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풍요로움
소마구간 처마 끝에 매달린 물고기종은
흐르는 바람에 한들한들 대고
그 아래 소 여물통은 그 바람에
늘 비어있는 듯 아닌 듯 뒤뚱뒤뚱 대고
잔등 부은 소 눈두덩 망울이는 봉분인듯 젖살인듯
오월이면 뒷밭 산비알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오는 살구꽃 볼빛은 향끗하고
감잎 바람길은 생각의 좌우 쏠림 없이 산뜻하고
제 속을 흐르는 붉은 앵두가 피는 날에는
장독 너머로 속울음이 훌쩍거리고
제 속을 탈탈 털어내고 늦잠을 늘어지게 자던 노란 보리떼는
햇살을 타닥타닥 태우고 있다
지금도 그 따뜻한 풍경을 마음에 늘 담고 싶다
시인이 말하는 따뜻한 풍경이란 뭘까? 풍경은 자연을 연상시킨다. 탁 트인 초록의 자연이 풍경이다. 자연 풍경이 따뜻하다는 것은 4, 5월의 햇살을 생각나게 한다. ‘따뜻한 풍경’이란 제목만 읽고 4, 5월의 따뜻하고 포근한 햇살이 내리쬐는 푸르디푸른 들판에 모처럼 간접적으로 한 번 가 보겠구나 생각했다.
시의 첫 구절에 나오는 ‘소마구간’이라는 첫 단어로 따뜻한 들판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려는 나의 소박한 꿈은 깨진다. ‘따뜻한 풍경’이라는 제목을 글자 그대로 해석한 탓에 이런 나의 소박한 꿈은 깨진 것이다. 조금 복잡하겠지만 비유적 해석으로 눈을 돌려야 할 것 같다. 이 시의 제목 ‘따뜻한 풍경’은 ‘공감각’ 표현이다. 어떤 하나의 감각이 다른 영역의 감각을 일으키는 공감각 패턴을 따라, 이 제목에서 ‘풍경’이라는 시각적 감각은 ‘따뜻함’이라는 촉감을 일으킨다. ‘따뜻함’은 누구의 것일까? 풍경 자체는 따뜻할 수 없으니, 풍경은 아니다. ‘지금도 그 따뜻한 풍경을 마음에 늘 담고 싶다’라는 이 시의 마지막 연에서 그 단서가 보인다. 따뜻함의 주인은 시인이었다. 시인이 살았던 시골집의 모습과 풍경이 시인에게 포근하고 따뜻한 마음을 주었던 것이다.
시인에게 따뜻함을 심어 준 풍경으로 소마구간이 등장한다. 바람이 불어 소마구간 치마 끝에 매달린 물고기종이 흔들리고 소 여물통도 흔들린다. 시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물고기종과 여물통은 정적인 모습이 아닌 동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인간의 주의와 관심이 동적인 것을 지향한다는 속성을 바람은 알고서 정적인 물고기종과 여물통에 동적인 차원을 심어준 것이다. 고마운 바람이고 똑똑한 바람이다. 이 바람은 의지적으로 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흐름을 따라 ‘흐르고’ 있다. 물고기종과 여물통에게는 능동적 모습을 보여주지만, 정작 본인은 수동적 모습을 갖춘 겸손한 바람이다. 왜 바람이 똑똑한 걸까? 바람도 유기체이다. 바람도 욕심이 있다. 시인에게 칭찬받고 싶은 욕심이 있다. 하지만 바람은 시인에게 직접 호소하지 않는다. 시인은 자신의 관심을 끌고 있는 동적인 물고기종과 여물통이 바람의 힘 때문임을 안다. 이로써 바람은 간접적으로 자신의 힘을 시인에게서 인정받는 모습이다.
동적인 이미지는 그다음 연에서도 계속된다. 2연에서는 살구꽃 볼빛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시인은 갑자기 이를 등장시키지는 않는다. 살구꽃 볼빛이 따라 내려오는 산비탈(산비알)은 ‘잔등 부은 소 눈두덩 망울이’의 모습을 닮았다. 1연이 바람을 타고 ‘흐르듯이’ 2연으로 안착한 것이다. 1연에서 물고기종과 여물통이 흔들리면서 시각으로 시인에게 어필했다면 2연에서 살구꽃 볼빛도 시인의 관심을 끌 나름의 매력을 갖고 있다. 그것은 향긋함이라는 후각이다.
3연에서는 시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두 가지 양상이 동시에 참여한다. 3연의 주인공은 앵두이다. 그 앵두는 시각적으로 붉고, 그 속에서는 ‘흐름’이라는 동적인 차원을 갖고 있다. 앵두는 시각과 동작이라는 두 차원으로 시인에게 어필하는 것이다. 3연의 또 다른 주인공인 보리떼도 이중적 자극으로 시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보리떼는 노란색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속울음이지만 ‘훌쩍거리고’, 털어낼 때도 소리가 들리도록 ‘탈탈’ 털어내는 보리떼는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모습일 때도 ‘타닥타닥’ 소리를 내면서 청각을 발휘하고 있다.
인간의 감정에는 자극이 필요하다. 아무런 자극 없이 어떤 감정을 가질 수는 없다. 시인은 아주 정적인 자기 시골집의 모습에서 따뜻함이라는 감정을 갖게 된다. 왜 일까? 물고기종과 여물통의 시각, 살구꽃 볼빛의 후각, 앵두의 동작과 시각, 보리떼의 시각과 청각처럼 다양한 자극들이 힘을 합친 것이다. 다양한 자극에 둘러싸여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따뜻한 마음을 갖게 된 시인이 갑자기 부럽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