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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고따뜻한일상 Jul 22. 2024

언제 보아도 낯선 벌레

시골집에서 방역은 중요해요.

어 어 엄마!

둘째가 다급하게 부른다. 이 정도 목소리톤으로 엄마를 찾는다면 짐작되는 바가 있다. 두루마리 휴지를 길게 툭 끊어 여러 겹 겹쳐 두툼하게 만들어 손에 쥐었다.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 작은 방으로 달려간다.

아니나 다를까 둘째의 발아래에는 작고 긴 벌레가 기어가고 있었다. 괜찮아 엄마가 얼른 잡아줄게~ 올해는 노래기가 자꾸 나오네. 등에 찌르르 털이 곤두섰지만 담담하게 말하곤 휴지로 벌레를 잡았다. 두툼한 휴지를 잡은 두 손가락 끝에서 벌레의 촉감이 느껴지는 것 같다. 후우 속으로 깊게 숨을 내뱉는다. (엄마도 벌레가 무서워 둘째야.)


시골에선 봄이 되어 따뜻해지면 개구리만 깨어나는 것이 아니다. 벌레도 부지런히 알에서 깨어나 존재감을 드러낸다. 무당벌레, 송충이, 돈벌레, 지네, 거미... 언제 봐도 새롭고 낯선 친구들이다. 매해 집안으로 들어오는 벌레의 종류는 다르다. 작년 봄엔 작은 지네들이 하루에 5~6마리씩 하얀 벽을 기어올라 온 가족을 놀라게 했다. 꺄악하는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려 달려가보면 어김없이 작고 푸른빛을 띠는 지네들이 빠른 속도로 벽을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들은 정말 빠르닷) 손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태연한 표정과 차분한 목소리로 (나도 소리 지르고 싶었다!)  주변이 풀숲이라 벌레가 많은 거야. 말하고는 척척 지네를 잡아 변기에 물을 내렸다... 어느 해엔 무당벌레들이 많이 보이고 또 어느 해엔 작고 동그란 딱정벌레들이 들어오기도 한다. 습하면 돈벌레는 수시로 출몰한다. 거미도 사계절 내내 자주 만나게 되는 친구다.


미안하지만 한결같이 반갑지 않은 벌레의 방문을 피하기 위해 4월에서 5월 사이에는 첫 번째 방역을 꼭 해야 한다. 비 오는 날을 피해 마당에 해충제를 살포하고 집의 바깥 외벽을 따라 가루로 된 지네약을 뿌려야 한다. 그리고 집안 구석구석 동그란 약을 붙여 놓고 액체약도 뿌려 준다. 적어도 3시간은 꼼꼼히 진행해야 하는 봄맞이이다. 봄에 한번 그리고 추워지는 초겨울에 한번 방역을 해야 조용한 시골집의 일상을 누릴 수 있다.

(소꿉놀이_민들레 떡 얼마나 맛있게요)


처음 단독주택으로 이사 왔을 , 아이들은 마당의 흙을 물로 반죽해서 떡을 빚어 소꿉놀이를 했다. 공벌레(쥐며느리) 잡아 손바닥에 올려놓고 신기해하며 놀았다. 잔디밭 위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줄넘기와 공놀이도 했었다. 흐뭇한 풍경이었다.  흐뭇하고 아름다운 엄마의 로망은 이년 정도 지속되다가 아이들이 크면서 빈도가 줄었다. 년이 흐른 지금  아이들은 일층 작업실에 앉아 로블록스를 하고 넷플릭스를 보거나 이층 방에서  많이 논다. 이젠 마당에 벌레가 많다고  나가지 않는다.


나도 집안과 마당에서 벌레들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일은 없어졌지만 반갑지는 않다. 시골에 살지만 헤쳐나가야 하는 덤불숲 보다 여러 사람의 발자국이 남아 흙이 다져진 오솔길이 무섭지 않고 걷기 편하다. 동네를 걷다가 돌에 걸터앉아 쉬는 순간을 사랑하지만 작은방의 폭신한 침대를 더 애정한다. 시골집에 살면서 내가 얼마만큼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 수 있는지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그리고 변하는 중이다. 예전엔 무섭고 싫었지만 그럴 수도 있지 받아들이게 되는 작은 생명들과 내가 움직여서 바꿀 수 있는 상황과 그렇지 못하는 커다란 자연에 맞닥뜨리면서 나는 작은 존재임을 느낀다.


하지만 하지만

사방이 나무와 풀에 둘러싸인 곳에 살면서 집안으로 들어오는 벌레에게만큼은 지기 싫은 마음... 어쩔 수 없다. 봄에 쓴 이 글을 수정하는 칠월, 이른 아침부터 마당 데크에 모기향을 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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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zart: 12 Variations in C Major on

"Ah, vous dirai-je Maman", K. 265/300e

(Pf.) Clara Hask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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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기에 놀란 날 일기

(Apr 2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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