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금시 도농리
미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군가를 알아갈 때 자주 묻거나 받는 질문이다. 특히 군대라는 조직은 다양한 지역에서 자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에 이 질문을 수도 없이 주고받는다.
“I’m from Rhode Island.”
나는 질문의 의도가 의심스럽거나, 괜히 심술을 부리고 싶거나, 혹은 자격지심이 드는 날이면 가끔 이렇게 대답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질문.
“아니, ‘원래’ 어디서 왔냐고.”
나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아,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랐어.”
대부분 “아하” 하고 넘어가지만 개중에는 친근하게 한국에 대해 묻기도 한다.
“정말? 한국 어디?”
“서울 근처… 수도권 지역? 서울에서 한 30분 거리인데… 경기도 남양주.”
경기도 남양주시 도농동.
아직은 어른들께는 옛 이름인 ‘미금시 도농리‘ 로 불리던 동네,
국민학생에서 초등학생으로 타이틀이 바뀐 지 얼마 안 되어서 초등학생이라는 단어가 아직 어색했던,
그 시절 속 4학년 새 학년이 시작되던 첫날을 기억한다.
담임선생님은 칠판에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적고 스스로를 소개한 후, 아이들에게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시켰다.
키순서대로 자리를 배치받은 나는 중간쯤 앉아 긴장된 마음을 다독이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내 이름은 이진규입니다. 좋아하는 취미는 음악 감상이고요, 장래 희망은 과학자입니다.”
긴장한 탓에 손에 땀이 찬다. 내 차례가 끝난 후에도 호흡을 가다듬으며 내가 한 자기소개를 되뇌었다. 혹시 실수한 건 없을까? 다른 아이들의 자기소개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 자기소개는 마쳤으니 선생님 질문에 대답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혹시 우리 친구들 중에서 자기 집이 20평 넘는 사람, 손!”
40명 가까운 같은 반 아이들 대부분이 손을 들었다. 손을 들지 못한 몇몇 아이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불편했다. 혹시라도 내가 그들을 본 것을 들켰을까 의식적으로 선생님만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그럼 자기 집이 30평 이상인 사람, 손!”
이번에도 절반 이상 되는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다들 주위를 둘러보며 서로를 확인했다. 해마다 선생님들이 하는 같은 질문. 작년엔 아무 생각 없었는데, 왜인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선생님은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혹시 40평 이상인 사람, 손들어볼까?”
이번엔 나를 포함한 세 아이만 손을 들었다.
“우와! 50평? 50평 이상인 사람, 손!”
나는 손을 들지 않았다.
“아무도 없구나? 흠… 그럼 45평 이상인 사람, 손!”
지금 생각해 보면 믿기 힘든 이 상황 속에서 참 집요하셨던 선생님.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나는 손을 들지 않았다.
“와, 지웅이라고 했지? 나지웅이… 아버지는 무슨 일 하시니?”
“은행에서 일하세요.”
“그렇구나! 아까 또 누구누구가 손을 들었죠? 집이 40평 이상인 친구?”
아이들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들었다.
“그래, 아빠는 무슨 일 하시니?”
나는,
“회사원이요.”
하고 조용히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사실 아버지는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 건물의 건물주였고, 우리가 사는 4층은 58평이었다. 아버지는 자세히는 몰랐지만 회사에서 중책을 맡고 계셨다.
나는 처음 질문에 손을 들지 못했던 아이들의 시선이 불편했다. 남들보다 특별하기 싫었던 건지, 관심을 받는 게 싫었던 건지 그저 숨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후 학기가 시작되고 평범한 학교생활을 했다.
쉬는 시간엔 나도 유행을 따라 공기놀이와 동전 뒤집기에 열중했고, 다른 아이들처럼 가끔은 수업에 집중하지 않아 선생님께 꾸중을 듣기도 했다.
