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re are you from? (3)

싸움

by 이진규

평화주의자이고, 쫄보이며, 웬만하면 말 한마디로도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 애써온 나는, 살아오며 싸움과는 먼 삶을 살아왔다. 주먹다짐은 말할 것도 없고, 말싸움조차 피하는 편이다. 참다가 참다가 결국 말다툼이 벌어져도 그날 안에 풀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잠을 못 자는 성격이다. 그런 내가 단 한 번, 주먹을 쓰는 싸움을 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어느 날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WWF 프로레슬링을 흉내 내며 ‘레슬링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발을 구르고, 가슴을 툭 치면 과장된 연기로 휘청이며 쓰러지고, 티브이에서 보던 대로 한 아이가 다른 아이에 올라타서 어깨를 땅에 닿게 누르면 누군가는 심판 역할을 자처해 “원! 투! 쓰리!”를 외쳤다. 무척이나 재미있어 보였지만, 내향적인 나는 “같이 하자”는 말도 못 꺼내고 그저 멀찍이서 구경하는 관중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화장실에서 돌아오다가 우연히 레슬링을 하던 한 아이와 부딪혔는데, 그 타이밍이 묘하게 절묘해서 마치 내가 갑자기 링 위에 난입한 레슬러처럼 돼버렸다. 아이들과 나는 동시에 깔깔 웃었고, 그 일을 계기로 나도 레슬링 크루의 일원이 되었다. 함께 구르고 뒹굴며, 나도 ‘쉬는 시간 레슬러’가 되었다.


그 크루에는 영민이도 있었다. 또래보다 훨씬 큰 키에 덩치도 좋고 싸움도 잘해서 반에서 ‘3 짱’으로 불리던 아이였다. 당시 우리 반에는 싸움 서열 같은 게 있었고, 싸움을 하지 않는 아이들도 이 ‘싸움서열’에 관심을 가졌다. 영민이는 그런 구조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한 존재였고, 나 역시도 그를 어려워했다. 크루에 다른 아이들과는 친해졌지만, 영민이와는 어쩐지 가까워지기 어려웠다. 그는 레슬링 놀이에 참여하긴 했지만 살짝 거리를 둔 태도로 놀았다. 마치 ‘나는 너희랑 달라. 지금은 잠깐 놀아주는 거야’ 느낌. 그런 미묘한 거리감이 있었다.


레슬링 크루에서 활동을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 일이 터졌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쉬는 시간이 되자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링 위로 입장했다. 나는 한 아이와 한창 혈투(?)를 벌이는 중이었고, 그 아이가 ‘로프 반동’ 기술을 쓰겠다며 갑자기 교실 창가 쪽으로 달려갔다. 나도 받아주기 위해 반대쪽으로 달려가 상상의 로프에 반동해 다시 달려오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퍽.”


시야 밖에 서 있던 영민이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미처 미안하다는 말도 할 틈 없이 영민이는 얼굴을 굳히고 정색을 하며 내게 다가왔다. 교실이 조용해졌다. 모든 아이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나와 영민이를 바라봤다.


“죽을래?”


놀란 나는 뒷걸음질을 쳤고, 그는 달려들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내게는 슬로 모션처럼 느껴졌다.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틀었고, 동시에 뻗은 손이 정통으로 그의 얼굴에 닿았다. 정확한 타이밍, 정확한 위치. 큰 소리까지 났다. “쩍.”


영민이는 더 흥분해서 다시 달려들었지만, 이번에도 내가 피하면서 대충 뻗은 손이 운 좋게 반대쪽 뺨에 그대로 들어갔다. 두 번 연속 카운터 펀치를 맞은 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가까이 다가오진 못하고, 대신 소리를 질렀다.


“이리 와봐! 이리 오라고, 새끼야!”


그 순간,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우리 둘을 떼어놓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싸움을 해본 나는, 영민이와 나란히 서서 선생님의 회초리 찜질을 받고 어색하게 자리로 돌아갔다. 반 아이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영민이 아까 울었지? 피도 나던데?”


“야, 그럼 이진규가 이제 우리 반 3짱이야?”


