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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주 Jan 13. 2024

나에 대한 분노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한 주를 보냈다. 이번 주는 계획대로 이루어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매일 하기로 결심했던 요가도, 이른 아침 일어나 글을 쓰기로 한 다짐도 모두 허물어져버렸다.


나 자신과 한 약속을 어기는 일은 언제나 찝찝함을 불러일으킨다. 타인과의 약속은 아무리 몸이 아프거나 힘들어도 꾸역꾸역 지키면서 나 자신과의 약속은 이토록 가벼이 여기는 꼴이라니. 이럴 때 나는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일이 바빠서, 몸이 고돼서, 이래서, 저래서 하는 핑계들은 나를 더 게으르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럴 시간에 릴스나 숏츠를 덜 보고, 차라리 스레드에 짧은 글 하나라도 게시하는 게 이득임을 알면서도 나는 자꾸 핑곗거리를 찾는다. 그렇게 쌓인 시간들은 정신적인 피로와 죄책감으로 돌아오고, 무겁게 쌓인 시간들은 무언가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든다.


여전히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하는 게 가장 어렵고 힘들다. 나는 여전히 나를 컨트롤할 능력과 힘이 부족한 듯싶다. 쉽게 멘탈이 붕괴되고, 감정의 기복은 좀체 나아지질 않는다. 과거와 비교하면 나아졌다지만, 그런 비교는 현재의 내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비교와도 같다. 나는 지금의 나를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릴스와 숏츠를 훨씬 더 많이 보고, 몸을 덜 움직이고, 욕을 더 자주 쓰고, 좋지 않은 음식들을 몸에 잔뜩 구겨 넣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나를 똑바로 직면해야만 하는 것이다.


회피하고 싶은 내 모습을 직면할 때, 그때부터 비로소 변화는 시작된다. 그런 나를 인정하지 않으면, 변화는커녕 악순환만 반복될 뿐이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나를 직면하기 위해서. 글로써 낱낱이 파헤쳐진 못난 나를 두 눈을 통해  똑바로 직시하기 위함인 것이다.


모든 선택은 나로 인해 이루어졌다. 누군가가 강제로 시키거나 무어라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내가 나를 무시하고, 가벼이 여기고, 소중히 대하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니 무얼 탓하랴. 환경이나 남 탓을 하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정말로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해진 자들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참으로 어리석고 자만에 빠진 한 인간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의 자만과 오만, 게으름은 모두 나의 몫이다. 내가 흘려보낸 하루들도 모두 나의 책임 아래 있다. 그러니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시작되었고, 내가 아니면 아무도 해결할 수 없다. 나에 대한 분노는 결국 내가 만들어 낸 것이었고, 분노는 곧 부끄러움으로 이어져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다른 무언가를 탓하기 전에 내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는 일. 무엇보다 가장 중요시해야 할 태도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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