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사랑하지만, 싫어할 수 있잖아?

by 에시

엄마를 사랑한다.

아플 때 가장 먼저 떠오르고

멀리 있어도 안부가 궁금해지고

내가 괜찮다고 말해도

이미 걱정하고 있을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버거울 때가 있다.


말투 하나에 숨이 막히고

선의로 던져진 말이

하루를 통째로 흔들어 놓을 때가 있다.

설명하고 싶지 않은 내 삶의 선택들이

심문처럼 되돌아올 때는

전화를 끊고 나서는

이유없이 지쳐서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게 된다.


하지만 싫다는 감정이 올라올수록

사랑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분명해진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화나지도 힘들지도 않았을 테니까.

아무 감정도 남지 않았다면

굳이 미워할 이유도 없었을 테니까.


엄마를 싫어하는 순간들은

사실 엄마가 아니라

‘엄마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남겨진 방식들’을

견디지 못하는 순간들인 것 같다.


항상 참아야 했던 태도,

늘 먼저 이해해야 했던 위치,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랐지만

끝내 말로 꺼내야 했던 수많은 장면들.


사랑은 유지되는데

관계의 형태가 나를 소모시킬 때

그때의 감정은

싫어함에 가장 가까운 얼굴을 하고 찾아오나보다.


이 두 감정을 동시에 인정하는 건 참 어려운일이다.


엄마를 많이 사랑한다.

그치만 엄마가 싫을 때도 있다.


이건 모순이 아니라

성인이 된 딸이 감당해야 하는

정직한 감정의 형태라고 믿기로 했다.


사랑만 남겨두고

나머지 감정을 모두 금지하는 건

결국 나를 지우는 일이될테니까 말이다.


엄마를 싫어하지 않는 날이 온다면

그건 사랑이 커져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더 단단해졌을때일 것이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종종 싫어할 수 있잖아?

이 감정에 대한 죄책감이 덜어지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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