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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고따뜻한일상 Aug 05. 2024

제주여서 시골이여서 좋을 때

재활용품 분리수거는 요일별로 해요.

스멀스멀 세탁실 구석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아니 은근하게 불쾌한 냄새가 난다. 세탁실 창문 왼편으로 재활용품과 쓰레기를 분류해서 모아둔다. 우유팩은 가위로 잘라 펼쳐서 물로 세척 후 바짝 말린다. 첫째가 마시던 음료 페트병도 라벨을 떼고 물로 헹궈 거꾸로 세워 뒀다. 그럼에도 음식물 쓰레기인가 아니면 고등어를 담았던 비닐백에서 일까? 꽁꽁 싸맸는데 고약한 냄새가 난다. 쓰레기를 버려야겠다. 한 손엔 종량제 봉투, 다른 손엔 재활용품과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번거롭고 귀찮다.


 제주는 오후 세시부터 새벽 네시까지 클린하우스를 오픈한다. 그전 시간에는 가름막으로 쓰레기통을 가려놓는다. 요일별로 정해진 재활용품과 쓰레기를 버릴 수 있다. 월수금일은 플라스틱류와 페트병, 화목토는 종이류, 화토는 불에 타지 않는 폐기물, 목요일과 일요일은 비닐류를 수거하는 날이다. 집에서 한라산 방향(남쪽)으로 오분 남짓 걸어가면 클린하우스가 있다. 클린하우스에는 지킴이 삼춘이 계신다. 요일에 맞지 않는 재활용품을 가지고 가면 거침없이 되돌려 보낸다. 집으로 재활용품을 다시 들고 오는 날은 당황스럽고 무안하다. 좀 받아주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삼춘이 설명해 줘도 나는 깜박하고 요일에 맞지 않는 재활용품을 들고 가거나 페트병을 납작하게 만들지 않고, 두부 뚜껑 비닐을 잘 떼지 않고 가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삼춘은 페트병 뚜껑을 열고 발로 꾹 눌러 시범을 보여주었다. 장갑을 벗고 두부 뚜껑 비닐을 잘 떼어 비닐과 플라스틱으로 분리 수거 해주셨다. 삼춘은 더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정해진 시간에 자리에 계신다. 산더미처럼 쌓인 재활용품들을 말끔하게 정리해 놓는다. 종이 박스는 하나씩 펼쳐서 차곡차곡 쌓아놓고(테이프가 붙여진 육면체 모양의 박스가 많이 버려진다) 페트병의 라벨을 떼어 플라스틱과 비닐로 새로 분리수거한다. 지킴이 삼춘의 손을 거쳐 우리 동네 분리배출이 갈무리된다.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보충수업하는 첫째를 등교시키고 둘째 셋째와 아침 점심 저녁식사까지 함께하는 여름방학은 고단하다. 재택근무 업무량이 많은 오늘 같은 날은 저녁식사 후 설거지를 할 때 즘 체력이 바닥난다. 설거지를 다 하면 누워야지 다짐했는데 세탁실 냄새가 신경 쓰인다. 양손 가득 쓰레기를 챙겨 구겨진 마음으로 현관문을 연다. 낮 동안 뜨거운 태양에 달궈진 바깥은 후끈하다.

(우리 동네 클린하우스 다녀오는 길)


클린하우스 기둥에 매달린 지킴이 삼춘의 작은 라디오에서 지직 거리는 클래식 FM 흘러나온다.  나도 세상의 모든 음악 좋아하는데! 반가움에 마음이  펴진다. 지킴이 삼춘은 꼼꼼히 내가 가져온 종량제 봉투를 확인하고 페트병엔 라벨을 뗐는지, 고기를 담았던 얇은 스티로폼 접시는 비닐류 칸에 넣는지 살펴본다. “오늘 비닐 버리는  아닌데  씻었네 거기 두고 하고 슬쩍 봐주신다. “매번 잊어버려요 다음엔   확인할게요. 감사합니다인사를 한다. 쓰레기를 무사히 버리고 덤으로 아름다운 BGM 들으며 천천히 집으로 향한다. 해가  지는 우리 동네 하늘은 파랑과 노랑 회색이 어우러 진다. 멀리 북쪽으로 보이는 바다 경계선은 아직 파랗다. 지킴이 삼춘이 비닐을 돌려보내지 않아서 그런가,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온 음악이 좋아서인가 하늘빛이 고와서 인가 집을 나올  무거웠던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짜증이 풀리자 음소거되었던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진한 풀내음도 코끝을 스친다. 기분이다 집을 지나쳐 북쪽 바다를 향해 걷는다.  분만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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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ne Summer's Day

(ENCORE)
Hisaishi J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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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 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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