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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비 Nov 16. 2022

이기적 영장류이자 사회적 곤충인 인간의 이중성

인지과학자 마크 존슨(Mark Johnson)이 1987년에 집필한 책이 한 권 있다. 그 제목은 《The Body in the Mind》이다. 우리말로 번역을 하면 《마음속의 몸》 정도가 된다. 이 책을 펼쳐 서론을 보면 첫 단락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 인간에게는 몸이 있다. 우리는 이성적 동물’이지만, 우리는 또한 ‘이성적 동물’이기도 하다.” ‘이성’과 ‘동물’이라는 두 개념이 같은 위치에 있고, 강조에서만 차이가 난다. ‘이성적 동물’에서는 이성이 강조되고, ‘이성적 동물’에서는 동물이 강조된다. 


마크 존슨은 인간이 이성적이지만 기본은 동물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에드워드 슬링거랜드는 《취함의 미학》에서 인간을 이렇게 정의한다. “인간은 적어도 겉으로는 이기심 없는 사회적 곤충처럼 행동하는 듯한 이기적인 유인원이다.” 인간에 대한 슬링거랜드의 정의는 술취함에 대한 인간 취향과 관련된 정의라는 것에 유념해야 한다. 이런 인간의 정의에 어떻게 술취함이 자리를 잡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 인간은 겉으로 보기에는 이기심 없이 무리를 지어 서로 협력하는 곤충이지만, 실제로는 이기적인 유인원이다. 이 정의에서 키워드는 ‘이기심’, ‘곤충’, ‘유인원’이다. 그렇다면 술은 왜 필요할까?


우리 인간과 침팬지는 같은 유인원 종이다. 유전학 분석에 의하면 침팬지는 계통적으로 사람에 가장 가깝고 DNA의 98% 전후를 공유한다고 한다. 하지만 다 자란 침팬지와 다 자란 인간 성인은 힘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침팬지는 도구를 사용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영리한 유인원으로 알려져 있다. 거대한 이빨을 가진 침팬지와 인간이 일대일로 싸운다면 볼 필요도 없이 인간은 갈기갈기 찢기어 그냥 초전박살이 날 것이다. 혹시라도 혼자서 산길을 걷다가 침팬지를 만나게 된다면 우리는 무조건 줄행랑을 쳐야 한다. 


하지만 살벌한 생존 현장에서 살아남아 거대한 문명을 이룩한 존재는 침팬지가 아니라 우리 인간이다. 왜 그랬을까? 자연계에서의 생존은 개인적 힘이나 개인적 영리함이 아니라 사회적 기술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술에 관해 침팬지는 우리의 상대가 안 된다. 우리 인간은 어려운 상황에서 문제에 부딪히면 서로 협상도 잘하고 현명하게 조정도 하며 협업해서 그 문제를 해결해 낸다. 하지만 침팬지에게는 이렇게 하는 것이 너무나 힘든 도전이다. 침팬지는 이기적인 유인원이기 때문이다. 침팬지는 물리적 환경이라는 도전은 잘 처리해 내지만 사회적 도전에는 무기력하다. 침팬지는 힘이 강하고 영리해서 사냥감을 능숙하게 잡는다. 문제는 잡은 사냥감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맞닥뜨리면 협상은커녕 바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자연계에서 적응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도전으로 물리적 환경이 있겠지만, 이보다 더 큰 도전은 다른 인간들이었다. 극한 사막에 있다면 우리 인간은 마실 물을 찾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그 물을 운반하는데 필요한 노동을 어떻게 분담할지를 상의하고, 그 물을 옮겨 그들과 어떻게 나눠 마실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지키고 있지 않을 때 누가 내 물을 훔칠지를 간파하는 것도 똑같이 중요하다. 우리가 직장에 취업해 하루하루 버티면서 살아갈 때 우리끼리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일이 힘든 것이 아니라 ‘사람’이 힘들다고. 그렇게 인간에게는 해야 할 일, 극복해야 할 가혹한 물리적 환경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어떻게 동료나 선배, 후배 등과 잘 지내면서 업무를 처리하느냐 그것이 관건이다. 


