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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고따뜻한일상 Jun 24. 2024

제주에 살고, 마당은 있지만
정원은 없어요.

마당 가꾸기는 어려워요.

몇 년 전 장마가 끝난 여름, 뒷집 할아버지가 농약분무기를 등에 메고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오셨다. 그러고 무성하게 자란 풀에 무언가를 뿌렸다. 일층에서 일하던 나는 얼른 밖으로 나갔다. 할아버지 앞으로 다가가서 눈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할아버지 농약 뿌리는 거 마씨? 하고 물었다. 청력이 약한 할아버지는 큰 소리로 젊은 사람들이 게으르게 마당에 검질이 허청 한디 약도 안 뿌리고 뭐햄서! 하신다. 동네사람들이 마당에 잡초가 있으면 흉본다고 허리굽은 할아버지가 직접 제초제를 뿌려주고 가셨다.


 켠에 심어두었던 방울토마토와 상추가 걱정되면서 우거진 풀들이 창피하기도 하고, 할아버지의 행동이 당황스럽고 미안한 마음까지 들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할아버지의 방문 후 규칙적으로 시간을 내어 풀을 뽑고 잔디를 깎았다. 하지만 마당 생태계의 속도는 늘 나의 속도를 앞질러 매우 빠르게 자연스러워졌다.

(의도하지 않은 빨간색 쎗뚜)

17년 7월 중순 집만 완성된 상태에서 이사를 왔다. 정말 집만 있었다. 집을 짓기 위해 포클레인으로 평탄화 작업을 거친 마당은 흙바닥 그대로였다. 바람 불면 흙먼지 날리고, 비 오면 흙탕물이 되었다. 여름 끝 무렵에야 잔디를 심었다. 매일 저녁 듬성듬성한 사각형 잔디들이 뿌리내리도록 물을 주며 열심히 가꾸었다. 동네 꽃가게에서 라벤더와 로즈메리, 유칼립투스, 애플민트를 데려와 구석구석 심었다. 텃밭 욕심도 생겨서 아이들과 상추와 토마토 모종도 심었다. 타샤의 정원처럼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이 가득한 정원을 가꾸고 싶었다. 틈틈이 꽃모종을 조금씩 구해다 심었다. 가을에는 국화를, 겨울 무렵엔 수선화를 데려와 심고 그 아이들에게 시간을 내어 인사하고 물을 주었다. 서툰 내 솜씨에도 꽃을 피워준 소중한 아이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사진으로 기록해두기도 했다. 초록초록 예뻤던 시절의 우리 집 마당 풍경이다. 나의 시간과 체력, 관심이 들어간 만큼 마당은 예뻐졌다.


이른 아침 일어나 식사 준비하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집안일하고. 재택근무 하고. 마당 가꾸기도 하고... 살아내는 일은 진행형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야만 하는 일들이 가득하다. 해야만 하는 일들이 나열된 매일의 날들 속에,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할 시간이 갖고 싶어졌다. 마당 가꾸기를 하려면 부러 마음먹고 시간과 체력을 써야 한다. 시간을 내어 가꾸는데 기쁨보다 힘듦이 크다고 느껴진다면 감당이 안 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당일을 꼭 해야만 하는 일 목록에서 제외했다. 예쁜 꽃을 보고 싶은 욕심은 산책을 하며 동네 길가에 핀 꽃들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마당 가꾸기는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만큼만 조금씩 천천히 하고 있다.

(게으른 마당지기 덕에 스스로 잘 자라는 튼실한 마당 생태계가 되었다고... 우겨 봄)

한 겨울 누런 잔디 마당도 운치 있고, 봄이 되면 잔디 보다 먼저 자라는 풀들도 씩씩해 보여 좋다. 여름이 되면 풀은 무성해지고 단감은 영글어 간다. 그냥 두어도 동백꽃은 피고 지고, 다시 이른 봄이 되면 심어두었던 수선화가 싹을 틔운다. 달래는 마당 한 켠에 자리 잡아 해마다 자라고 완두콩도 열매를 맺는다. 다들 스스로 열심히 잘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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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ch : Goldberg Variations

(Pf.) Jeremy De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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