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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Aug 08. 2023

다시 만난 '복싱'... 다리가 후들거린다


무더웠던 8월의 어느 날, 경남 김해의 한 복싱장을 찾았다. 상담 중에 관장은 살이 오를 때로 오른 나를 쳐다보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운동 그만둔 지는 얼마나 됐어요?”

 

나는 “코로나19 때 멈췄다”라고 운을 뗀 뒤 “평소에도 분비물(침)을 자주 튀곤 하는데 복싱은 더 격한 운동이라 계속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사람 만나는 일을 하고 있어서 절대 감염병에 걸릴 순 없는 상황이었다”라고 설명했다. 

 

관장은 “그래서 몸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대로 물러날 수 없었던 나는 매일 야근과 잦은 술자리 등으로 비대해졌다고 구차하게 말했다. 

 

웃음기를 머금은 그는 어디까지 배웠냐고 묻기에 잽과 스트레이트, 훅 다소 어색하고 수줍은 풋워크를 언급했다. 관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기다렸다는 듯 글러브를 건넸다. 그러면서 한번 해보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곤란함이었다. 이대로 그와 스파링 한판 붙고 다른 체육관을 가야 될까 잠깐 고민했다. 물론 내 눈가엔 용기의 흔적들(예를 들어 피멍이라든지...)이 남겠지만 훈장으로 여겨야지, 하면서 딴생각에 잠깐 빠졌다. 그러다 주위를 둘러봤다.

 

그날따라 체육관엔 어린 초등생들이 많았다. 얼핏 세어보니 서른 명은 넘었다.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낯선 어른의 시범을 구경하려고 모여들었다. 내 표정이 다소 슬퍼 보였던 지 한 아이는 “아저씨, 힘내세요”라고 격려해 줬다. 물론 별다른 위로가 되진 않았다.

 

우울한 표정으로 자세를 취했다. 귀여운 토끼처럼 가볍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호흡을 가다듬고 잽과 스트레이트, 훅을 연거푸 샌드백에 날렸다. 그리고 육중한 몸으로 풋워크를 선보이자 곳곳에서 솔직한 웃음소리가 번졌다. 하는 나도 가엾은 샌드백을 끌어안고 웃었다. 

 

관장은 내 어깨를 토닥이면서 “운동하시면서 살도 빼고 내년쯤에 아마추어 대회도 나가보시죠”라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8월 14일부터 복싱을 시작한다. 낮에는 펜으로 세상을 밤엔 글러브를 끼고 육중한 몸을 향해 난타를 퍼붓자, 힘껏.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해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달 주제는 ‘웃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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