겪어야 했던 일들을 풀자면 무거운 한숨이 한보따리다.


어쩌면 살아가는 일은 알 수 없는 일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일 같다. 그래서 두렵다. 어떤 일이 내게 벌어질지. 4년 또는 5년마다 학교를 옮겨 다니는 것이 교사의 운명이지만 내가 원한다고 희망하는 곳으로 갈 수도 없다.

교대 동기 혜영이는 중학교를 올라가는 아들을 두고 2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로 발령을 받아 생이별을 하기도 했다. 1년만 버티면 다시 아들에게 돌아가겠다던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벌써 3년째 나가지 못하고 있다. 울면서 집을 떠나갔는데 참 신기하게도 시간은 잘 흘러간다. 혜영이는 본의 아니게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을 너무 사랑하게 되었다는 건 그들 가족에겐 비밀에 부치는 일이 되었다. 주말마다 아쉬운 소리를 하며 헤어지긴 했겠지만. 나는 혼자서 발령지마다 아이 둘을 데리고 다녔으니 나와는 또 다른 그녀의 삶이기도 하다.



꼬불꼬불했던 산 길을 지나 드디어 도착한 그곳. 겨울인데도 봄처럼 푸릇한 느낌이 났던 건 왜였을까?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 듯 내게 발령받은 학교의 첫 이미지는 그랬다. 추운 겨울인데도 희한하게 포근한 기분이었다. 두려움으로 찾아 나선 학교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내 마음과 달리 평화롭기만 했다. 노랗게 뜬 얼굴로 남편과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차에서 내리자마다 아이들은 넓은 운동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이들은 벌써 남편과 트랙을 달려 달리기 경주를 하고 있었다.


알록달록하고 긴 학교 건물 옆으로 아담한 주택 같은 관사가 눈에 보였다. 한 바퀴를 돌고 나니 파도치던 내 속도 가라앉는 듯했다.


"관사에서 살까?"

"어, 엄마. 괜찮은 것 같은데?"

농담처럼 툭 던졌는데, 아이들은 거침없이 대답하고는 천진한 표정이다.


시내로 집을 보러 갔는데, 처음 온 지역에 대한 거리감, 두려움이 엄습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 거기서 나 혼자 아이들과 어떻게 지내지? 아이들은 내가 퇴근하고 오는 동안 어떻게 보내게 될까? 그 생각만으로 또 눈물이 났다. 안 그래도 1년 전 적응했던 학교를 떠나온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솟구쳤다.



낯선 곳에서 이사하고 아이들과 출퇴근을 하기보다 관사에서 지내면 몸은 더 편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관사에서의 생활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었다. 남편과 나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관사에서 사는 것도 생각해 보자고 의논했다. 요즘은 시골에도 관사 생활하는 선생님들이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멀리서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많기에 자리가 잘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행정실에 전화를 해서 물어보니, 일단 신청을 하면 관사위원회 회의를 통해서 알려준다고 한다.




다시 기다려야 하는 시간. 시간이 지나야 만 해결되는 일들. 기다림과 선택의 연속.

빨리 정해져야 집도 이사해야 하고 마음이 급해서 발만 동동거렸다. 하지만 관사는 예상보다 열악했다. 화장실에 세탁기 놓을 곳이 없어 좁은 거실에 덩그러니 놓여있기도 하고, 냉장고며 세탁기도 현관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지 않았다. 베란다 없이 찬 바람이 들어오는 벽에 분홍색 방한 벽지가 노출된 채로 있기도 했다. 같이 관사를 함께 둘러본 k선생님은 출퇴근을 결정하셨다. 몸이 힘든 게 낫지 여기서는 우울증 걸릴 것 같다며. 그 말을 전하니 남편은 내게 예쁘게 꾸며줄 테니 그런 건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켰다. 관사만 되면 큰 고민은 끝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또한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한 고개 넘으면 또 또 다른 고개가 넘어야 할 고개들이 고개를 내밀고 기다린다. 고갯길을 넘고 나면 평화로운 햇살 가득한 평지가 나오려나요.


앞으로 어떤 길이 펼쳐질지 관심 있게 지켜봐 주세요! ^^

나의 삶을 돌아보며 나만의 기록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지만. (과연 진심인가? 쿨럭! 양심에 손을 얹기 무섭사옵니다만.)

첫 연재를 시작하며 <슬기로운 관사생활> 브런치 연재에 독자분들의 관심은 제게 큰 힘이 될 거 같아요.

갈수록 흥미로워질 슬기로운 관사생활 다음 편에도 꼭 놀러 오세요!




(사진출처 pixabay)


https://brunch.co.kr/@dropoflights/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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