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할아버지
"그런데 만화책은 왜 한 권만 빌려야 돼요?"
새로 만들어 빳빳한 독서기록 통장과『고양이와 할아버지』세 권을 대출 책상에 올려놓은 아이가 물었다. 통장을 펼쳐 이름을 확인했다. "수지구나. 수지야, 만화책은 하루 한 권만 빌릴 수 있어. 책을 골고루 읽으라고 만든 약속이야." 수지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만화책 한 권과 신간 코너의 동화책 한 권을 빌려 교실로 돌아갔다.
삼월이면 학교 도서관이 처음인 일학년들을 만난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도서관을 드나들며 질문을 쏟아낸다. 그중 해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만화책 대출에 관한 물음이다. 우리 학교 도서관의 대출 한도는 일주일에 세 권이지만 만화책은 한 권만 허용된다. 그마저도 일반 도서를 한 권 이상 섞어야 한다. 만화책만 편식하는 아이들이 많아 학부모와 교사들이 고심 끝에 만든 약속이다.
아이들이 아쉬워하는 기색이 안타까워 슬쩍 두 권씩 내어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만화책만 두 권씩 반납하는 경우가 자주 생기자, 다른 학부모 사서가 문제를 제기했다. 대출 책상엔 "만화책은 하루 한 권만, 일반 도서와 함께"라는 볼드체 안내문이 붙여졌다. 규칙은 더 엄격해졌다.
쉬는 시간, 아이들은 도서관으로 달려온다. 읽고 싶은 책을 보려고. 기대하고 왔는데 원하던 책을 대출하지 못하면 돌아갈 때 발소리가 다르다. 힘차게 열렸던 도서관 유리문이 조용히 닫힌다.
짧은 생각으로 한 행동이 아이들을 되레 답답하게 만든 것 같아 미안했고, 다양한 책 세상을 접하게 하려는 분들의 노력을 알기에 그 또한 미안했다.
학기마다 열리는 도서관 운영회의에서 만화책 대출 제한을 없애자고 하고 싶다가도 닳고 닳은 책들은 만화책이 대부분인 서가를 본다.
오늘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아이들이 읽고 난 책이 가득한 북트럭에도『고양이와 할아버지』,『마루와 강쥐』,『마법천자문』,『오므라이스 잼잼』,『흔한 남매』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정리를 하려다가 귀여운 그림이 맘에 들어 『고양이와 할아버지』한 권을 집어 들었다. 잠깐 보고 서가에 꽂아둬야지 했는데 북트럭 앞에 서서 후루룩 읽어버렸다.
짬짬이 세 권을 연달아 읽고 한 권을 대출해 왔다.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용돈을 모아 열린 글방에서 만화책을 빌려보던 때가 생각났다. 잊고 있던 즐거움이다. 역시 책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야지!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아쉬워 다음 이야기를 빨리 보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은 소중하다.
장르마다 장단은 있기 마련인데 만화 대출 제한은 책에 우열을 매기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만화만 읽는 독서는 정말 부족한 걸까? 앞선 걱정으로 아이들의 독서에 간섭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책 세상에선 나와 아이들 모두 자유롭게 해방되면 좋겠다. 내가 납득할 수 없으니 아이들에게 설명해야 할 때면 입이 무거워진다. 새 학기면 긴장된다. "만화책은 왜 한 권만 빌려야 돼요?" 올해도 같은 질문이 내게 왔다.
변명은 그만하고 곧 있을 새 학기 도서관 운영회의에 만화책 대출 제한을 없애자고 말해보기로 다짐한다. 단숨에 바꾸기 어렵다면 매달 만화책 대출 제한을 풀어주는 날을 만들어 보자고. 학교 건물 끝 이층 도서관까지 달려온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이 우선이니까.
난 믿는다. 만화든 동화든, 스스로 집어 든 책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걸.
_ 삼월, 학교 안 도서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