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젊은 여배우의 자살에 즈음하여
얼마 전, 음주 운전 경력이 있던 한 젊은 여배우가 자살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팬덤 문화의 엄격함, 악플 문제 등이 그녀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넣은 원인으로 거론되었고, 이에 대한 사회적 비판도 뒤따랐다.
하지만 조금 냉정하게 보자면, 팬덤의 압박도, 악플도 결국은 연예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일지도 모른다. 물론 건강하지 않은 팬 문화와 악플 문제는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자기만의 방법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어야 비로소 연예인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가 갑자기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연예인의 자살이 결국 ‘해장의 방법을 알지 못한 탓’이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 술자리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고 나는 선배들에게 모름지기 해장은 선지해장국으로 하는 것이라 배웠다. 소 피라 생각하니 입에 대기 어려웠지만, 선배들의 강권에 마지못해 먹기 시작하면서, 나중에는 선지 해장국을 먹지 않으면 해장이 되지 않는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연구소를 떠나 마케팅 부서로 옮기고 출장도 잦아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서울을 벗어나면 선지 해장국집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술자리는 계속되었고, 숙취를 해소해야 다시 저녁의 전투적인 술자리를 버틸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선지 해장국이 아닌 다른 해장법을 찾아야했고, 그렇게 여러가지 해장 방법을 익히게 되었다. 전주에 가면 콩나물 해장국으로, 파주에서는 북어 해장국으로, 청주에 가면 다슬기 해장국, 아무 것도 없는 시골에서는 짬뽕으로, 그렇게 간을 달래 가면서, 선지 해장국 말고도 여러가지 해장 도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캐나다에 이주해서, 술을 마실 여유도 없었던 로스쿨을 졸업하고, 오타와에 있는 로펌으로 취직을 하면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그 당시 캐나다는 한국인이 가장 많다는 토론토에도 아침에 해장국 파는 곳이 없었으니, 내가 변호사로 첫 근무를 시작한, 한국인이 훨씬 더 적은 오타와에 해장국집이 있을리 만무였다.
캐나다에서는 한국처럼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신참 변호사끼리 한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새벽까지 술을 마시게 되는 일이 있었고, 해장국집을 찾지 못한 나는 라면으로 해장을 하곤 했다. 물론 라면은 어떤 해장국에도 밀리지 않는 좋은 해장 도구이지만, 그래도 해장국이 문득문득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해장국을 그리워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백인들도 해장은 해야 할 것 아닌가? 내 동료들은 아침에 어디에서 해장을 할까?
그런데, 그 다음 번 술자리에서 또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헤어지는데, 너무 많이 마셨으니 내일 아침의 hangover (숙취) 를 막기 위해 뭘 좀 먹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숙취를 막는 것이라면 당연히 해장국이리라 확신한 나는 기꺼이 동의했고, 동료들을 따라갔다. 드디어 해장국을 먹게 되는구나, 기대하면서.
그런데, 놀랍게도 동료들이 향한 곳은 피자집이었다. 해장에 피자라니. 그들은 밤 새워 술 마신 새벽에 피자로 해장을 하는 거였다. 아, 그래서 술집 근처 새벽 피자집이 문전성시였던거구나. 새벽같이 일하러 나가는 사람들이 아니었던 거구나. 도대체 왜 술집이 즐비한 골목에 술도 팔지 않는 피자 가게가 그리도 많고 새벽에도 문을 여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렇게 또 알게되었다 - 해장은 꼭 뜨거운 국물로 할 필요는 없는 것이었구나.
깨달음을 얻은 그 때부터 나는 많은 해장 메뉴를 시도했고, 나의 해장 메뉴는 다채로와졌다.
짜장은 물론이고 군만두로도 해장이 되고, 피자를 거쳐 치즈 샌드위치로도 해장이 되는 경지를 지나, 이제는 펩시콜라로도 해장을 한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직 코카콜라로는 잘 안 된다).
펩시콜라로 해장을 하던 어느 날, 문득 독일에 있는 바이엘 본사에 출장을 갔을 때 본 광경이 기억이 났다. 그 전날 환영회 겸 함께 거하게 술을 마신 독일인들이 다음 날 아침 삼삼오오 모여서 바이엘 아스피린을 나누어 먹는 광경이었다.
아스피린을 해열제로만 쓰던 나는 왜 그런지 몰랐으나,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바로 바이엘 직원들이 해장을 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아스피린 한 알로 해장이 된다면, 선지 해장국이 없다는 이유로 술 마시기를 두려워 할 필요는 없을 것이었다.
나는 심리학자는 아니지만, 자살은 정신적 숙취를 풀지 못해 실행하게 되는 것이라, 감히 생각한다.
내가 꼭 반에서 1등을 해야만, 내가 꼭 주연 배우로 인정을 받아야만, 내가 꼭 큰 무대에서 연주를 해야만 나의 숙취가 풀린다면, 그건 마치 선지 해장국이 아니면 해장을 하지 못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숙취를 꼭 선지 해장국으로만 풀어야 하는 나를 만드는 건 나다. 뜨거운 국물로만 풀어야 하는 나를 만드는 건 나다. 그리고 숙취를 아스피린으로, 콜라로, 피자로 풀 수 있게 나를 단련하는 것 역시도 나의 몫이다.
나를 자살로 몰아가는 정신적 숙취를 풀 수 있는 도구가 다양하다면, 극단적 선택을 할 이유가 줄어들지 않을까? 아침 일출을 보고,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정신적 숙취가 풀린다면 말이다.
어쩌면 연예인들 세계에서 자살이 많은 건, 숙취를 해소할 해장 음식의 종류를 너무 제한해 놓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연예인들만 정신적인 숙취를 가지는 건 아니다.
지금 정신적 숙취가 심하다고 생각된면, 생각해 볼 있이다 - 나는 이 숙취를 선지 해장국 말고, 뜨거운 국물 말고, 다른 뭘로 해장할 수 있을까? 얼마나 다양한 해장국을 나는 가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