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인테리어는 진행형이지요.
제주는 이미 봄이다. 해가 잘 드는 곳에 쑥이 자라고 있다. 엄지와 검지로 솜털이 부드러운 쑥의 짧은 줄기를 똑 소리 나게 꺾을 때 작은 쾌감이 있다. 늦게 일어나 아침도 안 먹고 아이들과 삼십여분 어린 쑥을 뜯고 들어왔더니 배가 고프다. 쑥을 흐르는 물로 씻은 뒤 물에 담가두고 중간 크기의 고구마 한 개와 찌개 끓일 때 남겨두었던 늙은 호박을 채 썬다. 튀김가루를 찬물에 개어 쑥과 고구마, 호박을 골고루 섞는다. 프라이팬에 넉넉하게 기름을 두르고 센 불로 온도를 높인 뒤 반죽을 한 스푼씩 뭉쳐서 노릇하게 튀겨준다. 치익. 선명하고 맛있게 채소를 요리하는 소리! 아이들에게 금방 한 튀김을 하나씩 쥐어 준다. 쑥야채 튀김은 금세 자취를 감춘다. 튀겨내는 순간 아이들이 호 불며 바삭바삭 소리 내어 맛있게 먹어준 덕이다. 이렇게 아침 식사를 마무리하려는데 막내가 묻는다. 엄마 아침밥 메뉴는 뭐예요? 우리가 방금 먹은 튀김은 간식이었늬?! 나도 막내에게 되묻는다.
나와 남편 사춘기를 맞은 십대 큰 아이 세명이 사는 우리 집은 일층 14평(49.02㎡), 이층은 13평(46.14㎡)으로 27평의 작은 집이다. 칠년을 살아보니 딱 적당한 크기라 만족한다. 청소하기에 벅차지 않고 목조주택이라 겨울 난방도 여름철 냉방도 효율성이 높은 편이다. 내부 인테리어는 특별할 것 없이 기본적인 공간을 나누는데 의미를 두었다. 전체 공간의 벽과 타일, 큰 가구(싱크, 냉장고, 거실 테이블, 책상, 책장)는 하얀색으로 통일했다. 이층은 바닥도 흰색이다. 포인트 조명을 제외하고 조명의 몰딩과 창틀도 흰색이다. 흰 집이라 부를만하다. 꼭 필요한 책상 침대 옷장 가전제품만 두었다.
아이들은 잘 먹고 쑥쑥 자란다. 한 계절 입고 신으면 옷과 신발이 작아진다. 옷장과 신발장은 금세 채워지고 온 집안이 가득 찬 느낌이 든다. 집은 작고 사람에 따라 채워지는 물건은 많고. 자연스레 때마다 집안 곳곳을 대청소하며 비워내고 나누게 된다.
세 아이가 매일 입는 옷을 담아두는 삼단 서랍장이 세 개 있다. 이층 옷방에 옷을 보관하고 제철에 맞는 옷만 서랍장에 꺼내둔다. 그럼 아이들은 저녁에 다음날 입을 옷을 각자의 서랍장에서 꺼내 놓고 잠을 잔다. 열살 무렵이 되면 내가 하던 서랍장 관리 권한(?)을 아이에게 내준다. 첫째는 위 칸에 티셔츠를 가운데 칸에 바지, 아래 칸엔 양말과 속옷 자잘한 물품을 그냥 다 담아둔다. 나름 칸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신통하다. 종종 첫째의 서랍장을 열 때면 내식대로 정리하고 싶어 손가락이 간질간질 해진다. 둘째는 야무지게 서랍장 안에 다시 칸을 나눈다. 양말과 속옷을 칸에 맞춰 나란히 정리한다. 바지는 돌돌 말아 색상별 계절별로. 면 티셔츠는 개켜서 가지런히 둔다. 서랍장을 열면 한눈에 무엇이 있는지 보인다. 막내는 언니와 오빠가 입던 옷, 지인들의 옷까지 물려받아 옷 부자다. 서랍장이 항상 빼곡하다. 용케도 뒤죽박죽 섞인 옷 중 저녁마다 다음날 입을 옷을 쏙 골라내 코디한다. 아이들은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때마다 작아진 옷, 서로 물려 입을 옷, 아름다운 가게에 가져갈 옷을 스스로 정리한다.
여러 해 동안 아이들과 차곡차곡 정리하며 천천히 배운 것은 최고의 인테리어는 정리 정돈이라는 점이다. 집안 어디에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마음에 안정감을 준다. 옷이나 물건을 찾을 때 시간을 절약해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정돈된 집은 쪼금 넓어 보이는 시각적 착각을 선물해 준다.
쑥야채 튀김을 먹고 아침밥까지 배부르게 먹은 우리는 각자 서랍장을 열어 겨울옷을 정리하려 한다. 난 아마 이 글을 쓰고 나서 옷장과 서랍장으로 만족스럽지 않아 신발장과 찬장도 열 것 같다는 무서운 예감이 든다. 봄맞이는 역시 대청소로 시작하는 게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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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정과 열정사이 OST
The Whole Nine Y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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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 대청소의 날
일기
(Mar 10.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