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을 상대해야 하는 다윗의 심정, 다른 점이라면 자의가 아니었다는 것
매년 회기일정에 따라 다르지만, 10월 말 ~ 12월 초는 '의회의 꽃'이라고 불린다.
의회는 다음과 같은 큰 이벤트를 진행하게되는데,
1. 행정사무감사
2. 내년도 예산안 심사 및 의결
이라는 중요한 일을 하게 된다. 행정부를 견제하는 의회의 존재의 의의라고 볼 수 있다.
행정사무감사는 올해동안의 행정부의 정책 추진에 대한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고,
내년도 예산 의결은 내년에 행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의 타당성을 평가한다.
이번 에피소드는 [10. 예상치 못한 사무분장2]와 이어지니, 아직 읽지 않으신 분은 읽어보고 오시는 것을 추천드린다.
전편 줄거리
발령받은지 1년도 안된 시점에 전산 6급이 하던일을 거의 받아오게된 나,
6급업무의 모든 일을 해낼 역량도 없었지만, 모든 업무를 할 필요는 없었다.
2개월 정도를 잘 버티면 내년 1월에 인사발령으로 새로운 전산6급이 올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처리해야 할 업무는 홈페이지 관리용역 계약과 클라우드 서버 계약이 있었지만
"자네라면 할수 있다."라는 팀장, 과장의 사탕발림과 반쯤은 강제적인 압박에 나는 수락했다.
내년 1월에는 전보인사를 신청 하겠노라 속으로 다짐하면서.
공무원으로서 1년의 사이클을 체험하지 못한 난,
10월 즈음이면 1년을 슬슬 마무리하는 시즌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훈훈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연말을 축하하며 새해를 맞이하는, 업무보다는 이번년 동안 서로의 고생을 위로하는 분위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드라마를 너무 보았나 보다.
따뜻한 상상 속 고점과 차가운 현실의 저점의 간극은 상상이상으로 컷다.
직접 격어보니 알게된 사실이었지만 공무원은 10월부터 12월까지가 가장 고달프다.
행정사무감사로 의회에 지적당하고, 내년도 예산이 감축되면 그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정신이 없다.
의원들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으며 담당 사업과 예산의 타당성을 설명하느라 눈썹이 휘날리게 뛰어다니기도 한다. 게다가 시의원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의 자료요구도 쏟아진다.
그 기류를 처음 느낀 것은 '자료요구'가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였다.
나는 서무였기때문에 공문을 접수해서 각 담당자에게 배부를 해주는데, 요구자료가 물밀듯이 들어왔다.
보통은 자료요구 공문을 담당자에게 전달하고 그 담당자가 알아서 공문으로 회신하는데,
가끔씩 여러 부서에 걸쳐있거나 담당자가 여러명인 경우에는 서무인 내가 취합을 해서 제출한다.
그것이 다른 직원들을 서포트하는 방식 중의 하나이다.
애매한 자료요구가 많아지고, 자료를 줘야할 동료는 제때 자료를 주지 않는다.
나는 기한을 지켜야 한다며 닥달하게 된다.
사실 그도 업무가 많아서 허덕이는 상황으로, 서로 다른 입장에서 감정만 상하게 된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지만 힘드니까 누군가를 원망하게 된다.
곧이어 '행정사무감사 스터디'가 시작됐다.
11월에 있을 행정사무감사에 대비하여 의원들의 예상질문에 예상답변을 만들고
직접 대답해야하는 상급자(기관장, 본부장 등)가 공부하는 시간이다.
서무인 나는 복무, 출장 여비, 홈페이지 운영 실적과 관련된 예상질문을 만들었다.
복무나 여비는 규정대로 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고, 홈페이지 운영 실적은 신생기관이다보니 홍보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간단한 답변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다행히 행정사무감사가 실시되었을 때, 우리 부서와 관련된 내용은 많이 언급되지 않았다.
다른 부서는 날카롭게 지적을 당하긴 했지만, 수십년간 행정사무감사를 겪어온 팀장과 과장은
"이만하면 아주 선방했다."라며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행정사무감사 직후, 나는 '홈페이지 운영과 클라우드 서버 계약만 잘 하면 되겠다'라고 생각했다.
우리 기관은 본청과는 별도의 기관으로 기관내에 계약 담당자가 있어 궁금한게 있을 때마다 물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계약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는 천만다행이었다. 계약 담당자도 전산직의 공백에 대한 사정을 알았기 때문에 잘 도와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항상 그러했듯이 세상은 맘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다.
곧 완료될 것으로 예상했던 계약은 큰 장애물을 맞이했다.
내년도 예산심사에서 클라우드 서버 예산이 절반이나 삭감되는 바람에 계약이 올스톱 된 것이다.
시의원 중 한명이 클라우드 서버 계약 비용에 의문을 품고 클라우드 서버를 중개하는 업체에 개인적으로 가격을 문의 한 모양이었다. 당연히 세부적인 사양을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기관 홈페이지를 알려주고
'이런 홈페이지 운영하려면 클라우드 서버비용이 얼마인가?'라고 물었고
신생기관의 홈페이지라서 홍보가 덜 된 탓에 낮은 방문객으로 낮은 트래픽을 유지하던 홈페이지를 보곤
운영 가격을 아주 낮게 부른 것이다.
