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치미, 생생정보통 다 미워..
엄마 집에 들를 때면 식탁 위엔 어김없이
새로운 영양제가 하나씩 올라와 있다.
글루타치온, 보스웰리아, 콘드로이친, 파인애플 효소…
뭐가 다 좋고, 뭐가 다 기적의 성분들인
설명만 들어도 몸이 좋아질 것 같은 그런 영양제들이다.
“이거 먹으면 몸이 가벼워진대."
"요즘 피곤하기도 하고… 하나 사볼까?”
엄마의 그 말속에 담긴 속마음을 안다.
진짜 사고 싶어서라기보다,
누구는 먹고 누구는 안 먹는다는데
혹시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나이 드는 몸을 어떻게든 붙잡아보려는
조심스러운 마음.
TV에서 “좋다”라고 한마디만 나와도 엄마는 금세 찾아보고,
며칠 뒤면 식탁 위에 그 영양제 상자가 놓여 있다.
함께 살지 않기에 이런 변화들을 매일 보지는 못한다.
그래서 집에 들를 때마다 식탁 위에 쌓인 상자들을 보면
괜히 내가 뭐라 말할 자격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면서
알 수 없는 죄책감과 함께 마음이 묘하게 쓰려온다.
엄마가 상술에 휘둘리고 있는 것 같아 걱정되고,
효과가 있을지조차 모를 것들에 돈을 쓰는 게 안타깝다.
그래서 “엄마, 사실 그거 다 광고야."
"효과 검증된 게 아니야. 별로야. 사지 마요.”라고
말하고 싶다가도
그 말이 엄마의 마음에 생채기를 낼까 봐
입에서만 빙글빙글 맴돈다.
왜냐하면 나는 안다.
엄마가 그 영양제를 사는 이유는
누구에게 챙김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건강하게 남고 싶어서’라는 걸.
엄마는 젊음을 욕심내는 게 아니다.
나이 듦이라는 거대한 속도를
아주 조금이라도 늦춰보려는,
혼자서 하는 작은 싸움이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아직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어
스스로 붙잡아보려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 밑에는
말로 다 하지 않는 진짜 이유가 있다.
‘멀리 사는 딸에게 걱정 끼치고 싶지 않다.’
‘내가 내 몸은 내가 챙길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 조용한 자존심.
식탁 위에 놓인 영양제들은
그 마음의 그림자 같다.
광고에 쉽게 마음을 빼앗기는 모습이 안쓰럽다가도
그렇게라도 자기 몸을 지키려는 애씀을 보면
한없이 애틋해진다.
이 두 감정이 동시에 밀려오는 순간,
나는 늘 잠시 말문이 막힌다.
살짝 변한 듯한 엄마의 손,
조금은 느려진 걸음,
어느새 달라진 취향들.
함께 살지 않기 때문에
그 변화들이 더 크게, 더 급격히 느껴진다.
영양제 상자들은 그 변화의 조용한 표지판 같다.
그래서 나는 식탁 위의 상자를 볼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엄마가 속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엄마가 오래 건강했으면 하는 마음.
그 둘 사이에서 나는 어떤 거리를 두고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아직 답은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엄마가 상자를 들고
“이게 좋다네”라고 말하는 그 짧은 순간,
그 말 뒤에는
‘나는 아직 괜찮은 엄마이고 싶다’는
아주 작은, 그러나 단단한 마음이 숨어 있다는 것.
그리고 나는 그 마음 앞에서
쉽게 단정 짓지 못한 채 잠시 멈춰 서서
그 작은 미운 영양제 상자를 오래 바라보게 된다.
(엄마 마음을 너무 쉽게 흔드는, 생활·건강 프로그램 다 미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