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2024년 12월)연말을 앞두고 모처럼 대구 본가를 찾았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집을 나섰다. 불현듯 어머니께 삼계탕을 대접해드리고 싶어서 삼계탕 식당을 검색했다. 집에서 식당까지 거리는 걸어서 20분 정도로 좀 쌀쌀한 기운이 있었지만 어머니와 손잡고 나들이 기분을 냈다.
점심시간이 임박해서 인지 식당 안에는 벌써 여러 테이블에 손님이 앉아있었다. 우리도 자리를 잡아 음식을 주문했다. 왼쪽 테이블에는 할머니와 며느리, 손자가 식사 중이었고 오른쪽에는 회사 동료로 보이는 다섯 사람이 닭 불고기를 시켜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 자리에 기본 반찬이 놓이고 잠시 후 부글부글 끓는 삼계탕이 들어왔다. 나와 어머니는 작은 국자로 삼계탕 고기를 이리저리 뒤적이며 국물을 숟가락으로 뜨는 등 먹기 시작했다.
그러던 순간 옆에서 들이는 이상한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한 사람이 선 채로 의자에 앉아있는 동료에게 "정신 차려라. 왜 이러니?"하며 뺨을 툭툭 친다. '정신 차리라' 라는 말을 듣는 순간 TV 뉴스 속에 나오는 장면이 뇌리에 불현듯 스치고 지나갔다. '심장마비, 저혈당, 뇌경색, 뇌출혈, 심폐소생술' 등의 단어가 머리에 떠오르고 119에 신고부터 해야 하는데, 생각했다.
정신을 잃은 사람 곁에 있던 동료들이 곧바로 119에 신고하였고 나도 무의식적으로 테이블을 건너가서 호흡하고 있는지 등을 확인하였다. 숨을 쉬고 있음을 느끼고 혹 저혈당 등 과거 병력이 있는지 동료들에게 물어보았다. 의료 지식이 없었지만 옆 테이블에서 일어난 일이라서 그냥 쳐다 만 볼 수 없어서 한 마디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전에 잠시 배웠던 심폐소생술이 생각나서 혹 호흡을 확인했던 것이다. 다행히 쓰러진 사람은 자가 호흡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혈당인가, 뇌출혈인가 의아해하면서, 마침 주머니에 있던 사탕 한 개를 건네려고 했다. 하지만 전화로 연결된 119에서, 구급대원이 도착할 때까지 뭐든 먹이지 말고 기다리라고 한다.
때마침 회사 동료가 환자가 뇌경색으로 인한 뇌출혈로 수술을 받은 사실이 있다고 119에 알렸고 10분도 되지 않아 도착한 구급대원들은 혈압을 재고 기본 조치를 한 다음 환자를 들것에 실어 구급차로 옮겼다. 환자는 호흡하고 있지만 의식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곧바로 병원으로 가야 할 구급차는 출발하지 못했다. 후송할 병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란다. 식당에서 대학병원 응급실까지는 불과 1분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지척이었지만 구급차는 후송할 병원을 찾지 못해 식당 밖 도로에서 출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점심을 먹고 식당 밖에 나갈 때까지도 구급차는 서 있었다. 의료 대란으로 시간을 다투는 응급 환자도 곧바로 병원에 후송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식당에서 사람이 쓰러진 것도 처음 봤지만 119구급차가 후송 병원을 못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있다는 뉴스를 직접 경험한 것도 처음이었다. 게다가 불과 1분도 되지 않는 거리에 대학 병원이 있는데도 119는 환자를 받아줄 병원을 찾아 여기저기에 전화해야만 했다.
30대 후반이 될까 말까 한 이 환자에게 심장마비가 왔다면 벌써 사망했을 것이다. 정말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뇌출혈이라고 해도 발생에서부터 수술까지 골든타임이 3시간 이내라고 한다. 이처럼 젊은 사람이 응급으로 쓰러져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은 누구의 책임인가? 쓰러진 환자의 책임인가, 제때 후송하지 못한 119의 책임인가, 받아주지 않는 병원의 책임인가? 내게 닥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위안 삼아야 하나! 집으로 돌아가면서 이 사람이 어찌 되었을까 하는 염려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