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바다와 한강 둘 다 좋아요.
서울에서 매일 한강을 보고,
산책할 수 있는 곳에 산다는 거 특별한 일이야
약하게 불어오는 강바람을 맞으며 저녁 산책을 하던 중 남편이 말했다. 다가오는 구월 출산을 앞두고 있던 나는 걸을 때마다 동그랗게 나온 배가 더 아래로 내려가는 것 같아 불편했다. 아랫배가 단단하게 뭉치고 발목도 아파왔다. 물가지만 후텁지근한 바람만 불면서 짠내도 없는 한강이 짜증 나던 참이었다. 당연 나의 답도 미적지근했다. 그래? 그런가...
두 달 뒤 태어난 첫째는 두 시간 간격으로 깼고 깊은 잠을 자지 않았다. 부족한 잠과 모유수유로 첫째가 젖살이 오른 귀여운 육 개월의 아가가 되었을 때 나는 인생 최저 몸무게를 기록했다. 첫째가 구 개월이 되던 사월, 남편은 제주행 편도 비행기표 한 장을 예매했다. 친정인 제주에서 한 달 정도 쉬면 몸이 회복될 거야라는 말과 함께. 그 무렵부터였다. 내가 좋아하던 비행기를 타는 일이 힘들어졌다.
승객 여러분 곧 목적지인 김포공항입니다. 이 비행기는 잠시 후 착륙 예정입니다.라는 안내 멘트에 반사적으로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아찔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저 많은 고층 아파트, 많은 서울의 집들 중 내 집은 어디지? 우리 가족의 집이 있기는 있었나? 하는 생각에 멀미가 났다. 양쪽 귀 뒤부터 시작된 찌르는듯한 통증이 뒷머리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두통은 첫째를 안고 친정을 다녀오던 길에 시작되어 둘째가 태어나고 셋째를 품게 될 때까지 김포행 비행기를 타면 나타났다.
첫째가 십칠개월 때 다시 일을 시작했다. 막 스마트폰이 국내에 들어와 모바일용 앱 시장이 생겨나는 시점이었다. 모바일 앱 개발사의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UI 디자인을 했다. 이십사개월이 되면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집 근처 어린이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눈에 차는 곳이 없었다. 공립 어린이집은 인기가 많아 대기가 백명이 넘었다. 아차산 근처 대안 어린이집 면접까지 보았지만 그곳도 마음에 차지 않았다. 집에서 일하면서 홈스쿨링을 했다. 세 살 터울로 태어난 둘째도 자연스럽게 홈스쿨링을 하게 되었다. 한강이 첫째와 둘째를 키웠다. 봄, 가을엔 한강 놀이터에서 아이 둘과 뛰어놀았다. 여름엔 뚝섬 수영장을 개근했고 겨울엔 저녁 식사 후 온 가족이 산책했다. 나와 육아를 함께 한 한강이었지만 늘 데면데면했다. 물가란 자고로 짠내가 나야 하는데 냄새도 없고 시시각각 빛을 받아 색이 변하지도 않는 표정 없는 한강은 틈을 내주지 않는 차가운 도시 사람 같았다. 제주 바다와 한강을 나도 모르게 비교하고 있었다.
첫째의 손을 잡고 둘째를 업고 부동산을 다니며 네번째 전셋집을 알아보다가 내가 한강에 데면데면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맞벌이를 해도 이년마다 오르는 전셋값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해가 갈수록 이사 가는 집의 평수는 줄고 주거 환경은 더 안 좋아졌다. 차곡차곡 저축하고 시간이 흐르면 삶의 질이 올라가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리 가족 주거의 질은 시간과 비용에 반비례하고 있었다. 밤이 되면 더 확연해지는 도시의 존재감, 반짝이는 한강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불빛 중 내 것이라 부를 수 있는 창문 하나 없는 무소유, 내 발이 땅에 딛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온전히 한강을 누릴 수 없게 했다.
잠실 재개발 여파로 뚝섬 근처 전셋값이 치솟았다. 그나마 있던 전세 물건은 찾기 어려워졌다. 전세가 반전세와 월세로 전환되었다. 인서울을 고집할 수 없게 된 남편과 나는 남양주, 김포 두 곳의 빌라와 오래된 아파트를 알아보았다. 차선책으로 각자의 고향인 대전과 제주도 고려했다. 남편이 다니던 직장의 조직개편과 셋째 임신, 살던 집주인의 월세 전환 요구,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에 임대를 꺼리는 건물주.. 우연들이 겹치면서 셋째 임신 육개월 무렵 제주로 오게 되었다. 이 우연들이 필연이라면 집을 지어야겠다. 내 창문을 가져야겠다. 하고 욕심 냈다. 세 아이가 뛰어놀 마당을 내 손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집터를 알아보았다. 제주 이주 붐으로 부동산이 들썩일 때였다. 건축허가가 되는 작은 터가 귀했다. 셋째를 출산하고 막 한 달이 되었을 때 지금의 터를 만날 수 있었다. 사글세를 살면서 이 년여를 기다려 집터를 다졌다. 모퉁잇돌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서까래를 앉히고 지붕을 덮었다.
간절한 바람을 담아 지은 이 집은 마냥 행복하기만 한 스위트홈은 아니다. 창이 많아 해가 잘 들어 환하지만 어두운 복도와 그늘진 곳도 있다. 여전히 재택근무를 하면서 육아와 집안일을 하는 나의 이중 노동이 이 집에 있다. 뚝섬에 살 때보다 해야 할 일이 더 많다. 집안 관리와 마당일을 관리실 없이 스스로 하나부터 열까지 해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여유로워졌다. 발아래 흙이 있고 머리 위로 탁 트인 하늘이 있다. 작은 우리 동네 길목엔 커다란 퐁낭이 두 그루나 있다. 북쪽으로 멀리 바다가 보이고 남쪽으로는 누워있는 한라산이 있다. 계절마다 정성 들여 가꾼 브로콜리와 양배추, 설탕옥수수, 단호박을 나누는 이웃이 있다. 집 근처 공터에는 고양이들의 아지트가 있고 종종 사료를 나눠먹는다. 작은 나눔을 받고 나눌 수 있는 곳에 가족의 공간이 있다.
가끔 어렸던 나와 남편, 한강이 보고 싶다. 그곳엔 낮잠 자는 아이를 업고 책상 앞에 서서 일을 하고 아이가 아플 때 같이 엉엉 울던 내가, 주말마다 아이들과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던 남편이, 뚝섬 음악 분수에서 물놀이를 하는 아장아장 걷던 첫째와 둘째가 있다. 그리운 그들과 한강이 언제나 그곳에 있다. 한강이 그릴 울 때, 그럴 땐 가면 된다. 이제 김포행 비행기를 두통 없이 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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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 삼십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