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맛도 내맛도 아닌데, 그게 나야.

나의 세계는.

by 담하dam ha

작은 방 하나 겨우 가진 30대의 세계는 방 만큼 크지 않다.

어느 나이에는 결혼을 하고,

어느 나이에는 전세집을 얻고,

어느 나이에는 차를 가지고,

어느 나이에는 자가를 얻고,

어느 나이에는 아이를 낳고,

어느 나이에는 노후 생활을 보내는 것이 과연 '일반적'인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모두가 그래야만 말하는 세상이 아니라지만, 나이가 차면 자연스레 접하게되는 이야기이다.

친구들은 그 퀘스트를 완료했고, 그 중 누구는 퀘스트를 깨지 못했다. 퀘스트를 완료한 친구들은 '안타까워'하는데 그것은 정말 안타까운 것일까.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대부분은 퀘스트를 매우 잘 깨나가고 있는 것만 같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은 전부 퀘스트를 깼고, 깨지 못한 것은 나 하나 뿐이란 것은 뒤쳐졌다는 느낌뿐 아니라,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누구나 당연히 해야 한다고 모두가 말하니까 그렇게 해야 괜찮은 사람, 진정한 사회인이 된 것만 같다.

그 안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과 우울감은 나를 어쩌지 못한다.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첫 출발부터 달랐던 스타터 위치가 아직까지 나를 옥죄어 올 줄은 몰랐다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지난 날을 자책하고 아무런 잘못이 없을 그저 없었을 뿐인 부모님의 지난 시절까지 자책한다.

그러다 문득, 사람마다 시간이 다르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언제나 하는 그 생각은 나를 지탱하며 쉬지않고 말한다.

사람마다 스타트가 달랐던 것은 인생의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고 인생의 흐름이 다르기 때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나도 과거의 나도, 그러니까 모든 시간의 내가 정당했다고.

그래, 맞지.

당신은 당신의 세계를 살아가고, 나는 나의 세계를 살아가고, 누군가는 누군가의 세계를 살아 간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시간의 분초가 다르기 때문에 전세를 사는 사람에게 '어, 너는 오후 3시 쯤을 살아가는 구나. 나는 아직 오전 11시를 살고 있어.' 그러면 되는 것이다.

나의 세계는 작은 방 하나이고, 인생에 로맨스를 만나기는 어려울 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친구들은 사회적으로 부합하게 되고 격차가 생기면서 멀어지기도 하고 가까워지기도 했다. 그게 나의 세계인 것이 부끄럽지 않은 것은 다른 누군가가 살아가는 그 시간에 살아가지 않을 뿐이고 굳이 빠르게 따라가려다가 내 시간이 어둑어둑 져버리고 싶지도 않다.

어쩌면 우리는 다른 공간을 사는지도 모른다.

물리적으로 같은 곳에 존재하지만 서로 각자의 세계에서 각자의 시간과 각자의 공간 속에 살아가니, 완전히 다른 세상이지 않은가.

이런 말이 있다. '그사세' 그들만이 사는 세상의 줄임말. 그런 말이 왜 있겠느냔 말이다.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세상을 살아간다고 하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어도.

우리는 각자의 세상, 각자의 세계를 살아 간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조급하지 않고 살아낼텐다.

그런 다짐을 하는 것이 내 세계의 일부이다.

부디, 모두 자신의 세계를 사랑할 수는 없어도 다른 사람의 세계만 사랑해서 스스로가 빠르게 져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부디, 나도, 나의 세계를 사랑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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