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라

체내림

by 작고따뜻한일상

이불속에서 한참을 뒤척거리던 둘째가 새벽녘 설풋 잠이 드나 싶더니 이내 낮은 신음 소리를 냈다. 옆에서 덩달아 잠 못 이루던 나는 그 소리에 일어나 아이의 발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차갑던 발이 따뜻해졌다. 이어 종아리를 주무르고 등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긴장이 풀린 아이의 몸에서 힘이 빠지며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와 달리 잠이 달아난 나는 거실로 나와 책상 앞에 앉았다. 노트북을 열어 시간을 보니 새벽 3시.


세 아이가 오늘처럼 자다 깨거나, 놀다 넘어져 울 때, 열이 나면 나도 모르게 아이의 등을 쓰다듬게 된다.


갓난쟁이 때부터 한밤중에 깨어나 자지러질 듯 울고 자주 탈이 났던 나는 이름보단 울보로 불렸다. 중학생 무렵까지 큰아버지댁에 가면 사촌 오빠들부터 큰어머니까지 "울보야" 했다. 애정이 담긴 별명이었지만 싫었다. 그렇다고 "저 이제 울보 아니에요"라고 할 수도 없었다. 덩치만 컸지, 여전히 자주 울었으니까.


큰어머니는 엄마에게 서귀포에 용하다는 할망, 용담에 새로 생겼다는 체 내리는 집들을 알아두었다가 귀띔해주곤 했다. 아버지는 "병원엘 데려갈 일이지"라며 타박하셨지만 다녀오면 한동안 밤잠도 잘 자고 열도 나지 않았다. 밥을 잘 먹는 내 모습을 보며 아버지도 더는 말리지 않으셨다.


엄마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를 데리고 할망네로 향했다. 작은 체구인 할망의 주름진 손은 따뜻했다. 나를 눕혀 발부터 다리를 꾹꾹 누르고, 배를 쓸어내리다 등을 오래도록 쓰다듬어 주셨다. 다부진 손이 목덜미부터 엉치뼈가 닿는 곳까지 쓰윽 내려가고 올라갈 때면 등이 곧게 펴졌다. 마지막에 내 정수리에 ‘후우' 하고 길게 숨을 불어넣는 것으로 체내림은 끝이 났다.


어릴 적엔 고분고분 엄마를 따라나섰지만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그곳이 꺼려졌다. 문을 열자마자 은근하게 코끝에 들러붙는 향내와 방 한켠 작지만 정갈하게 모셔진 신단이 낯설었다. 학교 수업을 빠지고 가야 할 때는 선생님께 병원에 간다고 하자니 거짓말 같았고 체내림을 받으러 간다고 말하기는 더 어려웠다. 그러다 다행히 한밤중에 깨거나 체하는 일이 줄면서 할망네를 가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기억이 시간이 흘러 엄마가 되었을 때 불쑥 튀어나왔다. 늦되었던 첫째는 13개월이 되어서야 걷기 시작했다. 자주 넘어졌고 매번 서럽게 울었다. 그때마다 아이를 안고 정수리에 후 숨을 불어넣었다. 손은 자연스레 등으로 갔다. 곁에서 보던 남편은 "무릎이나 손바닥을 먼저 살펴봐야지" 했지만 어쩌랴. 나도 모르게 아이 정수리에 입술부터 닿는 것을.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 어릴 적 할망들이 나누어 주었던 그 작은 숨은 단순한 날숨이 아니었나 보다.


"아가야 살아라. 부디 잘 살아라."


할망의 할망, 그보다 더 옛날의 이름 모를 할망들로부터 이어져 온 생에 대한 끈질긴 기원이 아니었을까. 혼자가 아니니 무서워 말라고, 곁에는 숨을 나눠줄 질긴 생들이 있다고… 다독이는 소리.


그렇게 내 몸에 새겨진 다정한 주문이 이젠 아이들에게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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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월을 보내며

♪ Schumann:Arabeske Op.18 & Papillons Op.2

Pf. Wilhelm Kemp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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