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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고따뜻한일상 Jul 29. 2024

못난이 돌담

울담을 새로 쌓았어요.

칠 년전 칠월 집만 지어진 상태에 이사를 왔다. 일차선 도로를 낀 직사각형 터에 이층 집만 덩그러니 있었다. 흙바닥인 마당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뒷집 할아버지가 오셨다. 할아버지는 '집 짓느라 속았져(수고했어)' 라고 덕담을 해주시며, 도로가에 있는 집이라 오고 가며 보게 되니 돌담을 보기 좋게 쌓아보라고 하셨다.


제주 시골에는 돌담이 많다. 그 담엔 종류가 있다. 집을 둘러싼 담은 울담(우잣담, 집담)으로 가지런히 공들여 예쁘게 쌓는다. 올레 담은 집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목에 있는 담이다. 울담만큼은 아니어도 미관상 정돈되게 쌓았다. 밭담은 땅을 갈면서 나온 돌들을 쌓아두는 담이라 모냥새 보단 밭의 경계 구분과 소와 말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역할에 충실한 담이다. 우리 집터 둘레에도 담이 있긴 했지만 밭이었던 곳이라 크고 작은 돌들이 불규칙하게 쌓인, 투박하고 낮은 밭담이었다. 내 눈에도 하얀 외벽과 징크로 지붕을 마감한 심플한 새집과 어울리지 않던 밭담이 미워 보이던 때였다.


할아버지의 말에 힘이 실린 나는 조경업체에 돌담과 잔디 식재를 함께 알아보았다. 지인이 소개해준 곳, 맘카페에서 수소문한 곳, 그리고 네이버 검색으로 찾아낸 곳까지 세 곳에 조경을 문의했다. 빠듯한 예산으로 집 짓기를 마무리한 시점이라 비용은 삼백만 원 안팎으로 계획하고 있었다. 기존 밭담을 무너뜨리고 현무암을 구매해서 겹담을 쌓고, 앞마당에 잔디를 식재하는 일은 천만 원에 육박하는 견적이 나왔다. 빠른 포기와 선택을 해야 했다. 바람 부는 날 일층 창문이 뿌옇게 될 정도로 흙먼지 날리고 비 오면 질척해지는 흙바닥이 시급했다. 여름이 끝나는 무렵 잔디부터 심었다. 길가 돌담은 살면서 차차 쌓아야지 했는데 어느덧 칠 년이 지났다.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밀린 숙제를 유월에 끝냈다. 비용을 많이 들여 조경용 현무암 모서리를 깎아 아귀를 맞춘, 반듯한 겹담을 쌓고 싶은 욕심을 내려놓았다. 마당에 있던 돌을 그대로 사용해서 외담으로 정돈해  분을 수소문했다. 집을 짓기 전부터 있던 돌들이었다. 예쁘진 않아도 우리 가족보다 먼저 이곳에 살던 그들이  터의 주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들은 나와 집보다  오래 이곳에 남아 있을 존재가 아닌가.


앞마당 북쪽으로 토종 동백낭 일곱 그루가 나란히 있다. 집터를 알아볼 때부터 있던 나무들이다. 나는 그 동백낭을 아낀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막아주고 사계절 푸른 잎으로, 한 겨울엔 소담한 꽃으로 아름다운 기쁨을 주는 친구 들이다. 돌담도 동백낭과 함께 이 터에 있었는데 보기 밉다고 사는 내내 마음에 안 들어했다. 집터를 껴안듯 담이 두르고 있어 도로보다 높은 지대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고마움을 몰랐다.

(울퉁불퉁 우리 집 울담_초록초록 여름이다)


유월, 현충일 전날 작은 포클레인으로 쌓여있던 담을 무너뜨렸다. 돌들은 크기에 따라 구분되었다. 세분이 합을 맞추며 돌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이리저리 굴려 퍼즐 맞추듯 한 칸씩 담을 새로 쌓아 나갔다. 곁에서 비타 오백 세병을 들고 선 드리는 것도 잊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균형을 맞추어가는 과정은 멋진 일이었다. 돌과 돌 사이에 시멘트를 쓰지 않고, 돌을 깎지 않고, 거센 제주 바람에 무너지지 않는 담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꼬박 하루 걸려 우리 집 밭담은 울담으로 변모했다.


정돈된 담은 빠르게 지나치면서 본다면 그전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돌도 그대로이고 높이도 전보다 딱 한 칸 위로 올렸을 뿐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 눈엔 확연히 다르다. 크기가 균등한 돌들이 적당히 공간을 띄면서 맞추어져 있다. 하나씩 다시 모양 맞추어 쌓아 놓으니 칠 년간 보아온 못난이 돌들이 썩 괜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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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rowitz In Moscow
(DG Centenary Edition - 1986)

(Pf.) Vladimir Horow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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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이십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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