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사라지는 빨간 볼펜

빨간 볼펜의 희소성

by 케이트쌤

우리 학원에서 제일 필요하지만 매번 없어지는 존재!

바로 빨간 볼펜이다.


선생님들이 각 반에서 숙제 채점을 할 때 가장 필요한 빨간 볼펜, 그리고 영어도서관 선생님이 단어시험을 채점하거나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Book Report 쓰고 제출하면 틀린 걸 고쳐줘야 하는데 이놈의 빨간 볼펜이 자꾸만 없어진다. 나 역시 지금은 내 개인 필통을 가지고 다니는데 그 이유가 바로 빨간 볼펜 때문이다.


전에는 모든 강의실에 있는 선생님 책상 위의 연필꽂이에 빨간 볼펜이 항상 있었고 빨간 색연필도 많이 있어서 개인 필통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빨간색 볼펜의 개수가 점점 줄어들더니 어느 날부터는 빨간 볼펜을 찾아 이교실 저 교실을 돌아다녀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빨간 볼펜 몇 개를 가지고 선생님들이 서로서로 빌리고 찾는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슬슬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 무렵부터 선생님들이 각자 자기 필통에 본인 문구류를 개인적으로 챙겨가지고 와서 사용하기 시작했고 나 또한 매번 빌려 쓰는 게 싫어서 내 개인 필통을 준비했다. 그 이후부터는 빨간 볼펜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다고 원장님이 볼펜을 안 사다 주는 게 아니다. 학원에 항상 빨간 볼펜이 없어서 한번 가져오시면 몇십 개씩 가져오셔서 선생님들 책상에 7-8개씩 연필꽂이에 꽃아 주신다. 문제는 학원 볼펜을 애들이 아무 생각 없이 쓰고 돌려놓지 않고 자기 필통에 넣어서 가지고 가다 보니 금방 없어진다. 필통을 챙겨 오면서 집에서 빨간 볼펜을 챙겨 오라고 나도 개인적으로 수업 시간에 자주 얘기했지만 아무도 챙겨 오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몇몇 애들은 연필과 지우개라도 챙겨 온다는 걸 위안 삼고 있다. 필통 챙길 때 빨간 볼펜도 하나 챙겨서 넣어놓으라고 해도 아이들 말로는 집에 가면 챙겨 놓는다는 게 매일 잊어버린다고 한다.


숙제해 온 걸 수업시간에 채점하고 틀린 걸 고치려니 아이들도 각자 개인 빨간 볼펜이 필요하다. 본인 필통을 가지고 다니는 학생들 중 극히 소수의 여학생들만 자기 것을 사용하니까 학원 물품을 사용할 일이 전혀 없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필통 없이 학원을 오기 때문에 각 강의실에 있는 빨간 볼펜이나 색연필을 사용하는 학생의 숫자가 더 많다.


학원에서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개인 필통을 준비해 달라고 단체 공지 문자도 보내보고, 각 반 별로 코로나 때문에 개인 학용품 준비하고 친구 학용품을 서로서로 만지거나, 빌리는 행위는 되도록이면 삼가고 학원에 비치된 공용 연필과 지우개는 되도록이면 사용하지 말라고 권고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별로 신경 안 쓰는 눈치였다.

학원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을 때는 학원 소독하라고 그 난리를 피웠으면서 이상하게도 학원에 와서 애들이 아무거나 손대고 사용하는 건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았다. 한 번은 필통 없이 오는 애들이 너무 많아서 원장님께서 샤프심과 샤프, 지우개, 삼색볼펜이 들어있는 필통을 학원생 전부에게 선물해 준 적도 있었는데 그 방법도 별로 좋은 효과를 못 봤다. 그리고 여전히 빨간색 볼펜은 소중한 존재이고 부족할 때마다 원장님은 계속 채워놓으신다.


명절 연휴가 시작되기 전 월요일에 원장님께서 각 강의실 영어 도서관의 연필꽂이에 빨간 볼펜을 4-5개씩 꽂아 놓으셨고 그날 역시 아이들이 각자 학원 볼펜을 가져다가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요일 학원 단톡방에 올라온 카톡하나가 눈에 띄었다. 원장님께서 보낸 메시지였다.

선생님용이니까 애들이 가져가지 못하게 하라는 내용의 카톡

카톡을 확인하고 난 후 연필꽂이를 보니 월요일에 새로 꽃아 주셨던 사진의 볼펜이 단 이틀 만에 다 사라지고 한 개만 남아있다.

"얘들아, 학원 볼펜 쓰고 나면 꼭 연필꽂이에 돌려놓고 가도록 해라. 원장님께서 볼펜 선생님용으로 갖다 놓은 거니까 가져가면 안 돼"

애들에게 주의를 준 후 이틀 후부터는 볼펜이 연필꽂이에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도서관 쪽은 사정이 다른가보다.

도서관에 볼펜이 2개 밖에 없으니 도서관 선생님들에게 애들이 볼펜 집으로 가져가지 못하게 해달라고 선생님이 올린 카톡

도서관에서는 애들이 책 읽고 독후감을 쓰기 때문에 빨간 볼펜을 쓸 일이 없는데 왜 볼펜이 다 없어져서 두 개만 남았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교실 수업 듣는 학생들이 도서관 가서 빨간 볼펜을 가져다 사용한 후 도서관에 다시 갔다 놓지 않고 강의실 연필꽂이에 꽂아 놓고 간 듯하다.

그래서 어제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또 한 번 도서관에 있는 볼펜 가져가지 말라고 상기시켰다.


빨간 볼펜이 어쩌다 이리 귀하신 몸이 된 건지 참 웃픈 일이다.

keyword
이전 13화나에게는 아직 이른 마스크 착용 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