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빼고 쉼의 홍수 속에 있는 것 같으면.
요즈음,
'누가 거길 언제 누구랑 어떻게 갔다 왔대.'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
그곳은 언제든 누구랑도 어떻게든 갈 수 없어서 말문이 막힌다.
'요즘은 해외 여행 안 가는 사람 없잖아?'
하면,
또,
말문이 막힌다.
언제든 누구랑도 어떻게든 갈 수 없어서.
디폴트 값이 여행이 되어버린 세상에 살고 있는 것만 같다.
여행을 가지 않으면 쉰 것 같아 보이지 않고, 여행을 가지 않으면 제대로 놀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여행을 가지 않으면 쉬는 날을 유익하게 보내지 않은 것 같고, 여행을 가지 않으면 할 말이 없어져 버리는 세상에 살고 있는 난. 여행을 가지 못한다.
하지만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은 더 이해받지 못한다. 심지어는 '어차피 쉬는 날 집에서 푹 쉴거면서'의 서두가 붙으며 어떠한 요구가 오기도 하고, 사람들의 마음대로 불려지기도 한다.
왜, 그토록 여행을 말할까.
'누군가는 어디를 갔는데 나는 어디까지 밖에 못 갔어.'
추억으로 가득할 여행의 장소가 비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여행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위한 것은 아닐텐데도, 누군가는 갔으니 그곳에 가겠다 다짐하고, 자랑인듯 자랑아닌 여행담을 늘어 놓고, 주위 사람들에게 여행을 종용하는 것을 단순히 여행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싶지만, 모두가 그저 여행이 좋았기때문이라고 말한다.
누군가에게는 트로피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되며 누군가에게는 박탈의 대상이 되는 여행을 뭐라고 해야 하나,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미루지 못하는 일을 하고, 저축하거나 학자금을 갚기 위해서는 집에 있어야 했던 지난 나날들을 부정당할 때가 오면 그저 웃어 넘길 수밖에 없다.
열심히 살았을 뿐임에도 내 열심이 미련함이 되어버리면 한 순간에 공간이 갈라진다. 새로운 세상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아무리 저축하려해도 모이는 것은 적어 보이기만 하고, 아무리 갚아 나가도 남는 것은 제자리고 발버둥친 값으로 지불할 병원비가 남았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고,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이고, 나를 위해서도 쓰기 위해 전시나 영화관람이나 커피값과 책값을 지불하며 나름 참 잘 살왔고, 나름 잘 쉬었다고 생각하던 것들을 무시 당할 때가 많다.
언제부터 여행이 디폴트가 되었을까. 지금도 그런 고민을 한다.
언제부터 쉼이 여행이 되었을까.
언제부터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여행이란 쉼 속에 살고 있던 것일까.
어쩌면 이 모든 것은 SNS 때문일지도 모른다.
탓을 해보자면.
어쩌면.
그래서 지금도 쉼의 홍수 속에 있노라면, 그런 것 같으면 열심히 뒹굴어야지. 열심히 읽고. 쓰고. 보고. 울고. 불고. 웃고.
내 세상 속에서 잠깐 동안 새 인생을 살아봐야지.
그랬다.
그리고 그런다.
오늘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