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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을 아는 사슴 Jul 26. 2023

본,봄

가장 사랑하는 소설 [모순]의 주인공 안진진의 어머니는 그랬다고 한다.


'지난 몇 년 동안의 평화를 어떻게 견디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어머니는 이 불행을 해결하는데 온갖 신명을 다 내고 있었다. 벽을 붙잡고 절규를 하며 울부짖던 어머니의 과장법은 이렇게 쓸모가 있었던 것이다. 부풀릴 수 있을 만큼 한껏 부풀려놓은 불행에서 이처럼 맵시 있게 빠져나오는 어머니. 8월에 보는 어머니는 역시 과장법의 대가였다. 나는 진실로 어머니에 대해 감탄했다'


그녀는 왜인지 더 힘을 낼 수 없는 상황에서 더 힘을 내고 심지어 무조건 더 강해져 버린다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그녀는 그런 식으로 자신을 다듬어오곤 했다고. 처음 그 대목을 마주했을 땐 그런 인물에 치가 떨려 고개를 절로 저었다. 그래놓고 요즘의 나를 보면 나도 그와 비슷한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야 내가 세상을 안 버릴 수 있어서, 그래야 내가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여서 그런 방법을 써왔다는 것을 아주 조금이나마 느낀다.


요즘에는 이런저런 생각에 쉬이 너무 공허해져 버리고, 무력함을 느끼고, 좌절도 좀 했었다. 나의 이상이 보잘것없는 나 자신에 비해서 너무 빛이 난다고 해야 하나. 그럼에도 가장 어깨에 힘을 실어줘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인데, 그것이 쉽게 되지 않았다. 너무너무 변화하고 싶은 마음과 너무너무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손을 맞잡고 나를 찾아왔다. 동시에 뭐든지 될 것 같은 나와 뭐라도 못할 것 같은 나 역시도 어깨동무하며 나를 보고 있더라.

어른이 되고 책임져야 할 일이 많아지면서 나도 모르게 나만의 방어기제라고 쓰고 삶의 요령이라고 우기는 기술을 쌓아왔다. 무슨 일이 생기면 절대 내 탓을 하지 말자고. 나는 나의 마지막 변론인이 마지막 순간까지 되어주자고 했다. 이 다짐의 전제조건은 남 탓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 탓이 곧 내 탓이다. 닥친 결과에는 남이나 나 자신이나 의미 없고 모두가 피해자일 뿐이라고 여기기로 꼭꼭 다짐했다. 그래서 해결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남 탓도 하지 말고 내 탓도 하지 말고 상황 탓만 하자고 했다. 그렇게 상황 탓만 하면서 남과 내가 인격 없는 그 상황에 욕하고 분노하고 체념하고 의지를 태우면서 두 배 세 배로 몸과 마음을 굴리면 어느새 일이 해결되는 식의 삶을 살았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그렇게 도장 깨기를 하며 지냈는데 남은 뭐라도 굴릴 여력이 없고, 나는 굴릴 의지가 없는 문제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알아서 상황이 착해지기만을 바라야 되는 것일까. 앞에서 무시하며 말했듯 상황 걔는 인격도 없고 뭐가 착하고 나쁜지도 모를 텐데.


자주 글을 보내고 싶은데 마음이 좁아지고 시야가 좁아지니 16인치 노트북 화면조차 버겁다고 느껴지는 날들이 많았다. 그래서 작디작은 아이폰 13 미니의 화면으로만 내 일상 밖의 일상을 몰래 훔쳐보는 날들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가만히 있는 사람은 못 되어서 오늘은 운동도 하고 이렇게 자리에 앉아 글도 썼다. 내가 가진 것만으로도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몸과 글이라니 작지만 아주 크다고 여기며 이것에 감사함을 또 얹어봐야겠다.


4월을 앞두고 피부에 느껴지게 봄이 오고 있다. 전에 친구에게 건넸던 편지에 이런 문구를 적었던 기억이 난다. '너의 본모습을 알아. 너의 봄 모습도 알 고 싶어'

이번에는 나의 본모습을 알고, 나의 봄 모습도 알고 싶다. 햇빛 아래의 나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바람을 가르는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길게는 1년, 짧게는 하루를 두고 피고 지는 꽃들을 대단해하고 가여워하면서 이 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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