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말투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순간이 있다.
나에게 그 대상은 이상하게도 엄마다.
밖에서는 늘 차분하고,
상황을 가라앉히는 사람처럼 굴면서도
엄마 앞에만 서면
어디선가 오래 잠들어 있던 감정이 툭 떨어져 내린다.
사춘기 때 생겨난 마음의 버릇들이
한순간에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 시절의 나는 세상이 답답했고,
모든 게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처럼 느꼈다.
엄마는 늘 내가 풀어야 할 감정의 창구였고,
말이 엇나가도, 투정이 쏟아져도
엄마는 절대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단단하지만 철없는 믿음이 있었다.
아마 그때의 신념이
아직도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만큼은
포장되지 않은 감정이 먼저 튀어나온다.
누군가에게는 절대 보이지 않을
투정과 날카로움이
유일하게 엄마 앞에서는 허용된다.
듣기에 이상할지 모르지만,
그 못된 말투 뒤에는
“엄마는 그래도 날 이해해줄 거야”라는
이기적이지만 솔직한 믿음이 숨어 있다.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끝까지 예의를 지키며 웃으면서도
엄마에게만은 가끔 날것의 내가 튀어나온다.
엄마가 내 감정의 ‘안전지대’가 되어버린 탓이다.
엄마는 내 마음을 감당해줄 거라고
막연히 확신하고 있는 사람.
하지만 그 믿음이
엄마에게는 계속 아물지 않는 작은 상처였을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요즘에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엄마도 감정이 있고,
나의 말투에 흔들리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표정을 보고 나서야
늦게 뒤따라오는 후회가
내 마음을 덮어버린다.
그래서 이제는 그 충동이 올라올 때,
반사적으로 말하기 전에
내 마음을 잠시 들여다보려 한다.
나는 사실 엄마에게 화가 난 게 아니었다.
내 삶의 피곤함,
갑자기 밀려오는 압박감,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한 억눌린 감정들이
엄마 앞에서만 용감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뿐이었다.
엄마에게 못되게 말하고 싶은 마음.
그건 결국
‘엄마 앞에서는 나도 허약해지고 싶다’는,
아주 오래된 감정의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내 포장되지 않은 감정에 부딪혀도
“이런 투정 엄마한테나 부리지, 누구한테 부려. 괜찮아.”
라고 말해주던 엄마의 그 따뜻한 말이
지금에서야 더 가슴 깊게 와 닿는다.
그래서 더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