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Jusunshine Nov 12. 2024

초췌한 너

어두운 저녁, 하루의 무게가 나직이 내려앉는 순간,

네 눈 속에 가만히 스며들다 사라지는 흐린 잔빛을 본다.

지친 시선 너머로 엉킨 실타래처럼,

남겨진 너의 그 가냘픈 흔影은 싸늘하게 번지면서도 아련히 나를 감싸고,

초췌한 너의 모습은 내 마음 가장 깊은 골짜기에

아무 소리 없이 적막하게 번져갔다.


너의 가쁜 숨은 나의 떨리는 고동이 되었다.

가냘프게 번지는 낮은 음성, 서서히 식어가는 체온,

그 모든 순간이 나에게는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귀한 순간이었기에.

네가 내 곁에 살아 있다는 그 단 하나의 진실이

세상 무엇보다 값졌기에.

너의 흐려진 모습이 내 기억 속에 나직이 스며드는 순간,

그 미세한 진폭조차 내게는

메마른 가슴을 적시는 가느다란 숨의 미립이 되었다.


차가운 기류가 스며드는 이 길,

나는 네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가고 싶다.

너의 발소리가 잠시 멈칫일 때마다,

내 손가락에 닿아오는 무거운 약속 속에서

우리는 이 혹독한 겨울을 함께 견뎌냈다.

깊어가는 밤의 어둠 아래

너의 낮은 목소리가 마치 언 땅에 내리는 첫서릿발처럼 머무를 때,

너의 얼굴에는 잠시 남겨지는 조용한 결이 깃들었고,

나는 그 순간을 내 마음 어딘가에 단단히 새겼다.


너의 고통,

그 숨 막히는 침묵을 함께 나누고 싶다.

너의 눈가에 맺힌 가느다란 줄기를 따라 나도 천천히 스며들어

너의 아린 기억을 감싸며

나는 너를 위해 거친 세찬 기류를 막아주는 고즈넉한 안식이 되고 싶었다.

너의 메마른 표정 위에

내가 잠시 내려앉아도 좋은 작은 숨의 머무름이 되길 바란다.


초췌한 너의 모습은

얼어붙은 계절 속에서도 움트는 여린 싹처럼

부서질 듯 섬세하면서도, 그 자체로

모든 존재의 신비를 품고 있었다.

나는 그 안에서 너의 묵직한 마음을 보았다.

너의 내면은 메마른 땅을 비집고 솟아난 단단한 결이었고,

나는 그 느릿한 숨의 댓잎을 사랑했다.


세상의 거친 시간들을 견뎌낸 너의 어깨 위에

내 작은 따스함이 내려앉기를 바란다.

네가 걸어온 길의 비탈진 오솔길과

그 옆에 어른거리는 정막한 결흔들을 나도 함께 품고 싶다.

네가 홀로 지나온 적막한 능선과 구부러진 모퉁이마다

내가 너와 나란히 걸었으면 좋겠다.

너의 존재가 내게는 잃어버린 길 위의 흐린 이정표가 되어준 것처럼,

나도 너를 위한 어둠 속의 은근한 등불이 되고 싶었다.


초췌한 너, 그 메마른 모습조차

나에게는 흐르다 잠든 물굽이와 같았다.

너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내 삶의 가장 깊은 틈새를 채우고,

너의 나직이 번져오는 숨의 진류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마침내 찾았다.


긴 하루가 기울어가는 이 밤,

너의 포근한 체온이 되고 싶은 마음.

너의 가늘게 번진 웃음과 조용히 흘렀던 눈물이 내 가슴을 적시며,

너의 존재가 내 안에 천천히 내려앉아

나의 길을 감싸는 부드러운 숨의 떨결이 되었다.


사랑이란, 너를 바라보는 일.

네가 물든 어둠 속을 함께 걸으며,

우리의 손이 맞닿았던 그 순간,

나는 초췌한 너의 모습에서

사랑의 깊이를 깨달았다.


이 길 위에서,

나는 너와 함께 걸으며

그 사랑을 오래도록 새기리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