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아름답진 못했던 이별
이번 에피소드는 결국은 미수에 그쳤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과 관련된 이야기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공무원이라거나, 공무원이 될 생각이 있다면
이러한 일이 발생했을 때 절대 응하면 안된다는 것을 염두했으면 좋겠다.
(물론 꼭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때는 첫 발령받은 해 12월이었다.
우리 기관은 앞서 말했듯이 시청 소속이고 시청 공무원들이 100% 일하지만,
특수한 목적을 갖고 저멀리에 별도의 청을 가지고 근무를 하였다.
이러한 기관은 특수하고 중요한 목적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통은 일을 잘한다고 평가받는 공무원은 시청에서 일하고,
승진에 관심이 없는 일을 잘 안하려는 사람, 그리고 퇴직을 앞두고 맘편히 말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이 온다.
이유는 간단하다. 근무성적평가가 시청에 비해서 좋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기관의 업무는 지역의 미래를 위해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되었지만,
막상 근무성적평가를 받아보면 시청보다 아래에 깔리는 현상을 보게 된다.
같은 급수에 같은 년에 승진을 했더라도 각각 시청과 우리기관에서 2년 정도를 보내고 근무평가를 받아보면
승진 순서에서 차이가 나는게 눈에 보인다.
이것은 하위직에도 해당되고, 3급이상의 국장급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국장정도되면 시청에는 몇명 없는 높은 고위직 공무원이지만 실상은 국의 모든 것을 총괄하느라 다들 힘들어 한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말년이 가까워오면 널널한 기관에가서 편하게 말년을 보내고 싶어하기도 한다.
어찌됐는 12월 말에 정년을 앞둔 본부장님(3급)은 퇴직행사를 앞두고 있었다.
굉장히 유능하고 평판이 좋은 본부장님이셨는데, 약 6개월정도밖에 안계시고 퇴직을 하시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감사함을 느끼는 분이었다.
퇴직행사를 앞두고는 보통 직원들끼리 마음을 담아 선물을 준비하는데,
인망이 두터웠던 분이라 그런지 직원들의 마음이 모여 약 30만원 정도가 모였다.
어떤 것을 선물로 드리면 좋을지 고민을 하다가, 만년필로 선물을 드리자는 것으로 의견이 모였다.
그래서 30만원정도 되는 만년필을 주문해 놓은 상황이었다.
이 부분은 김영란법에 저촉이 되는지 확인했었으나,
1. 다수의 직원이 강제성 없이 소액의(1~2만원) 금액을 자발적으로 모금하여
2. 직무 관련 청탁 목적이 없고
3. 사회통념상 큰 문제가 없는 정도의 선물
을 하였다면 '문제는 없다'라는 국민권익위의 해석이 있긴하지만 그럼에도 조심해야만 합니다.
어찌됐는 30만원의 만년필을 준비해놓고 배송을 기다리던 와중
그것을 알고 있던 팀장은 나를 따로 불러내어 한가지 부탁을 하였다.
구구절절하게 이야기를 하는데 짧게 요약을 하면 아래와 같다.
본인이 급하게 누구를 만나야하는데, 그 30만원짜리 만년필이 필요하다.
30만원짜리 만년필이 배송이 오면 나한테 주고, 15만원짜리 만년필을 하나 더 주문해라.
그 돈(15만원)은 본인이 주겠다.
보석상이야기도 아니고 본인이 급해서 30만원짜리 만년필이 필요하면 30만원을 줘야지
15만원만 준다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게 어딨냐고 웃으며 거절하는 나에게, 팀장은 다짜고짜 나에게 15만원짜리 만년필을 지금 바로 주문할 것을 요구했다. 평소에 하급자들에게는 온갖 불합리한 요구를 하던 그였지만, 그는 상사에게는 깎듯한 편이었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도통 알 수 없었다. 아마 '퇴직할 상사보다 더 높은 사람에게 줘야할 필요가 있거나 자신의 출세를 위해 반드시 해야하는 필요가 있는 일'이기에 이러지 않나라고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건 모두의 마음이 담긴 선물인데 팀장의 지시대로 할 수는 없었다.
