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식물을 좋아한다.
꽃도 예뻐하시고, 풀도 예쁘다고 말한다.
이름이 있든 없든,
잘 가꿔졌든 조금 흐트러졌든
엄마에게는 다 같은 식물이다.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하다고 하신다.
집에는 화분이 많다.
엄마는 그 많은 화분을 하나씩 살펴본다.
스투키, 몬스테라, 산세베리아 같은 이름 있는 식물들과
이름을 잘 모르는 아이비, 고무나무, 작은 다육이들이 섞여 있다.
엄마는 이름을 정확히 부르기보다
“이 아이”, “얘는 요즘 좀 힘들어 보여” 같은 말로 식물을 부른다.
흙이 말랐는지, 잎이 처지지는 않았는지.
괜찮아 보여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손으로 흙을 만져본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안쪽은 다를 수 있거든.”
그 말은 늘 식물 이야기 같지만,
어쩐지 사람 이야기처럼 들린다.
엄마는 꽃이 필 때도 기뻐하지만
꽃이 지는 순간을 더 조심스럽게 대한다.
지금은 쉬는 중이라고,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거라고
괜히 식물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엄마가 나에게도 그렇게 말해주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별 일 없이 잘 지내고 있냐고,
혼자 괜찮은 척은 하지 말라고.
예전에는 엄마가 나를 돌보는 줄만 알았다.
밥을 챙기고, 잠을 걱정하고,
괜히 한마디 더 보태던 그 모든 것들이
그저 엄마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엄마가 화분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엄마를 바라보는 시간도 함께 늘어났다.
엄마의 손목에 힘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무거운 화분을 들 때 숨을 고른다는 걸,
식물 이야기를 하면서도
가끔은 말을 삼킨다는 걸
나는 조금씩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먼저 물을 준다.
화분도, 엄마의 하루도.
“오늘은 어땠어?”
별일 없는 질문 같지만
엄마는 그 질문에 오래 답한다.
식물처럼, 엄마도
겉만 보고는 알 수 없는 날들이 있으니까.
엄마는 여전히 나를 돌보고 있고
나는 그 돌봄을 받으면서
조심스럽게 엄마를 돌본다.
서로가 서로의 화분이 된 것처럼.
너무 과하지 않게,
마르지 않게,
가끔은 그냥 곁에 있어주는 방식으로.
꽃도 예쁘고, 풀도 예쁘듯
엄마의 강한 날도,
약해 보이는 날도 다 소중하다는 걸
이제는 내가 엄마에게 배우는 게 아니라
함께 알아가고 있다.
돌봄은 주고받는 게 아니라
자라나는 거라는 걸,
엄마와 나는
이 집 안의 식물들 사이에서
조용히 연습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