예산을 허투루 쓰는 것에 대해 감시할 의무가 있던 시의원으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시의원은 '예산의 1/3의 가격이면 충분하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본청에 계약관련으로 협조를 받으러 왔던 나에게 갑자기 예산이 삭감되었다는 청천벽력같은 전화가 왔고,
나는 바로 복귀하여 기관장실과 본부장실에 끌려갔다.
서버와 홈페이지에 대한 기본개념도 없다가 계약을 위해서 공부를 조금한 정도의 지식으로는 하늘과 땅만큼의 금액 차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불가능했다.
더욱이 홈페이지를 구축과 클라우드 서버 2년 운용비까지 같이 한번에 계약된 첫 계약으로부터
분리하여 클라우드 서버 운영 계약만을 단독으로 진행하는 것은 지자체에서도 사례가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 기관은 우리 도 내에서 선도적으로 클라우드 서버를 도입했다.
이는 신생기관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물리 서버실을 운영하던 기관에서 클라우드 서버로 전환하기에는 큰 예산과 기회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기관에서 운영을 한 지난 2년동안 몇몇 곳에서 클라우드 서버를 도입하였지만 그들도 이제 막 도입했을 뿐 '우리 기관의 운용비용이 적정한가'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다른 기관들은 우리기관 처럼 홈페이지 운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특정 서비스만을 제공하는 서버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상황에 가타부타 이야기하기 어려운 듯했다.
그나마 수도권의 공공기관들은 우리보다 더 먼저 도입한 곳이 있고, 그들은 계약 갱신도 이미 진행하였기 때문에 여러곳에 전화해서 담당자인 내가 전산지식이 없음을 설명하고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렸고 몇가지 자료도 받아볼 수 있었다. 홈페이지 구축 당시의 담당자와도 연락하여 책정 근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물리서버를 서버실에 구축했을 경우의 기회비용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시한폭탄의 초침소리가 귀 옆에서 들리는 듯한 급박한 며칠이 지나고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다.
예산 삭감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시의원은 시민을 위해서는 열심히 불필요한 예산을 삭감하려는 노력을 한 것이고, 그에대해선 사실 칭찬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자면, 이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업무를 진행해야할 담당자가 없었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었다. 내가 그에대해서 명확한 답변을 할 수 있었다면, 예산이 삭감된 다음날이라도 보고서를 작성하여 시의원에게 설명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나를 포함해서 팀장, 과장, 본부장, 기관장이 모두 깊은 숙고를 하지 않았다. '이미 예산 받아서 잘 운영하는 건데 굳이 삭감시키겠어?'라는 방만한 생각이 이상황을 만든 것이다.
내가 며칠동안 고생해서 알아낸 답은 다음과 같다.
1. 클라우드 서버는 굉장히 복잡한 소프트웨어들로 운영된다. 우리가 컴퓨터를 사면 백신을 깔듯이, 서버에는 각종 개인정보가 저장되므로 여러 위험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둬야 한다. 이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범위보다 훨씬 방대하다. 게다가 공공기관은 국정원에서 관리하는 지침에 따른 방어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를 마련해 둬야 하고 이는 서버비용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2. 클라우드 서버의 모든 것이 장점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물리적인 서버실을 운영하는 것에 비해서 저렴한 비용으로 운용할 수 있다. 물리 서버 구축비용 + 습도와 온도 조절 등의 서버실 운영비 + 관리 인력의 인건비 등을 생각하면 물리 서버실 대비 클라우드 서버는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게다가 서버는 꺼지지 않고 계속 운용되므로 고장에 취약하고 내구연한이 지나면 새로운 서버를 구축하여야 하는데, 클라우드 서버는 계약만 갱신하면 되니 훨씬 편리하다. 이는 마치 넷플릭스와 같은 구독제같은 개념이다.
3. 서버 등의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의 시점에서는 방문객이 많지 않은 홈페이지를 운영하기 위해 1년에 몇천만원의 비용이 소모되므로 과도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내용을 보고서로 만들어서 본부장님과 시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설득을 했다.
다행히 삭감된 예산은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할 때 복구가 되었지만,
계약은 시기가 늦어진 이유로 방침서, 과업지시서, 계약서 등을 수정해서 재진행해야 했다.
계약과정도 순탄하지는 않았다.
클라우드 서버 이용 계약은 '디지털서비스전문계약'이라는 것으로 조달계약이 진행되는데,
2천만원 이상의 큰금액임에도 불구하고 조달청을 통해서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
(일반 계약은 여러 업체를 경쟁 입찰 시켜서 진행 해야하고 선정과정도 굉장히 까다롭다)
계약 담당자와 상급자들은 이해가 안된다고 나를 들들 볶는 바람에 그걸 설명하는 보고서 또한 만들어서 납득을 시켜야 했다.
발령받고 첫 해이자 첫 근무지,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춥게 느껴졌다.
첫 발령지가 신식 건물이라 시설이 좋고 사무실도 넓다고 좋아했었는데.
야근을 하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넓은 만큼 텅 비어 보였다.
'내편이 없어서 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