조용히 부장님께 찾아가서 이러한 고충을 털어놓았다.
부장님은 1년 후에 명예퇴직을 할 예정이었고 당연히 업무를 비롯한 모든 것에 흥미가 떨어져있는 상태였다.
명예퇴직은 목아래까지 다가왔지만 본인은 아직 살아갈 날이 많기에, 연금을 받으면서 동시에 창업을 하기위해 부동산중개인과 손해사정사 공부에 매진을 하던 사람이었다.
나의 고충을 들은 부장은 나에게 말했다. 정말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가서 못하겠다고 이야기 해보게"
정말이다. 부장님은 아마 모든 골치아픈 일과는 먼지 한톨만큼도 엮이기 싫은 듯한 눈치였다.
1년도 채 공직생활을 경험하지 않은 나로서는 팀장에게 반기를 들었을 때 이게 앞으로 남은 공직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이도 저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행실이 나쁘긴 하지만 수십년을 공직생활을 해온 사무관이고 나는 고작 1년도 안된 풋내기였기 때문이다.
서로의 행실을 물어뜯는 소문을 냈을 때 그 파급력은 사무관에 비하면 새발의 피요, 골리앗 앞에 선 다윗만도 못한 것이다.
결국에 완강히 거절을 하지 못하고 팀장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시간을 끄는 도중에
부장이 팀장을 불러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듯 했다.
'드디어 부장님께서 나를 위해 나서주시는 구나!'
내심 고마움을 느끼면서 생각했다.
'그럼 그렇지, 이 사태를 놔뒀다가 나중에 감사 등에서 문제가 될 경우엔 본인도 타격을 입을테니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겠지'
그러나 한참 이야기를 하고나서 부장님은 나를 불러서 이야기했다.
"그.. 내가 대놓고 이야기하긴 그래서 돌려서 이야기를 했는데 말이야. 영 못알아듣는거 같네?
자네가 고충을 털어놨다고 말하면 자네만 불편해질 것 아닌가. 그래서 다른 걸로 뭐라고 하면서 문제될 일은 하지 말라고 일러두었으니 걱정말게"
부장은 결국 빙빙 돌려말하면서 팀장이 알아먹기를 바라는 기도메타로 방향을 튼 모양이었다.
그래서 팀장님이 알아 먹었냐고?
그럴리가. 남들이 없는 자리에서 마추진 팀장은 만년필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
나는 "만년필은 곧 올건데, 이건 진짜 안된다" 사정을 했지만 그는 일단 오면 자신에게 넘기면 된다며 자리를 떴다.
전전긍긍하던 며칠. 그리고 도착한 만년필.
결국에 팀장에게 뺏겼을까?
다행이도 만년필은 제 주인을 찾아갔다.
아마 만년필이 도착하는 날 팀장은 바로 만년필을 받아서 누군가에게 청탁성 선물을 하려했던 모양이다.
다행히 나름 고가의 만년필인지라 배송이 하루 늦게 오게되었는데
팀장이 잡은 약속보다 늦게오는 바람에 팀장은 본인 돈으로 급하게 선물을 준비한 듯 했다.
나에게는 딸의 남자친구가 더 좋은 만년필을 선물했기에 그걸로 먼저 사용했으니
자기에게 만년필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딸이 받은 선물을 가져가는 아빠가 있을까?
어쩌면 그는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다른 채널을 통해서 선물을 구했는지도 모른다.
진실은 알 수 없다.
본부장님께 선물을 드리는 결말은 같지만 그 과정은 왜이리 험난했는지 동료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기에 답답했던 사건이다.
그리고 팀장은 선물을 했는지 안했는지 나로서는 알 순 없지만 곧 본청으로 발령이 났다.
게다가 행정직들이라면 가고 싶어하는 부서의 팀장으로 말이다.
청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사라는게 생각보다 합리적이지 않구나라는 선입견이 생겼다. 그 선입견은 몇년이 지난 지금도 같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벗어났다는 사실의 홀가분함에 취해있었다.
애플의 광고문구가 생각났다.
'단 한가지가 바뀌었습니다. 전부(Everything)요.'
이렇게 막 1년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