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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와이아나, 사탕수수밭의 하루

눈물로 젖는 새벽

by 영 Young

사탕수수 밭에서 눈물이 먼저 새벽을 적셨다.

하와이섬 북부, 무지개와 비가 교차하는 오아후섬 와이메아 (waimea) 지역이다.

비는 예고 없이 찾아와 땅을 흡벅 적셨다. 태평양 한가운데 떠 있는 이 섬은, 파도 소리조차 낯선 이방인들의 가슴에선 외로움의 메아리로만 들렸다. 바람은 늘 눅눅했고 대지는 언제나 젖어

있었다.

희망을 품고 떠나온 이민자들이 처음 농장에서 맞이한 이 새벽이었다. 그들의 꿈을 축축한 무게로 짓누르고 있었다. 양재준이 처음 발을 디딘 농장은

바다처럼 끝없는 사탕수수밭 한가운데 있었다.

겉으로는 초록의 물결이 넘실거렸지만, 그것은 자연이 준 숲이 아니었다.

그곳은 사람의 피와 땀, 그리고 이름 모를 한숨이 스며든 식민지의 밭이었다. 미국 설탕 자본의 식민

실험장이었다. 한국, 중국, 일본 동양계 노동자의 청춘을 삼켜버리는 설탕 제국의 심장부였다.


그날 새벽, 그는 처음으로 ‘노동자’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아니, 어쩌면 그 이름조차 그의 것이

아니었다. 새벽 4시다. 하늘엔 아직 별이 남아 있었고, 땅에는 빗물이 고여 있었다.

종소리가 울리자 판잣집 속 사람들이 허둥지둥 일어났다.

‘기숙사’라고 부르기엔 민망한 그 집은, 나무 틈새로 모기, 파리가 드나들었다.

바닥은 습기와 먼지로 얼룩져 있었다.

누군가 “일어나!” 하고 외쳤다.

사람들은 낡은 나무 국자로 죽을 퍼 담았다.

멀미가 채 가시지 않았지만, 남은 힘으로 억지로 목구멍에 밀어 넣었다.

곧이어 집합을 알리는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들려왔다.


[가시보다 날카로운 노동]

아직 어둠이 채 물러가지 않은 5시다. 사람들은 들판에 섰다.

흰 셔츠, 끈으로 동여맨 바지, 맨발이거나 해진 고무신이다.

손에는 낫과 작대기, 그날 하루 생존을 위한 전부였다.

“수수 줄기를 한 뼘씩 베고, 마대에 담아 트럭에 실어라. 쉬지 마라.”

영어를 몰라도 손짓과 눈빛만으로도 그 말의 위협은 충분히 전해졌다.

사탕수수 줄기는 사람 키보다 컸고, 잎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손이 스치면 바로 살갗이 갈라졌다.

잘라내고, 쌓고, 옮기고, 끝없는 반복이었다.

허리는 금세 굳어갔고, 손바닥은 금방 터졌다.

숨을 몰아쉬던 중, 한 청년이 쓰러졌다.

피 묻은 장화를 신은 감독관이 달려와 고함쳤다.

“노 워크? 유 고 백! 노 페이!”

일하지 못한 자에겐 식사도, 잠자리도 주어지지 않았다.

점심도, 저녁도 없이 그날은 끝났다.

해가 지고서야 사람들은 트럭에 실려 돌아왔다.

옷은 흙과 땀으로 얼룩졌고, 피부는 벗겨지듯 쓸려 있었다.

손에는 물집이, 다리에는 퉁퉁 부기가 올랐다.

그러나 그날 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오늘도 버텼네. 내일도 살아남자.”

사탕수수받

[잃지 않아야 할 이름]

“쓰리 세븐 식스!”376번!

그것이 양재준의 새로운 이름이었다.

감독관은 조선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들에게 그것은 기억할 가치조차 없는 기호였다.

그 순간부터 그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노동력’이 되었다.

그날 밤, 376번은 침대에 쓰러졌다.

무릎이 타오르고, 손가락은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내 이름은 양재준이다. 나는 사람이다. 나는 376번이 아니다.”

그는 속으로 되뇌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며칠 뒤, 한 동료가 병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그날 밤, 조용히 사라졌다.

무덤도, 이름도 남지 않았다.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지나 갔다.

창 없는 방 안에서 기침 소리와 쥐 소리, 꿈결 같은 통곡이 겹쳐 들려왔다.

그는 어머니가 쥐어준 손 수건을 가슴에 꺼내 쥐었다.

“너는 반드시 이름을 잃지 말아라.”

그 말이 그를 붙잡았다.


[고통의 반복, 사라지는 얼굴들]

양재준에게 사탕수수밭의 하루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매일이 생존과의 전쟁이었다.

새벽 4시의 종소리는 ‘기상’이 아니라 ‘각성’이었다.

기숙사

기숙사라 불린 판잣집은 곰팡이 냄새와 눅눅한 고무 냄새로 가득했고, 아침 식사는 끓인 쌀죽 몇 숟갈에 전부였다.

그저 몸이 쓰러지지 않게 하는 연료였다.

들판에 나서면, 칼날 같은 잎과 태양이 기다렸다.

루나 감독관이 말을 타고 지나가면 모두 고개를 숙였다.

말, 욕설, 채찍, 무시 그것이 하루의 전부였다.

동료들은 하나둘씩 사라졌다.

병으로, 탈출로, 혹은 이유 모르게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묻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었다.


[인간 이하의 시간, 희망의 고통]

태양은 살갗을 찢었고, 땅은 발목을 잡아끌었다.

수수를 짊어지며 어깨에는 피멍이 들었다.

쉬는 시간은 밭 사이 그림자 아래서의 몇 분뿐이었다.점심은 주먹밥 한 덩이, 절인 무,

소태 같은 쓴 커피가 전부였다.노동의 끝은 해가

진 후에야 찾아왔다.

긴 밭고랑의 끝이 곧 귀환의 조건이었다.

기숙사로 돌아오며 나눈 유일한 대화는 눈빛이었다.

“오늘도 죽지 않았다.”

밤이 되면 통증이 몰려왔다.

손가락은 굳어 펴지지 않았고, 허리는 바로 펴지지 않았다. 곰팡이 냄새는 숨마저 앗아갔다.

그러나 그는 가슴속으로 속삭였다.

“나는 양재준이다. 나는 조선의 아들이다.”

그렇게 하루는 끝났고,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됐다.

끝없는 고통 속에서도, 이름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계속됐다.


[자료 확인 필요]

오하우와 이아나 지역사탕수수 농장 작업 사진 (1905~1915)

초기 노동자용 cane knife 실물 및 사용 장면 삽화

루나(Luna) 감독관 및 감시 체계 도식

이민자용 집결소 내부 구조 및 일일 작업표

대한인국민회 『신대한』 발췌 삽화 및 기록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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