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지 모르겠어요.”
이 묵직한 질문은 시기를 가리지 않고 찾아옵니다.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다가올 미래를 불안해하는 청소년과 이런 시도를 해보기도 합니다.
“자, A4 용지를 반으로 접고 또 반으로 접어봐. 네 칸이 생기지? 왼쪽 위부터 20대, 30대, 40대, 50대라고 쓰고 미래의 나의 모습을 상상해서 그려 보는 거야.”
한참 고민하던 아이는 절반을 채운 종이를 제게 건넵니다.
'20대 차 열쇠, 30대 집 열쇠, 40대…. 50대….'
살아갈 이유를 찾고 있는 성인이라면 빈칸을 채우지 못한 이 아이에게 공감이 갈 거예요.
30대까지는 정해진 목표가 있었는데. 입시, 졸업, 취직, 결혼까지 하고 나니 그다음은?
주변을 둘러보니 승진, 부의 축적과 같은 뾰쪽한 목표를 쫒는 사람은 망설임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동참하고 싶진 않은데...
반복되는 일상을 타파할 삶의 의미를 구원처럼 기다립니다.
인본주의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사람을 움직이는 동기, 욕구에는 위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생리적인 욕구가 있고 그것이 충족되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생리적인 욕구가 해결되면 안전한 곳에서 보호받으며 살고 싶어 합니다. 이렇게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욕구의 방향이 더 큰 사회로 향합니다. 인간은 어딘가에 소속되고 사랑받고, 존경받고 싶어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충족되고 나서야 자아실현, 자기 초월의 욕구가 고개를 듭니다. 이 자아실현의 욕구가 소위 존재의 이유, 소명, 삶의 목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최상위 단계인 자아실현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고 그곳에 도달해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 아래,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다른 욕구가 생기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당장 배가 고픈데 자아실현이 뭐 그리 대수일까요?
어떤 사람은 매슬로우의 피라미드의 아래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장 윗 단계로 퀀텀 점프하기도 합니다. 생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박탈된 상태에서 자기 초월을 이뤄낸 사람이죠.
홀로코스터 생존자인 빅터 프랭클은 모든 것을 잃었지만 삶의 의미를 찾음으로써 심리적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고 그의 삶을 통해 증명해 보이고 이를 토대로 ‘로고 테라피’를 창시합니다.
그의 삶을 접하게 된 사람은 어딘가에 소속되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에 만족하거나 안주하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이 들 수도 있습니다. 허나 매슬로의 피라미드에서 아래에 위치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또한 자아실현만큼 어려운 일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따뜻한 보금자리, 먹을 음식,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 사랑받는 것. 이것 모두 거저 얻을 수 없고 부단한 노력이 드는 일입니다.
한 사람으로 나서 한평생 삶의 의미를 찾고 그것을 이루는 것이 좀 더 나은 삶이지 않냐고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죠.
의미를 쫓아 나아가고 싶은데 아직 목표를 찾지 못한 분께는 이렇게 제안드리고 싶습니다.
목표를 과녁의 점이 아닌 방향성으로 설정하는 것입니다.
목표가 뾰쪽하지 않고 뭉툭하다면 그곳까지 가는 방법이 다양해집니다.
'내 삶의 목표는 남을 돕는 거야.'
가치를 담은 뭉툭한 목표는 다양한 변주가 가능합니다. 방향성을 유지하면서 상황에 따라, 시기별로 목표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방향성조차 찾기 어려울 때는 이런 방법은 어떨까요.
그냥 나로 사는 겁니다.
그건 어떻게 하는 거냐고요? 그냥... 살아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것을 진짜 삶에서 마주쳤을 때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내 한계선은 어디인지.
이상적인 나와 실제의 나는 어떻게 같고 다른지.
'우리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은 인생이다.'
소설가 살만 루슈디의 말처럼 나를 알아가는 과정으로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읽고 삶의 의미나 목표를 찾는 건 여유 있는 자들의 사치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No pains, No gains.'
고통 없이 얻어지는 건 없다는 뜻으로 많은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좌우명이기도 하지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growth after trauma,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 PTG)이라고 합니다.
고통을 겪으면서까지 이뤄야 할 삶의 목표가 반드시 필요한 걸까.
“성장, 이제 지겨워”
그럴 수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느낀다면 한 번쯤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현재 사랑이 결핍된 것은 아닌지, 기본적인 욕구조차 해결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은 아닌지를요. 배를 채워야 뭐든 할 수 있잖아요.
여러분의 고민은 어디쯤에 있나요?
’왜 살아야 하는가?‘
생의 어느 순간, 이 묵직한 질문이 갑자기 찾아왔을 때 혼자보다는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도움이 될 거라 믿습니다.
*McLeod, S. (2007). Maslow's hierarchy of needs. Simply psychology, 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