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보듯 엄마를 돌보다
요즘 거울 앞에 서면
가끔 낯선 얼굴이 비친다.
피곤이 내려앉은 표정과 흐릿해진 기운.
그 얼굴은 분명 나인데,
어쩐지 엄마가 나를 잠깐 빌려 쓰는 것 같이
어느 순간 엄마의 모습이 슬며시 겹친다.
어릴 적, 주방에서 설거지하던 엄마의 뒷모습.
빛에 반사되던 광대의 곡선, 눈 밑의 옅은 그림자,
그리고 부드러운 인상 속 어딘가 단단한 표정.
말없이도 버티는 사람의 눈빛.
나는 그 모습을 '부모의 얼굴'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이제야 알겠다.
그건 ‘어른의 얼굴’이기도 했다는 걸.
나는 오랫동안
'엄마처럼 살지 않게다'라고 마음속으로 되뇌던 사람이었다.
늘 집과 가족을 먼저 챙기느라
자신의 일은 뒤로 미루던 엄마가 답답해 보였으니까.
엄마는 늘 말하곤 했다.
“너는 너 하고 싶은 대로 살아.”
그 말이 내가 자유롭길 바라는 따뜻한 응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엄마의 오랜 희생을 전제로 한 조언이었다는 걸
어른이 되고서도 한참 뒤늦게 알아차렸다.
회사에서 야근을 마치고 돌아오던 어느 밤,
씻을 힘조차 없어 현관 바닥에 앉아
그저 멍하니 숨만 고르고 있을 때,
문득 생각이 스쳤다.
엄마도 이런 밤이 참 많았겠구나.
그리고 그때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벌써 나와 두 동생들을 키우고 있었겠구나.
그 생각이 들자
괜히 숨이 복잡하게 뒤섞였다.
엄마의 그 오랜 참음과 버팀이
조금은 실감 났다.
그 밤 이후로, 나는 종종 엄마의 젊었던 시절을 떠올리곤 했다.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혼자 견뎠을까,
그 나이에 어떻게 그 많은 책임을 버텼을까,
그 밤들을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어떻게 지나왔을까.
그런 생각이 쌓이던 어느 날,
10년 넘게 서울에서 혼자 살고 있는
딸의 오피스텔에 놀러 온 엄마가 조용히 내게 말했다.
“이제 보니 엄마보다 더 단단한 사람이 된 것 같네.”
그 말은 따뜻한 위로 같았지만 어쩐지
“너도 많이 애쓰며 열심히 살아내고 있구나”라는 속삭임처럼 들렸다.
단단함이란 결국,
그만큼 외로움을 오래 견딘 사람에게 붙는 말이니까.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엄마가 견뎌온 외로움까지 함께 들렸다.
딸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혼자 삼켰왔을
오래된 외로움의 결까지.
엄마가 내게서 자신을 본 것처럼,
나도 어느새 엄마 안에서 나를 본다.
가끔은 생각한다.
‘나를 낳은 여자는, 나의 엄마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어릴 땐
엄마가 나를 완전히 이해해 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안다.
우린 서로의 마음을 반쯤만 이해한 채
서로를 향해 애쓰며 살아왔다는 걸.
엄마는 자신의 젊음을 나에게 내어주면서도
외롭다고 말할 틈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삶을 지키겠다고 버텨온 시간 속에서
어쩐지 엄마와 닮아간다.
이제는 안다.
우리가 닮아가는 건 피할 수 없는 우연이 아니라,
두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낸 결과라는 걸.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건너와
이제야 천천히,
비슷한 속도로 서로를 이해해 가는 중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늘의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
마치 엄마가 내 안에서
다시 한번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