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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초이 Oct 20. 2023

[퇴사일기] 가업을 이어 받다

가업을 잇는다는것은 정신을 이어 받는것이다

"전북 무주군 설천면 장덕리 수한마을"에서 "대전"으로 이사를 오다.


내가 살던 수한마을 (출처: https://blog.naver.com/postcard9501)

함바집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함바는 건설 현장 안에 지어놓은 간이식당을 부르는 말로 일본어에서 유래하였다. 현장 식당, 건설 현장 식당 이라고도 한다. 일제 강점기에 토목 공사나 광산 등지에서 등원된 노동자들이 숙식들 해결하기 위해서 임시로 지은 간이 건물을 함바라고 불렀다. (함바-위키백과 한국)


1998년도 초등학교 5학년 12살 때 대전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8살 때부터 마을 근처 레미콘 공장에 밥을 지어주는 속히 말하는 "함바집"을 하셨다. 조립식 건물이었고, 방 하나에 온 가족 4명이 다 같이 지냈다. 더블침대 매트리스가 바닥에 놓여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책상이 하나 있었고, 텔레비전이 있었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대전에 2층짜리 건물을 사게 되셨고, 초등학교 5학년때 쯤 이사를 가게 되었다. 지난 추석 때 하시는 말씀이 나와 내 동생의 교육 때문에 대전으로 간 것이라 하였다. 

 

대전에 이사와서 부모님께서 운영한 식당

나의 오랜 기억 중 하나는 시퍼런 새벽에 잠에서 깨서 화장실을 가는데, 아버지께서 공사판 인부 같은 옷을 입고 새벽에 나서는 뒷모습을 보았다. 그때가 이사 온 지 한 달 정도 됐던 시점으로 기억한다. 


내가 전학을 왔을 때의 기분은 더 이상 밤에 들리던 소쩍새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들리지 않고, 집 앞 대로변에 차가 지나가는 소리, 그리고 차갑지만 상쾌했던 기운을 가진 공기가 이내 둔탁해졌다는 느낌.

그리고, 초등학교까지 걸어서 갈 수 있다는 것. 책에서만 보던 육교를 처음으로 이용해 봤다는 것.

학교 친구들이 초대하며, 동호수를 적어 주었지만 동은 찾았는데 아파트는 입구가 3개라서 호수를 찾지 못했다는 것. 엘리베이터를 혼자 이용해 봤다는 것.

집 뒤에 있는 높은 아파트가 무너져서 내가 사는 2층짜리 주택을 덮칠 것 이라는 이상한 생각.


이 모든 것으로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아버지의 후줄근한 모습이 학교에서도 생각나 집에 오자마자 어머니에게 물었다. "아빠가 회사에 출근했어?", "그럼 양복을 입고 갔어?" 어머니는 양복을 입고 갔다고 하시더라, 참고 있었는데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엄마, 다시 장덕리로 가면 안 돼?" 어머니도 힘들었었는지 같이 울었다. 지금에 돌아와서 이야기를 해보니 이때는 장사가 정말 안되었다 한다. 하루에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을때도 있고 하여, 주변 사무실 같은 곳에 아버지가 직접 찾아가서 점심 배달을 한다고 하고, 그렇게 한 명 한 명씩 손님을 늘려갔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되어 그 자리에 30년을 있었다.


그렇게, 구천동 생고기는 그 자리에 30년을 있었고 23년 9월 30일 자로 폐업했다. 부모님께서 일을 그만두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아버지가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하신 것이고,

두 번째는 어머니가 코로나에 걸려 심하게 아팠다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아들이 창업을 한다고 결심을 했다는 것


세 번째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내가 돈을 벌고 있으니, 자식이 돈을 못 벌것 같다고 하셨는데 그게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에서야 생각이 드는것은..

나는 대학에 오래 있었다. 학부 4년, 석사 2년, 박사 4년, 해외 포스닥 1년, 국내 포스닥 2년, 연구교수 2년

15년을 대학에서 있었다. 당연히 모아둔 돈이 있을 리가 없다. 석사과정에서는 70만 원, 박사과정은 100만 원이 전부였으며, 해외포스닥은 3만불/년으로 계약을 했던것으로 기억하고, 국내 포스닥은 150만 원/월 뭐 그랬었다. 사실 돈이라는 것에 큰 관심도 없었다. 

나는 내 스스로 집에 의존하면 안 된다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뒤에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경제적으로 의존을 했다. 결혼하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제는 의존을 할 수가 없다. 부모님께서는 이렇게 내가 오랜 기간동안 미안해했던 의존이라는 것을 덜어 주셨으며 그것은 책임감으로 변하여 다시 내게로 왔다.


나는 이것을 가업을 이어 받는다고 말한다.


공교롭게도 2023년 9월 30일이 폐업한 날짜이며, 내가 만든 법인이 사업을 개시한 날짜는 2023년 10월 1일이다. 식당이 폐업하는 날 손님들과 부모님이 느꼈을 그런 감정을 감히 상상할 수도 없지만, 

그 따스한 감정을 이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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