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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정원 Jun 20. 2023

누드모델이 될 뻔한 사연

옴마냐


프랑스를 유학하면서 한 가지 다짐한 것은 절대로 후회하고 돌아오지 말자! 였다.
그 말을 너무 마음속으로 새기고 다녔을까?
 
어학연수 시절이었다. 한국인 아주머니 한분이 뒤늦게 공부를 하러 오셨다.
나도 나이지만 그분은 무슨 공부를 하러 오셨는지 궁금해 여쭈어 보았더니 에꼴 보자르(ecole beaux arts)에 미술 공부를 하러 왔다고 하셨다. 꽤 흥미로워 보여 나도 그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라모뜨 피께(La motte pique) 길 근처 갤러리에서 그림을 보고 있었다. 한 젊은 남자가 다가오더니 나보고 예쁘단다.(프랑스 남자들은 이 말을 참 잘도 한다) 그러더니 나보고 그림에 관심이 있냐고 물어온다. 그 당시에 나는 에꼴 보자르에 다니고 있을 정도였으니 관심이 참 많았다. 고개를 끄덕이니 본인이 나를 그려 선물해 주겠단다. 근데 그러려면 자기 집에 가야 한다고 했다. 원래 아무나 따라나서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그날은 왜 그랬는지 그냥 순순히 그 남자를 따라갔다. 아파트에 들어서서는 일단 앉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린 그림들이라며 이것저것 많이 보여줬다. 그런데,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잘 그린다고 했던 사람의 말과는 틀리게 실력이 너무 형편없었던 것이다.
순간, 난 머릿속으로 별의별 생각을 다하고 있었다. 이 사람이 날 왜 이곳에 데려왔을까..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만약 저 사람이 나에게 다가온다면 영화에서 본 것처럼 급소를 무릎으로 치고 달아나야 할까...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닐 때, 아니나 다를까 그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얼굴을 그리려면 옷도 같이 벗는 게 좋겠다고. 으헉.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손에 쥐어준 커피잔의 커피를 면전에 확 부어버릴까.. 고민했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의외로 의사를 밝히면 순순히 수긍하는 편이어서 나는 말을 조곤조곤 이어나갔다.
내가 생각했을 때는 그런 그림은 그리지 않겠다고.. 그냥 난 이 집에서 나가겠다고 말했더니 예상외로 다시 생각해 보고 전화를 달라고 했다.
집밖으로 빠져나오는 순간 나는 ‘휴’하는 한숨을 연신 내뱉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놀란 가슴을 쓰러뜨리면서 나의 무지함에 화가 나면서도 웃긴(?) 해프닝에 껄껄하고 웃으며 넘겼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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