선생님의 체벌 방식은 한 손으로 볼을 꼬집고 다른 손으로 뺨을 때리는 식이었다. ‘짝’ 하는 소리에 비해 참을만한 강도였지만 그렇다고 장난 수준은 아니었다.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이런 체벌을 일주일에 두세 번씩 받았다. 수업 시간에 질문에 답하지 못하거나 청소 시간에 떠들었다거나 단체기합 등이 이유였다.
한 번은 숙제를 깜빡하고 집에 두고 온 적이 있었다.
“자, 숙제 꺼내서 책상 위에 올려둡니다. 숙제 안 해 온 녀석들, 앞으로 나와.”
익숙한 벌칙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차례로 아이들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줄을 서서 뺨을 맞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45평 이상 되는 집에 산다는 지웅이도 줄에 있었다.
지웅이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슬쩍 손을 들었다.
“응, 지웅아, 왜?”
“선생님, 저는 숙제를 했는데 깜빡하고 안 가져왔어요.”
선생님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지웅이에게는 살짝 꿀밤을 때리고는 다음 아이의 볼을 잡으며 말씀하셨다.
“이 녀석아, 다음부터는 꼭 챙겨서 다녀.”
교실은 이미 맞고 자리로 돌아가는 아이들과 그 모습을 보고 웃는 아이들로 소란스러웠다.
내 차례가 되자 나는 작게 말했다.
“선생님, 저도 숙제를 집에 두고 왔어요.”
선생님은 자리로 돌아가 앉아있는 지웅이와 나를 번갈아보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하, 이 녀석 봐라? 숙제를 안 했으면 그냥 벌을 받으면 될걸 잔머리를 굴립니까?”
짝! 짝! 짝!
연달아 뺨을 세 대 맞았다. 맞아서인지 창피해서인지 눈물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았다.
“너, 정말 숙제했어?”
“…네.”
“인마, 지금 당장 집에 가서 가져올 수 있어? 어디서 거짓말이야?”
나는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은 몇대고 더 때릴 기세였다.
그날 이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스승의 날이 돌아왔다.
아침 조회 시간,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와 책상 위 선물들을 보시곤 활짝 웃으셨다. 다양한 크기와 색깔의 선물 박스들과 봉투들이 놓여있었다.
“선생님이 겨울에 미국에를 다녀왔어요. 큰언니가 있어서 가봤는데, 마침 우리 언니 생일이어서 파티를 했거든. 그런데 글쎄 미국에서는 생일선물을 다들 보는 앞에서 열어보더라고. 이게, 이.. 조금 문화 충격이었지만 함께 즐거움을 나누던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나도 몇 개만 열어볼까?”
한껏 들뜬 표정으로 선물들을 열어볼 때마다 선생님은 가져온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모든 아이들이 선물을 준비해 온 것은 아니었다. 나는 선물을 가져오지 않은 아이들의 시선이 부끄러웠다.
선생님이 내 봉투를 발견하고 말했다.
“세상에… 이진규. 진규 어디있니? 와, 엄마한테 감사하다고 전해드려 주렴.”
우연인지 모르지만, 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선생님께 뺨을 맞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4학년이 끝나갈 때쯤, 나는 문득 궁금해서 어머니께 여쭈어보았다.
“엄마, 스승의 날에 우리 선생님한테 어떤 선물을 드렸어요?”
“백화점 상품권”
“얼마 나요?”
“얼마라고 하면 네가 아니?”
나는 선생님이 그날 이후로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학기 초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집안 평수를 물어봤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내년엔 선물하지 말아요”
어머니께서는 말없이 웃으시더니 잠시 후 퇴근한 아버지께 내 이야기를 꺼내셨다.
“진규 다 컸어… 글쎄,…”
어머니의 말을 술안주 거리로 듣던 아버지는 나를 쓱 쳐다보고는 어머니께 말씀하셨다.
“그래, 지가 잘나서 우리가 잘 사는 것도 아닌데, 당연히 그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