이런 사실은 우리 인간이 왜 술에 취하는가라는 퍼즐을 푸는 데 매우 중요하다. 인간은 계획적이고 조직적이며 규칙적으로 취하는 유일한 종이다. 술취함에는 엄청난 비용과 대가가 따른다. 그런데도 왜 인간이 취하는 것에 집착하는가? 앞서 계속 이야기했듯이, 술취함에 대한 인간의 취향이 진화의 실수는 아니다. 그렇다면 취함은 우리 인간에게 무엇에 좋은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인간 자체에 관해 이야기를 해 볼 필요가 있다. 모든 생물 종(種)은 특정한 환경에 적응함으로써 살아남는다. 슬링거랜드는 수족관에서 키우는 작은 민물고기인 멕시칸 테트라(Mexican Tetra)를 예로 든다. 이 물고기 중에서 어떤 종은 지상의 강이 아닌 지하 동굴에서만 살게 되면서 몸이 옅은 흰색으로 바뀌고 눈이 없어지면서 점차 빛이 없는 동굴 환경에 적응했다. 동굴에 사는 테트라는 동굴에 적응했으니 동굴 밖으로 나올 수 없고 평생 그곳에 머물러야 한다.

동굴 속에 고립돼 눈과 몸 색이 없어진 멕시칸 테트라(위)와 육상에 사는 테트라(아래)

영장류 중에서 인간은 동굴 테트라와 다르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다. 인간은 혼자서는 약하고 무기력하므로 여럿이 모여 문화를 형성하며 살게 되었다. 인간은 문화에 너무 의존하게 되어 이제는 문화 없이는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 인간은 불을 사용하게 되면서 채소와 고기를 조리해서 먹게 되었다. 그러면서 날음식을 먹는 침팬지와는 달리, 음식을 씹을 거대한 턱과 튼튼한 치아, 정교한 소화계가 필요 없게 되었다. 강건하지 않은 이런 신체적 상태를 한 채 우리 인간은 동굴 테트라가 동굴에 적응하듯이 문화라는 동굴에 적응했다. 그리고 인간은 문화에 너무 의존하게 되어 이제는 문화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다.


문제는 인간이 사는 이 문화의 동굴은 붐비고 낯선 사람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살기 위해서는 낯선 사람들을 포용하고 서로 협력하며 서로 개방하고 신뢰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작은 비행기에 빽빽이 탑승하는 상황을 보자. 승객들은 승무원의 지시를 고분고분하게 따라 안전띠를 매고, 승무원이 주는 때로 입에 맞지 않는 기내 음식을 잘 받아먹으며, 그렇게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 잡지나 영화 등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화장실에 가기 위해 초면인 옆 사람에게 양해를 구해 좁은 공간을 비집고 왔다 갔다 한다. 비행기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다시 승무원의 지시대로 반듯하게 줄이어 걸어 나간다. 이처럼 인간에게는 이런 힘든 상황에서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그 비행기에 같은 수의 침팬지를 태운다고 상상해 보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침팬지는 치열하게 이기적이고 혹독하게 경쟁적인 종이므로, 그 좁은 공간의 상황을 인내하지 못하고 혈투가 벌어져 기내에 피와 토막 난 몸 조각들이 즐비할 것이다. 침팬지와 비교해 우리 인간은 비행기에 고분고분하게 앉아서 승무원의 지시를 잘 따른다는 점에서 어리숙한 강아지 같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은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협동하거나 각각의 전문 기술을 사용하여 집을 짓고, 집단에서 특정한 역할로 추진되는 삶을 살아간다. 즉, 우리 인간은 사회적이고 협동적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인간은 개미나 벌과 같은 사회적 곤충을 닮았다. 하지만 우리는 개미나 벌이 아니다. 개미는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므로 공동선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어쩌면 그런 희생은 공동선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개인적 희생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가진 유인원인 우리 인간은 협력은 하지만 식구나 가까운 친척, 동료들에 국한해서 제한적으로 협력한다. 우리 인간은 타인에게 이용당하지 않으려고 항상 경계하고 있다. 


우리 인간은 침팬지 같은 영장류이다. 침팬지는 우리 인간과 DNA의 98%가량을 공유한다. 우리 몸에는 침팬지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이기적이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경쟁도 즐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얼빠진 강아지의 모습과 사회적 곤충의 모습도 갖고 있다. 바로 여기가 인간의 이중성과 인간의 역설적인 면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슬링거랜드 교수는 이런 인간의 문제와 그 해결책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네모난 영장류 나무못을 원형의 사회적 곤충 구멍에 박아 넣으려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 취함은 그렇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다, 술취함은 타고난 침팬지의 몸에 얼빠진 강아지와 사회적 곤충의 피를 어느 정도 주입하는 것과 같다. 술은 인간의 이런 이중성을 해결하기 위한 간결한 수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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