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둘레 낮은 돌담은 다양한 쓰임새가 있어요.
재택근무 하는 목요일. 일층 테이블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데 나를 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다. 소름이 돋았다. 노트북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일단 등 뒤를 한번 살폈다. 안심하고 테이블에서 일어나는 순간, 맞은편 큰 창 앞 데크에 있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도망갈 생각도 않고 데크 위에 앉는다. 도망 안 가니?!
그간 찾아오던 고양이들과 달리 작은 아이는 창너머 나를 바로 바라본다. 당황스럽다. 보통 눈이 마주치면 돌담을 타고 빠르게 사라지는데. 가만 앉는 아이는 처음이다.
싱크대 상부장에서 재활용으로 씻어두었던 작은 그릇을 찾아 물을 담고, 서랍에서 소포장된 사료를 꺼낸다. 살금살금 창을 열었다. 그릇을 데크에 놓고. 사료를 부어 준다. 배가 많이 고팠나 보다. 물과 사료를 다 먹는다.
밥 먹는 거 보는 거 아니랬는데 가만 사진을 찍고 한참을 바라봤다. 태어난 지 얼마나 됐을까. 앉아있는 아이는 이십센티도 안되어 보인다. 기다란 하얀색 털이 온몸을 덮고 있다. 오른쪽 눈동자는 연한 파란색이고 왼쪽은 초록빛을 띠는 노란색이다. 세모로 쫑긋 솟은 귀는 연한 분홍색이다. 작은 코도 분홍색이다. 사료를 먹는 입은 조그맣다.
자주 올 거니? 묻고 싶어 진다. 우리 집 싱크대 세 번째 서랍엔 사료가 항상 준비되어 있어. 계속 나눠 먹자. 또와 하고 닫힌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소리 내어 말한다. 내가 작은 아이의 시선을 느낀 것처럼 아이도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동네 고양이들에게 우리 집 뒤, 돌담은 길 건너 건천으로 가는 길목이다. 담벼락을 의지삼아 유유히 다니는 얼룩무늬, 낮은 담 위에 앉아 도로에 차들이 오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재빠르게 길을 건너는 황토색 줄무늬, 수돗가에서 물만 마시고 가는 덩치 큰 누렁이... 잊어버릴만하면 한 번씩 찾아온다. 아이들이 먹을 수 있게 뒷담 근처에 사료를 두었는데 경계심 많은 친구들이라 먹지 않는다. 다만 길을 건널 때만 우리 집을 오고 간다. 아이들은 건천을 따라 남쪽으로 오 분여 걸어가면 있는 클린하우스 맞은편 공터에 자주 모인다. 그곳엔 막내와 가져다 놓은 물그릇과 사료 그릇이 있다. 사료를 부어두면 양이 줄어든다. 까다로운 아이들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장소에서만 밥을 먹는다. 뭔가 좀 서운한데 하나로마트에 갈 때면 고양이 사료를 사들고 오게 된다.
처음으로 우리 집 울타리 안에서 밥을 먹은 아이를 만나서 흐뭇하다. 그간 동네 고양이들에게 살짝 삐졌던 마음이 누그러든다.
_
♪ The Village in May
(이웃집 토토로 OST)
_
삼월, 목요일 마당 일기
(Mar 21.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