울음이 승패를 결정하던 순수한 아이들의 룰 덕에 나는 졸지에 ‘3 짱’이 되었다. 그날 이후로 학년이 끝날 때까지 몇몇 아이들이 나에게 싸움을 걸어왔지만 나는 모두 피했다. 반에 짱과 2 짱은 자꾸 나와 영민이의 리턴 매치를 부추겼지만 다행히 영민이는 내게 싸움을 걸지 않았고 나는 영민이를 피해 다녔다. 혹시 다시 싸우면 내가 100% 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그 영민이도 이긴 강자’로 인식되었고, 덕분에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4학년, 5학년, 6학년을 거치는 동안 우리는 계속 다른 반이었고, 지나다 마주치는 일조차 드물어졌다. 5학년과 6학년 땐 교실도 서로 복도 끝과 끝반이라 얼굴 한 번 볼 일 없었다.


그렇게 점점 멀어졌던 영민이를 다시 마주친 건, 중학교 3학년 첫날이었다. 새로운 반에서 낯선 얼굴들을 둘러보다가 한 아이와 눈이 딱 마주쳤고, 우리는 동시에 “어?” 하고 웃었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앞서 걷는 영민이를 보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키 그대로였다. 그땐 또래보다 훨씬 컸는데, 이제는 오히려 다른 친구들보다 작아 보였다. 나는 조용히 그의 가방을 툭 치고는 옆에 나란히 섰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말을 트기 시작했다.


“야, 잘 지냈냐? 나 기억하지? 진짜 오랜만이다.”


그리고 어느샌가 우리 둘은 하굣길에 함께 걷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교실에서는 자리가 서로 멀었고, 영민이는 늘 지각 직전에 교실에 들어왔기 때문에 교실 안에서는 접점이 없었다. 하지만 학교가 끝나면, 우리는 언제나 마치 약속한 듯 하굣길 동무가 되었다.


영민이는 초등학교 때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진중하고 입이 무거운 중학생 아이가 되어있었다. 활발하고 자신만만했던 어린 시절의 모습과는 달리, 말수도 적고 생각이 깊어 보였다. 내게 그런 영민이는 나와 잘 맞는 좋은 친구였다.




어느 날, 평소 수업보다 재미있는 이야기에 진심이시던 가벼운 이미지의 영어 선생님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 너희 말이야… 내일모레면 고등학생이야. 지금부터 딱 3년만 죽어라 공부하면 인생이 달라져. 네 와이프 얼굴이 달라지고, 타고 다닐 차가 달라진다고… 선생님이 너희가 안타까워서 그래요, 이놈들아.”


현실적인 조언이었지만, 듣기 불편한 진실이기도 했다. 집에 가는 길, 나는 투덜거리듯 중얼거렸다.


“아 진짜 지긋지긋하다. 나는 그냥 타임머신 타고 대학 붙은 미래로 확 가버렸으면 좋겠어.”


그 말에 영민이는 아무 말 없이 웃었다. 그리고 한참을 조용히 걷더니 무심한 듯 물었다.


“너는 가고 싶은 대학교는 있어?”


“야, 대학교는 나중 문제고… 일단 고입고사가 걱정이야… 아참, 너 어느 고등학교 갈 거야? “


영민이는 땅을 바라보고 걸으며 대답했다.


“아, 나는 그냥 공고 갈 거야.”


뜬금없는 말이었다. 영민이의 성적이 어땠는지는 몰랐지만, 공고는 보통 중학교 때 안 좋은 아이들과 어울려 사고를 쳤거나 성적이 바닥일 때 선택하는 마지막 학교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의외였다.


“왜?”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


“고등학교 가자마자 아르바이트할 거야. 그리고 기술 배워서 졸업하면 바로 일 할 거야. 나… 실은 할머니랑 동생 둘이랑 셋이 살아. 아빠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집 나가셨어. 할머니는 몸이 안 좋으셔서 거의 누워 계시고, 내가 아침마다 동생들 챙겨줘야 해. 그래서 맨날 늦는 거야. 그냥… 내가 우리 집에서 아빠 역할을 해야 해. 동생들만큼은 평범하게 대학 보내고 싶어.”


그 말은 내 가슴을 쳤다. 멍해졌다. 그의 목소리, 눈빛에는 그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막연하게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그리고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교를 가기 위해 공부하는 나에 비해 영민이는 어른이었다.


영민이와의 대화는 나의 성장에 큰 영향을 주었다. 어른이 된 후에도, 누군가 부럽게 느껴질 때, 혹은 삶이 불공평하다고 느껴질 때, 그날의 영민이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에게 부끄러웠다.


나는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기 전에, 내가 누리고 가진 모든 것들에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