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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몰랐어

둘째의 식사 독립

by 작고따뜻한일상

밥은 안 먹고 반찬만 먹어도 돼요?


가족이 함께하는 저녁 식사 시간. 아이들은 스스로 먹을 만큼 밥을 뜬다. 중학생이 되면서 밥의 양이 점점 줄어들던 둘째가 가을 무렵엔 아예 밥을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 오븐에서 고등어를 꺼내려던 손길이 멈칫했다. 걱정이 앞섰지만 아이의 얼굴을 보며 애써 담담하게 답했다. "그래, 억지로 먹는 건 좋지 않지. 대신 반찬을 골고루 먹자." 그날부터 아이의 식사 방식은 조용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며칠 뒤 이유를 묻자 아이는 차분하게 답했다. "밥을 줄이니까 몸이 더 편해요. 그동안 식사가 좀 힘들었어요." 순간 나도 모르게 날 선 말이 튀어나왔다. "네가 자라는 십여 년 동안 엄마는 무얼 한 걸까?" 내뱉고 아차 싶었지만 서운한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세 아이 모두 12개월 모유 수유를 하면서 생후 6개월부터 이유식을 시작했다. 쌀미음부터 소고기죽까지, 매번 쌀을 불리고 재료를 다져 정성껏 만들어 먹이는 과정은 자부심이었다. 제주 귤 하나를 먹으면서도 햇살과 바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둘째와 함께한_ 부엌의 시간들)

둘째는 식사 준비를 할 때면 내 곁에서 재료 손질부터 만들기까지 전 과정을 오롯이 즐길 줄 알았다. 예민한 후각과 미각으로 당근의 은은한 향과 방어회의 구수하고 단 끝 맛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렸다. 그런 아이가 식사가 힘들었다니. 정말 몰랐다. 사춘기가 이렇게 오는 걸까, 아니면 내 방식이 문제였을까?


아이가 밥 대신 든든하게 배를 채우길 바라는 마음으로 계란과 고구마를 삶고 제철 과일을 식탁과 책상에 두었지만, 둘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신이 먹을 만큼만 오트밀 죽을 만들거나 요구르트를 먹고, 단호박을 쪄서 먹었다. 여전히 나와 저녁 식사 준비를 즐겁게 했지만 먹는 것은 스스로 선택했다. 겨울이 되자 눈에 띄게 교복이 헐렁해져서 덜컥 겁이 났다. "밥을 좀 더 많이 먹으면 안 되겠니?"라는 부탁에 아이의 답은 짧고 명료했다.


"요즘 속이 편하고 체육 시간에 숨이 덜 차서 좋아요. 그동안 제 양보다 많이 먹었던 것 같아요. 알아서 할게요."


쌀이든 고등어든 감귤이든 생명이 내 입을 거쳐 몸으로 들어오는 일이라 허투루 할 수 없는 것이라 믿었다. 음식은 곧 감사라 말하고 또 말해왔다. 그래서 식사 시간에 차려진 음식을 남기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밥과 반찬을 직접 먹을 만큼만 덜게 하는 것이 자율이라 생각해 왔다.


아이는 엄마가 주도하는 식사는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고 했다. 집밥은 감사하지만, 자신의 몸 상태를 존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가을부터 시작된 둘째의 삼시 세끼 '식사 독립'은 그동안 내가 굳게 믿어왔던 것에 틈을 내고 있다. 정성껏 차려낸 식탁이 엄마가 정한 규칙 안에서의 자율 없는 선택이었음을. 집밥이라는 이름으로 건넨 사랑이 아이에게는 때로 부담이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둘째가 언제 이렇게 컸을까.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고, 때론 "엄마와 내가 다를 수도 있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자랐을까. 서운함과 대견함 사이에서 마음의 갈피를 못 잡겠다. 아이는 엄마품을 벗어나 슬슬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정작 나는 '엄마'라는 틀에서 한 발짝 나가기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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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월 일기

♪ Bach: Goldberg Variations

Live at Carnegie Hall, New York, 2025

Pf. 임윤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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